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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호
- [공무원에 보내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서한(書翰)]우리가 먼저 고통을 분담합시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지난 3월25일 전국 5급이상 간부공무원 3만5천여명에게 신한국 창조를 위해 솔선수범해줄 것을 당부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金대통령의 서한내용은 다음과 같다. 친애하는 간부 공무원 여러분, 우리가 겪어나온 그 엄청난 격랑 속에서도 묵묵히 이 나라를 지탱해 주신 여러분에게 저는 먼저 충정어린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국의 산하에는 지금 새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 자연의 봄을 민족진운을 활짝 펼 역사의 새 봄으로 만들자는 저의 제의를 전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시대의 징표와 내외의 여건은 우리로 하여금 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낡은 겨울 옷을 벗고 새 봄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의 봄은 저절로 오지만 인간사회의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자기혁신, 자기정화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윗물이 먼저 변화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달라져야 하고, 먼저 깨끗해져야 하고, 더 많은 고통을 떠맡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에 정의로와야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신한국 창조의 길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공무원이라는 자리는 군림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줄 압니다. 위를 보고 행정을 할 것이 아니라 국민편에 서서 국민을 보고 행정을 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불편을 해소해주어야 합니다. 국민의 작은 소리, 고통받는 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그래서 따뜻한 정부가 되도록 하십시다.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해서, 공직사회 내부에 경색된 분위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개혁은 과거를 들추고, 누구를 떼어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밝고 깨끗한 내일을 위한 것이요, 모두가 새롭게 태어나 뜨겁게 하나 되기 위해서 입니다.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자는 것이 그 참뜻입니다. 공직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더 성실하게 앞을 보고 일을 해 주십시오. 대통령인 저 자신이 먼저 솔선하겠습니다. 자기혁신과 자기정화를 통해 부정·부패를 추방하고, 국가기강을 바로 잡으며, 경제를 살리는데 다 함께 헌신합시다.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무원의 봉급부터 동결하게 된 것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 함께 조금만 참읍시다. 반드시 큰 보람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공직자인 우리가 먼저 고통을 분담합시다. 그리하여 깨끗한 정부, 튼튼한 경제, 건강한 사회, 통일된 조국 우리의 신(新)한국을 창조합시다. 여러분을 향한 저의 진심에 찬 애정과 신뢰를 보냅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건승과 가정에 늘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1993.04.01
- [시론(時論)]공직(公職)사회 새바람 일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엄청난 변화의 와중에 있다. 무혈혁명(無血革命)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개혁의 속도 때문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지만 이 신풍(新風)은 국민들이 역대정권으로부터 일찍이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신선한 느낌과 기대를 더하게 한다. 출범(出帆) 한달만에 변화 주목 새 정부 발족 불과 한달여에 공직자 재산공개(財産公開)라는 어려운 개혁의 관문을 정면 돌파했다. 묵은 난제(難題)가 풀리면서 회의반(半) 불안반(半) 하던 민심(民心)은 신뢰와 희망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다양한 여론조사가 이를 증명했고 야당쪽에서 마저 깨끗한 정치의 계기로 평가했다. 재야(在野) 운동권이나 학생들이 새 정부를 타도대상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었던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신풍(新風)의 실체를 김영삼(金泳三)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이 충격은 청와대에서 발원되어 한달사이에 잇달아 일고있는 파문으로 주위로 부터 그 아이덴티티(정체(正體)가 검증되고 가시적으로 평가받게 됐다. 