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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뒤, 2118년 설날 아침 풍경

2018.02.14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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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2118년 설날 아침. 서울 시내의 거리는 한적하기만 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인사를 끝으로 뉴스 앵커가 아침 방송을 마무리했다. 극장 스크린 크기의 초울트라 스마트TV를 향해 리모컨을 누르자, 역시 설날 분위기를 전하는 방송이 나왔다.

증조할아버지 댁은 작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이 평온한 모습이었다. 119세에 접어드신 증조할아버지는 아직도 정정하시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설 명절만큼은 꼭 참석하려고 했었다. 설 전 날, 3살짜리 딸과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들 녀석을 데리고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나도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어느덧 31세가 된다.

“이번 설에는 네 증조할아버지 댁에서 만나기로 했다. 5대가 모여 한번 놀아보자.”

할아버지께서 20여일 쯤 전에 이런 문자를 보내셨다. 최근 몇 년간 아버지 댁, 할아버지 댁, 증조할아버지 댁을 돌아가면서 설 명절을 보냈는데, 이렇게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직장인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부산-서울을 20분 만에 주파하는 초초고속진공열차를 타고 왔더니 정확히 20분 만에 서울역에 내렸다. 부산 집에서 증조할아버지 댁까지 딱 30분 걸린 셈이다. 서울역에 내려 하늘에서 달리는 공중택시를 탔는데 중간에 약간의 교통 체증이 있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몇 분 먼저 도착했으리라.

차례 상은 따로 차리지 않았다. 초울트라 스마트TV에 내장된 컴퓨터 버튼을 느리고 아이콘을 클릭하자 차례 상의 창이 활성화되었다. 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물론 증조할아버지의 아버지 사진과 지방을 불러왔다.

한자로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 한자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읽을 수가 없었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의 뜻을 할아버지가 설명해주셨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한글 지방으로 바꾸기로 이미 할아버지한테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다.

설 날 아침, 정갈하게 차린 아침을 먹었다.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음식이라는 떡국은 맛있었다. 며칠만에 먹어보는 쌀로 만든 음식이었다. 이미 87세를 넘기신 할머니와 60세가 되신 어머니, 그리고 29세가 되는 내 아내가 함께 오순도순 마련한 음식이었다. 118세 되신 증조할머니는 부엌에서 함께 음식을 준비하려다 며느리와 손주 며느리 증손주 며느리의 성화에 못 이겨 안방으로 돌아가셨다.

증조할아버지는 당신께서 18세 청년이었던 2018년의 설날 풍경을 말씀해주셨다. “차례를 지내는 집도 물론 많았어. 하지만 젊은이들은 명절이 아닌 휴가 기간이라 생각해 외국의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무척 늘어났지.” 증조할아버지는 당시 설날에는 세뱃돈을 주는 풍속이 있었다면서 잠깐 말씀을 멈추셨다.

갑자기 초인공지능(Super AI) 컴퓨터로 가시더니 컴퓨터 화면을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러자 나와 아내의 팔에 파란불 신호가 나타났다. 각자의 팔 피부에 심어진 컴퓨터 칩에 50만원씩 입금되었다는 표시가 떴다.

“다 큰 저희들한테 무슨 세뱃돈이세요?”

증조할아버지는 이런 게 낙이라고 하며 껄껄 웃기만 하셨다.
세뱃돈 이야기가 끝나려는 순간, 90세 되신 할아버지께서 62세의 아들에게 윷놀이를 하자고 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문자로 말씀하신 “5대가 모여 한번 놀아보자”는 것은 윷놀이였던 셈이다. 119세에 접어들어 약간 거동이 불편하신 증조할아버지는 구경만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내가 한 팀이 되었고, 할머니와 어머니와 내 아내가 한 팀이 되었다.

가족 간의 남녀 대결이었다. 윷이나 윷놀이 말판을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극장 스크린 크기의 초울트라 스마트TV의 버튼을 누르자 모니터에 윷과 말판이 떴다.

할머니가 가장 먼저 클릭을 하자 ‘도’가 나왔다.

“그렇게 힘이 없으세요?”
“힘으로 윷을 던져? 클릭을 조절해야지.”

다음은 할아버지 차례였다.
“윷이야!”

어머니가 클릭하자 ‘모’가 나왔다.
“와~~ 퇴도다.”

아버지 차례가 되어 클릭하자 한 칸 뒤로 후퇴하는 ‘퇴도’가 나왔다. 한바탕 웃음보따리가 펼쳐졌다.

“아버지도 같이 하시죠!”
90세의 할아버지가 소파에 기대 앉아계신 119세의 증조할아버지께 하신 말씀이었다.
“아니면 어머니가 대타로 나오세요.”

118세 되신 증조할머니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시면서 한사코 사양하셨다. 2118년, 우리 가족의 설날 아침 시간은 그렇게 무르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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