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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주년 학생독립운동 기념식 기념사

연설자 : 국무총리 연설일 : 201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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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학생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광주전남 시도민 여러분! 학생독립운동 기념식을 처음으로 정부가 주관해 오늘 이곳 광주에서 열고 있습니다.

먼저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선배 학생독립운동가 여러분의 명복을 빌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광주학생독립운동 동지회 회원과 후손, 학생독립운동 참여학교의 학생과 지도교사 여러분, 고맙습니다.

학생독립운동 기념행사를 정부 주관으로 격상하는데 애써주신 학생독립운동 후손회 강태진 회장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최철 이사장님, 이용섭 광주시장님, 장휘국 광주교육감님, 김영록 전남지사님, 장석웅 전남교육감님과 지도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결단해 주신 문재인 대통령님과 국가보훈처, 교육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53년 정부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인 오늘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학생의 날’은 정권에 따라 기복을 겪었지만, 기념행사는 광주교육청이 주관했습니다. 그날의 이름이 ‘학생의 날’이고, 학생독립운동이 광주에서 시작됐다는 이유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세상의 이해와 정부의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늦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학생독립운동을 정당하게 평가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로 올해부터 학생독립운동 기념행사를 정부 주관으로 격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89년 전 오늘, 나주에서 촉발돼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독립운동은 청년항일투쟁사에서 특기할 사건이었습니다. 음력으로 우리의 개천절이자 메이지 일왕의 생일이었던 그날, 한일 학생들의 광주역 격투와 우리 학생들의 광주시내 가두시위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학생시위는 서울을 거쳐 삼남 지방과 전국으로 확산돼, 이듬해 3월까지 다섯 달 동안이나 줄기차게 계속됐습니다. 국내에서 간도까지 확대된 시위에는 3백 개 이상의 학교에서 5만4천 명 이상의 학생이 참가했습니다. 교통도, 통신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그 시대에 학생시위가 그토록 빠르고 넓게 퍼진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광주 학생들은 그 3년 전부터 비밀결사조직 ‘성진회’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준비했습니다. ‘성진회’는 ‘독서회’로 이어져 1929년 11월 3일 항일시위를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청년총동맹과 신간회 같은 민족운동단체들과 결합해 전국적 항일투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말해 주듯이, 학생독립운동은 주체가 학생이었을 뿐, 성격은 항일독립운동이었습니다. 장소도 광주에서 시작됐지만 이내 전국으로 확대됐습니다. 광주교육청 주관의 기념식을 올해부터 국가보훈처가 주관하고 부대행사 등을 교육부가 맡기로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학생독립운동이 항일투쟁의 맥락에서 올바르게 평가되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학생독립운동을 재평가하기 위해 넓게 지혜를 모으고 성심껏 지원하겠습니다. 학생독립운동 참가자들을 더 발굴해 독립유공자로 모시겠습니다. 우선 오늘 건국포장을 추서 받으신 고(故) 조아라님, 대통령표창을 추서 받으신 고(故) 부기준, 윤오례, 박성희, 이동화, 최성반님과 그 유족들께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포상과 함께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현창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청년학생 여러분!

우리 청년학생들은 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역이었습니다. 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10년 동안 응축된 민족역량의 대폭발이었고, 1930년대 민족운동의 기폭제였습니다.

그 정신이 해방이후 독재정권 때는 1960년 대구 2·28 학생시위, 마산 3·15 학생시위, 그리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4·19혁명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신군부의 정치적 야욕에 맞선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10 민주항쟁으로 계승됐습니다. 그리고 국정농단이 드러난 재작년 겨울부터 작년 봄까지 촛불혁명으로 장엄하게 부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화는 청년학생들의 피어린 투쟁에 힘입은 바 큽니다. 역대 청년학생들의 희생을 우리 역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청년학생들께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밖으로 당당하고 안으로 공정한 대한민국, 평화롭고 번영하는 한반도를 이루어 가는데 청년학생 여러분이 늘 함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이자 저의 모교인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 자랑스럽게 서있습니다. 기념탑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피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저는 이제 피끓는 학생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념탑의 그 글귀는 학생 때와 똑같이 지금도 제 심장에 뛰고 있습니다. 세월이 더 흘러도 기념탑의 그 스물네 글자는 두고두고 제 가슴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끝으로 함께해주신 박지원, 박주선, 천정배, 최경환, 송갑석 국회의원님을 비롯한 귀빈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인사말씀 올립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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