정권교체기 마다 있어온 통과의례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믿음을 갖게 한 것이다. 청와대(靑瓦臺)가 가까운 이웃 일하는 중심으로 다가온 것이 첫째 충격이었고, 둘째 충격은 파격적인 쇄신인사에서 보인 정면돌파의 통치의지였으며, 세번째는 김영삼(金泳三) 현상을 더욱 확인시킨 공직자 재산공개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론재판식 진행이라느니 과속을 염려하는 비판도 없지 않았으나 한달만에 사회개혁의 방향과 기틀을 잡았다는 사실에는 국민 80%이상이 수긍하고 갈채까지 보내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만약 신정부가 역대정권의 방식대로 법(法)과 절차만을 우선적으로 고집했더라면 극복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통성있는 문민(文民)정부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여론을 등에 업었기 때문에 30년 군사정권(軍事政權)의 철옹성 같은 기성체제의 해체작업이 가능했을 것이다. 대승적(大乘的) 자부심 뚜렷해져 특히 보수성 강한 공직사회가 방관않고 참여의 대세(大勢)로 돌아선 것도 마찬가지 배경일 것이다. 인사에서부터 조직·예산 편성에까지 봉사, 효율위주의 민주정부로 거듭나기 위한 움직임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개혁의 앞장은 어차피 조직화된 공직사회의 몫이기 때문이다. 봉급동결(凍結)과 사정(司正)회오리의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신한국 창조의 길잡이라는 대승적(大乘的)인 자부심이 자리잡혀가는게 역력하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공직사회 구석구석에 침투하고 있는 개혁의 바람은 만만치가 않다. 공직자들의 의식이 신사고(新思考)쪽을 향하고 있다. 침체에서 벗어날 국운창성의 기회로 보고 있다. 관가(官街)에 새 활력이 일것은 자명한 것이다. 새정부 격려(激勵) 제언 쇄도 예측가능한 내부승진의 인사(人事)에서부터 대민창구의 유연한 변모, 각 기관장실의 규모나 경비의 하향조정 등 예산절감 노력은 신선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최근 관청출입을 해본 국민들은 바리케이드가 없어진 정문 출입에서 우선 부드러운 인상을 받게되고 주차장이나 청사앞 광장이 시민 위주로 개방되는 사례들을 보게 된다. 각 부처 구내식당이 다시 붐비게 된 것 역시 작은 몸짓이지만 시사하는 바 크다. 군(軍)과 안기부(安企部) 등의 과감한 개편과 성역(청와대)에 대한 감사환(監査晥)의 감사재개는 이젠 모든게 확실히 달라지고 있음을 재확인 시켜주는 역사적 이벤트일 것이다. 새 정부 출범이후 1.6배로 늘어난 민원량, 새 정부에 대한 격려와 제언 등 민심의 적극적 동향은 정부의 신뢰도 상승이며 민주행정 생활행정의 앞날을 예고하는 선행지표(先行指標)에 다름 아닐 것이다. 신뢰회복은 강한 정부를 만들고 강한 정부는 물리력 동원 없이도 우리가 안고있는 그릇된 유산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갈 수 있게 할 것이다. 1993.04.01
- 주간 국정(國政)메모 장애인(障碍人)등록카드 송부(送付)제도 개선내무부 내무부는 1일부터 등록장애인들이 거주지를 이전하기 위해 주민 등록 전출신고를 할 경우 장애인등록카드를 주민등록표송부시에 일괄 이송처리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등록장애인들이 주소를 이전할 경우에 새 거주지로 보내는 주민등록표송부서류에 장애인카드와 진단서 등이 포함되지 않아 전입 및 장애인등록 신고를 별도로 해야하는 등 불편사례가 많았다. 전국 땅값 읍(邑)·면(面)·동(洞)별 주민열람건설부 건설부는 전국 2천5백15만7천2백79필지에 대한 개별지가(地價)조사가 지난달 31일로 끝남에 따라 1일부터 오는 21일까지 전국 읍(邑)·면(面)·동(洞)사무소에서 주민열람을 실시키로 했다. 1백10원짜리 보통우표 발행체신부 체신부는 우편요금조정에 따른 이용자들의 불편을 해소키 위해 1백10원짜리 보통우표를 발행, 지난달 30일부터 전국 우체국에서 판매에 들어갔다. 투기·변칙증여 한해 자금(資金)출처 조사국세청 국세청은 지난달 30일 그동안 일정 기준이상의 부동산이나 각종 재산을 취득하면 일률적으로 자금출처를 밝히도록 하던 것을 1일부터는 부동산투기나 변칙증여 혐의가 있는 경우에만 자금출처를 조사하기로 했다. 범죄소탕 1백80일 추진계획수립경찰청 경찰청은 지난달 30일 사회기강확립과 민생안정 조기정착을 위해 범죄소탕 1백80일 추진계획을 수립, 4일부터 보다 철저한 민생치안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계량(計量) 및 측정(測定)에 관한 시행령 개정공진청 공업진흥청은 지난달 29일 산업의 고도화에 따른 정밀기술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산기반을 확립키 위해 산업측정 분야의 교정검사와 표준물질인증제도 등을 새로 도입하는 내용의 계량(計量) 및 측정(測定)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 오는 7월1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건축신고·허가절차 일원화서울시(市) 서울시(市)는 지난달 30일 현재는 사실상 금지돼있는 건축물의 용도변경을 앞으로는 증·개축이 따르지 않을 경우 대부분 허용하는 한편 건축신고와 허가절차를 종합건축민원실에서 일원화하는 것등을 골자로 한 건축행정쇄신대책을 발표했다. 열차사고 부상자돕기 헌혈(獻血)운동전라남도 전라남도는 29일 이균범(李鈞範)도지사를 비롯한 도내 공무원 1백50여명이 부산열차사고 부상자돕기 헌혈운동을 전개, 헌혈한 피 3만2천cc와 위로금 1천5백만원을 사고대책본부에 전달했다. 1993.04.01
