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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中峰)의 평론가’ 김치수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2014.10.17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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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예비평의 새 틀을 보여준 평론가 김현(1942~1990)이 타계한 뒤, 그의 대학 친구이자 <문학과 지성> 동료였던 평론가 김치수는 김현에 대해 이런 평을 했다. ‘속독 속필 예봉’. 김현은 그렇게 빠르게 ‘이 세상을 다 읽고 가신 이’(평론가 정과리의 말)이며 시인 소설가 본인들보다 더 예리하게 그들의 작품을 알아보고 감식해 낸 구안지사(具眼之士)였다.

14일 74세로 타계한 김치수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개인적으로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각종 모임과 행사에서 본 그분의 모습과 글로 판단하건대 김치수는 ‘난독(暖讀) 정필(正筆) 중봉(中峰)’의 평론가였다고 말하고 싶다.

난독, 따뜻한 독서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싶지만 ‘그의 섬세함은 작가에게 두려움을 자아내고 자상함은 독자에게 글 읽기의 열정을 불러일으켰다’(이것도 정과리의 평). 그리고 중봉. 중봉이란 서예에서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용필(用筆) 방법의 하나다. 붓끝이 항상 글자의 점획(點劃) 중간에 위치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말이다. 그렇게 김치수는 따뜻하고 성실한 문학인이었고 중심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평론가였다.

지난 2006년 3월 17일 이화여대 L.G.컨벤션홀에서 제자 동료 문인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년퇴임기념식에서 퇴임 소감을 밝히고 있는 문학평론가 김치수.(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지난 2006년 3월 17일 이화여대 L.G.컨벤션홀에서 제자와 동료 문인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년퇴임기념식에서 퇴임 소감을 밝히고 있는 문학평론가 김치수. (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그는 2006년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직할 때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영상문화와 디지털 정보시대에도 문학은 죽지 않으며 디지털 문화 속에서 아날로그 문화로 남을 것이다, 문학이 존재하는 한 문학비평은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이제 35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하지만 문학은 계속 내 생활의 중심이 될 것이다.

김치수는 다음 세 사람의 말을 기억하면서 문학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1)마르쿠제 “(억압이 없는 완전한 자유를 획득한 다음에는) 우리 생애에 처음으로 자유로워진 나는 그때 비로소 자유로운 상태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자유롭게 생각할 것이다.” 2)장 리카르두 “(문학은) 배고픈 아이에게 빵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에 배고픈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문으로 만드는 것이다.” 3)롤랑 바르트 “에로티시즘의 극치는 옷깃 사이의 틈새에 비치는 살결에 있지 벌거벗은 육체에 있는 게 아니다.”

그중에서도 리카르두의 말을 김치수는 이미 1982년에 낸 평론집 <박경리와 이청준> 서문에 쓴 바 있다. 문학의 의미와 존재이유에 대한 확신이 점차 커지고 공고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2010년에 낸 마지막 책 <상처와 치유>에서 “나는 우리 문학이 다루고 있는 공통된 주제가 개인이 겪은 역사적 상처라는 것을 발견했다”며 “문학은 상처와 고통의 정체를 밝혀주고 그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썼다. 덧붙이면 “문학은 새로운 인물의 창조를 통해서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우리가 아파하고 있는 고통의 정체를 밝히고 그것의 적절한 표현에 도달하고자 하는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쓰고 싶은 만큼 많은 글을 쓰지 못해 “손길의 느림에 대해 끊임없이 절망한다”고 했던 김치수는 같은 불문학자이며 평생 문우였던 김현의 속필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명한 문체로 단정하게 써내려간 그의 평론은 마치 선생님이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듯 친절해 읽는 맛도 일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1970년 김병익, 김주연, 김현과 함께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창간, 이른바 4K의 한 명으로 한국문학 비평계에 한 획을 그었다. 대학시절인 1963년부터는 소설가 김승옥, 김현, 최하림 시인과 함께 한글세대 최초의 동인지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했다. 광복을 앞두고 태어나 한글로만 교육을 받은 세대가 문단에 등장하면서 한국문학은 풍요로워지고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김치수는 1994년 한국기호학회 설립을 주도하며 전 세계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기호학 이론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람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런 문학적 성과와 함께 인간 됨됨이를 높이 평가한다. 선하고 성실하며 원만한 성품으로 <문학과지성>의 발전은 물론 진영논리로 갈라진 문단의 화합과 소통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김병익이 문화예술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 그를 이 위원회 산하의 문학나눔추진위원회에 영입한 것이나 이명박 정부 때 예술위원으로 임명한 것도 갈라진 문단의 균형을 잡아달라는 안팎의 주문이었다. 그는 우리 문단의 진영논리는 물론 문화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로 나누는 이분법도 지양하며 균형을 지향했던 사람이다.

문학은 앞으로도 죽지 않겠지만 TV, 비디오, DVD, 휴대전화, 위성방송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문자문화와 함께하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순간적인 재미를 전달하는 능력에서 문자문화는 이들 매체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김치수에 의하면 “문자문화는 기본적으로 시간을 요구한다. 즉각적이지 않다. 문자는 반성하는 시간을 주고, 비판하는 이야기를 주지만 다른 매체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김치수는 자신이 재직했던 이화여대와 장남이 교수로 있는 카이스트에 불문학 서적 등 인문서 3,000여 부를 기증한 바 있다. 또 희귀 초판본 도서와 문학잡지 등 200여 부를 이미 별세 2개월 전에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에 기증했다. 평론가 김치수는 그렇게 문자문화를 남겨주고 갔다.  

임철순

◆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언론문화포럼 회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보성고 고려대 독문과 졸. 1974~2012 한국일보사 근무. 기획취재부장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논설고문으로 ‘임철순칼럼’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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