- [특별기고(寄稿)]신(新)경제와 노사(勞使)관계-협력적 노사(勞使)관계로 국제경쟁력 회복 이 인 제(李 仁 濟) 노동부장관 우리 경제는 최근 세계은행(IBRD)이 발표한 동(東)아시아 및 태평양 연안국가 개발보고서와 같이 바로 얼마 전까지 아시아의 4용(龍)의 위치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비상하지 못하고 과거 우리가 저개발국가로 여겼던 태국(泰國)·말레이지아 등과 같은 등급의 개발국가로 추락하고 말았다. 경제성장률을 보아도 작년은 4%대로 80년이후 가장 낮은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약화된 때문이며, 이는 우리 산업사회의 주체들이 8688년사이에 3저호황(低好況)을 누리게 된것을 마치 우리가 선진국에 들어선 것 같은 환상에 빠져 기업인과 근로자 모두가 진실로 경제하려는 의욕이 크게 떨어진데다가 민주화과정에서 집단이기주의가 분출하고 노사(勞使)분규가 다발(多發)한데 근본원인이 있다. 노사(勞使)분규, 경제침체의 주인(主因) 새로운 정부는 경제살리기를 개혁의 과제로 선정하고 신(新)경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신(新)경제에는 무엇보다도 노사(勞使)관계가 가장 기본적 내용이 될 것이다. 우리경제를 살리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가장 먼저 해결할 과제가 바로 경제의 생산주체인 근로자와 기업경영자 사이의 노사(勞使)관계가 잘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요인인 국제경쟁력을 회복하는데는 단순한 기술도입이나 금융지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 산업사회의 생산주체인 근로자와 경영자가 서로 화합하는 바탕 위에서 근로자는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발휘하여 기술개발에 앞장서고 기업가는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근로자와 함께 경영과 생산에 전념하고 기술개발 투자를 늘려나가야 국제경쟁력이 근본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협력적 노사(勞使)관계는 우선 노사(勞使) 모두가 공동체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경영자가 근로자를 진정한 경영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을 보여야 하며, 기업의 경영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근로자에게 성실하게 알려주고 근로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근로자는 기업이 생활의 터전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기업의 발전이 곧 자신의 발전이고, 자신이 기업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진심으로 생산성(生産性) 향상에 앞장서게 된다. 정부는 이렇게 노사(勞使)가 화합하고 협력하여 함께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또 지원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노동부가 노사(勞使)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정부(政府), 노사(勞使)화합 적극지원 지난 몇년간 노사(勞使)분규가 극심하여 이를 해결하는데 매달리다보니 근로자는 노동부가 기업가 편이 아니냐 하는 불신(不信)이 생겨났고,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노동부가 일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는다는 불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노동부는 행정을 수행함에 있어 엄정중립(嚴正中立)을 지키고 노사(勞使)대표에게 정책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는 등 노사(勞使)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우선해 나감으로써 노사(勞使) 양측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해 나가도록 하겠으며, 이를 위해 장관을 비롯한 노동부 전(全) 공무원이 직접 산업현장을 뛰면서 노사(勞使)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현장(現場)중심의 행정을 펼쳐나갈 것이다. 임금인상(賃金引上) 문제에 있어서는 노사(勞使)가 임금와 물가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고통을 분담한다는 자세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임금을 안정하는데 합의하는 노력을 이끌어 낼 것이다. 87년 노사(勞使)분규가 폭발적으로 발생한 이후 임금인상 드라이브가 계속되었지만 이제 우리 경제의 능력으로 임금의 고율(高率)인상에는 한계가 있고 근로자들도 고율(高率)의 임금인상으로 사기가 진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는 근로자의 임금안정노력에 대한 보상과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사기를 앙양하기 위하여 근로자에 대한 복지시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나갈 것이다. 복지시책중 가장 중요한 근로자 주택지원은 계속 확대하여 나갈 것이며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에 대하여는 사업내 근로복지기금 설치 등 자주(自主)복지제도를 확충하고 내실화(內實化)하도록 지도하고, 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하여는 공공복지대책을 추진할 것이며 그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하여 근로복지진흥법을 제정할 예정이다. 법(法)집행 엄정중립(嚴正中立) 지킬터 노사(勞使)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정부는 법(法)집행에 있어서 엄정(嚴正) 중립(中立)을 지킬 것이며 노사(勞使) 모두에게 공정하게 법을 적용할 것이다. 기업경영자가 우선 법을 지켜야 감히 근로자가 법을 어기지 않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 법이 권위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노사(勞使) 모두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어느 쪽이든 희생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노사(勞使)문제가 발생하면 기업경영자는 종래와 같이 정부에 의지하는 타성을 버리고 노사(勞使)문제의 해결주체(主體)로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해결에 앞장서는 의지와 자세를 보여야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바로 경제 재도약이다.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는 정치·문화는 물론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도 다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노사(勞使)관계의 안정과 노동에 대한 투자가 없이는 근본적인 경제 재도약은 불가능하다. 노사(勞使)간의 화합과 협력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우리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선 경영자가 앞장서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고, 정부는 노사(勞使)관계의 안정과 발전을 위하여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1993.04.01
- [신경제(新經濟)로 새로운 도약을<2>경기(景氣)활성화]설비(設備)투자·수출(輸出)촉진에 역점(力點) 정부가 금번 신경제(新經濟) 100일계획의 7대(大) 중점추진과제중에서 경기활성화(景氣活性化)를 첫번째 과제로 선정한 것은 침체된 경제에 활력(活力)을 불어넣어 향후 본격화될 제도개혁이 무리없이 추진될 수 있게 하는 기반을 마련하는데에 그 목표가 있다. 최근의 우리경제는 지난해 4·4분기 경제성장률이 81년이후 최저수준인 2.8%에 그쳤고, 특히 향후의 성장잠재력과 연결되는 설비투자가 무려 10%나 감소하는 등 지나치게 위축되어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어려움은 대내외(對內外)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른 구조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 신제품 개발, 생산성향상 및 기술개발 등을 통해 산업의 경쟁력(競爭力)을 제고하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라 할 수 있겠지만, 현재와 같이 경기침체의 정도가 심각하고 더구나 제도개혁의 추진으로 단기적인 충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중(中)·장기적(長期的)인 구조개선대책에 앞서 단기적인 활성화 조치를 추진하여 가라앉은 분위기를 움직이는 분위기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다만 지나친 확대정책은 물가(物價)와 국제수지(國際收支)에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100일 계획에서는 기업의 투자와 수출을 촉진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도록 하였는데, 첫째 지난 1월에 1차로 인하한 바 있는 공금리(公金利)를 3월26일을 기해서 추가인하함으로써 금리가 더욱 하향안정(下向安定)될 수 있도록 하였다. 둘째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개선과 금리안정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통화공급을 시중(市中) 자금사정을 보아가며 신축적으로 운용하기로 하였으며 기업의 투자진작을 위해 각종 설비자금을 연초계획보다 5천7백억원이 추가된 9조7천4백억원으로 확대하고 외화표시(外貨表示) 국산기계구입자금의 융자절차와 거래조건도 더욱 간편하게 개선하였다. 또한 해외증권 발행요건을 완화하고 수출용원자재(輸出用原資材)의 연지급수입(延支給輸入)허용기간을 현행 90일에서 1백20일로 연장함으로써 해외자금활용이 확대되도록 하는 한편,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도 더욱 원활해질 수 있도록 금년도 유상증자(有償增資)와 회사채(會社債) 발행규모를 전년보다 3~5조(兆) 증가한 18~20조(兆) 수준까지 늘리기로 하였으며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요건만 구비되면 유상증자(有償增資)를 전액(全額) 허용키로 했다. 아울러 수출촉진을 위해서 중소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융자단가(融資單價)를 현행 1달러당 6백50원에서 7백원으로 상향조정하고 수출입은행(輸出入銀行)의 연불수출(延拂輸出) 지원규모도 당초의 20억에서 30억달러로 증액토록 하였다. 셋째 조세면에서는 제조업체가 국산기계로 설비투자를 할 때 투자금액의 일정비율을 세금에서 공제해주는 임시투자세액 공제제도의 적용시한을 당초 금년 6월말에서 12월말까지로 연장하고, 간이관세환급제도의 수혜대상기업을 연간 환급실적 2천만원 이하에서 5천만원 이하까지 확대하기로 하였다. 또한 재정지출면에서는 중앙정부가 투자기관예산(豫算)의 60%정도를 상반기중에 앞당겨 집행하도록 하여 작년 상반기보다 약 6조원가량의 수요진작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하였다. 장 승 우(張 丞 玗) 기획원(企劃院) 경제기획국장 1993.04.01
- [4월 독립운동가]계원(桂園) 노백인(盧伯麟)선생 국가보훈처 선정 국가보훈처는 4월의 독립운동가로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역임한 계원(桂園) 노백인(盧伯麟)선생(1875~1926)을 선정했다. 노백인(盧伯麟)선생은 탁월한 군사전략가로 1919년 미(美)캘리포니아주(州)에 한인 비행사 양성소를 설립, 항일(抗日)독립운동에 대비한 한인 비행사를 양성하는 등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선생은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1895년 대한제국의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일(日) 게이오(京應)의숙과 세이조(成城)학교에서 수학한 뒤 일본(日本)육사에서 신식 군사학(軍事學)을 배웠다. 盧선생은 1900년 일본으로부터 귀국, 한국(韓國)무관학교 보병과 교관으로 임명된 것을 필두로 육군무관학교장 헌병대장 육군연성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한국군대가 해체되자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가 광무(光武)학당을 세우고 교사가 되어 후진양성에 주력했으나 한일합방후인 1915년 미국(美國)에 망명, 하와이에서 국민군단을 창설, 독립군을 양성했다. 선생은 1919년에는 중국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과 국무총리 참모총장도 두루 역임, 항일(抗日)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93.04.01
- [신한국인(新韓國人)<3>]“장애는 불편일 뿐 불가능이란 없어” 역경딛고 모교(母校)강단선 이 익 섭(李 翼 燮) 교수 장애인들이 사회적 편견에 대해 불평을 하기보다는 도전방향을 자신에 두고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연세대(延世大) 사회사업학과의 장애인 교수 이익섭(李翼燮)씨(42). 李교수는 시각장애인으로 지난 2월 모교인 연세대(延世大)로부터 조교수 발령을 받아 신학기부터 강단에 섰다. 비록 자신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이 보내는 진지한 눈길과 배움의 열기가 더없이 뜨겁게 느껴진다는 李교수. 그는 지난 63년 서울사대부속국민학교 5학년때 망막염에 걸려 그만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다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두달간 매일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울기만 했습니다. 李교수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난 것은 어머니 백을순(白乙順)여사의 눈물겨운 뒷바라지가 있었기 때문. 어머니는 점자를 배워 그에게 일일이 가르쳐주고 잠자리에서는 장애를 극복한 위인들에 관한 얘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그가 맹(盲)학교를 거쳐 연세대(延世大) 신학과를 졸업할때까지 그의 가슴을 시종 억죄고 있었던 것은 정작 육체적 어둠이 아닌 사회의 편견과 장벽이었다. 李씨는 끈질긴 집념으로 연세대(延世大)를 졸업한 후 다시 미국(美國)으로 유학, 마침내 시카고대학에서 사회복지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李씨의 이같은 집념의 드라마 뒤에는 부인 김종애(金鍾愛)씨의 뒷바라지가 큰 힘이 되었다. 부인 金씨는 李교수의 유학시절 내내 옆에서 자료를 챙겨주는 등 학업을 마칠 때까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숱한 좌절을 겪을때마다 장애는 불편일 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다짐을 수없이 반복했다. 李교수가 학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귀국한 것은 한국에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 장애인들은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해하는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은 그들이라는 대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李교수는 장애인들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고의 노력끝에 역경을 딛고 꿋꿋이 일어선 이익섭(李翼燮)교수의 삶은 장애인은 물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신한국인(新韓國人)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1993.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