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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그 이상의 의미, 정물화의 재발견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정물화의 대가, 샤르댕과 세잔

2015.07.31 변종필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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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그림은 종교화,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등 장르별로 구분한다. 이 중 집 안의 벽면을 장식하는 그림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풍경화와 정물화이다.

미술사적으로 정물화는 고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제 ‘정물화(Still Life)’라는 용어가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17세기 중반이다. 신화나 종교를 다룬 그림과 다르게 정물화는 실제 존재하는 대상을 그림의 표현대상으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정물화는 과거에는 종교(신화)화, 역사화, 풍경화에 밀려 예술적 가치가 평가절하되었지만, 현대미술에서의 인기는 다른 장르의 작품을 뛰어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우선으로 정물화는 종교화나 역사화처럼 해박한 지식 없이 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다른 장르와 비교해 그림 크기가 작아 일반 가정집에서 소장하기 쉽다. 별다른 장식이나 고가의 가구 없이 여러 사물이 그려진 정물화 한 점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점이 큰 매력이다.

정물화가 다른 장르를 제치고 미술계 안팎에서 사랑을 받는 장르가 되는데 영향을 끼친 화가들이 있다.

샤르댕(왼쪽)과 세잔
샤르댕(왼쪽)과 세잔

많은 화가 중 ‘정물화의 시조’로 통하는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Simeon Chardin, 1699~1779)과 ‘세잔식 정물화’로 불리는 독창적 작품세계를 정립한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을 꼽을 수 있다. 두 사람은 동시대 화가는 아니지만, 정물화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비교할만하다.

샤르댕은 18세기 프랑스화단에서 독창적 화가로 ‘정물화의 시조’라는 칭호에 걸맞게 오늘날 우리가 즐겨보는 정물화의 표본을 제시한 화가이다. 샤르댕 이전까지는 꽃, 과일, 해골, 책, 음식, 악기, 그릇, 거울 등 정물화의 주요 소재가 사물의 본질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대부분 정물화가 바니타스(vanitas, 인생무상, 죽음의 불가피성 등)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예컨대 샤르댕보다 일찍 정물화로 네덜란드에서 인기를 얻었던 하르멘 스텐웨이크의 그림을 보면 정물화의 대표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해골 주변에 놓여있는 정교하고 값비싼 물건을 통해 세속적인 즐거움이나 물질(재력)의 허망함을 나타내고 있다.

 좌: 하르멘 스텐웨이크 < 정물 : 인생의 헛됨에 대한 알레고리> 1640년경  / 우: 빌럼칼프 <오랜된 명조 생강단지가 있는 정물>,1669 , Oil on canvas, 77 x 65,5 cm
왼쪽: 하르멘 스텐웨이크 < 정물 : 인생의 헛됨에 대한 알레고리> 1640년경 / 오른쪽: 빌럼칼프 <오랜된 명조 생강단지가 있는 정물>,1669 , Oil on canvas, 77 x 65,5 cm

반면, 샤르댕은 사물의 상징적 의미보다는 실제 존재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다른 화가들이 다루지 않은 일상의 소소한 사물들을 표현대상으로 삼은 점이 가장 큰 변화이다.

샤르댕이 활동하던 시기는 화려함과 우아함을 강조한 로코코(Rococo) 양식이 유행했던 시기이다. 장식적이고, 신화 속의 관능적인 몸매를 뽐내는 누드화가 귀족들에게 사랑받던 때였다. 정물화의 경우도 빌럼 칼프(Willem Kalf, 1619~1693)와 같은 고가의 사물이 등장하는 화려한 정물화가 인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유행과 다르게 장식성을 배제하고, 일반서민들이 부엌살림에 사용하는 정물을 당당하게 표현대상으로 등장시킨 샤르댕의 선택은 당대 화단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샤르댕,1760. Oil on canvas,71x98cm, 루브르박물관
샤르댕,1760. Oil on canvas,71x98cm, 루브르박물관

‘샤르댕은 재능은 있지만, 사과와 배, 빵조각, 깨진 접시, 칼과 포크 등 하찮은 물건을 그린다’는 식의 비판을 받았다. 그림의 수요층인 귀족에게는 노동계급의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샤르댕의 그림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샤르댕의 정물화가 지닌 힘은 평범한 일상이나 사물이 어떤 귀족적 삶이나 고가의 물건보다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는 것에 있다. “샤르댕은 배 한 알이 여자만큼 생명으로 가득할 수 있고, 물단지가 보석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라고 평가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견해는 적절한 표현이다.

샤르댕이 정물화의 폭을 넓혔다면 세잔은 정물화를 깊이 있게 연구하여 다른 어떤 장르와 비교해 결코 예술성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준 화가라 할 수 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를 대표하는 세잔은 인상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대담한 색채, 원근법의 해체와 활용, 독특한 구성 등의 조형적 특징을 앞세워 눈에 보이는 외관의 모방을 탈피한 그림을 제시했다. ‘생빅투아르 산’과 ‘에스타크 풍경화’로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파악한 관점이 후기 인상주의 이후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세잔, 사과와 병이 있는 정물 , 시카고 미술관
세잔, 사과와 병이 있는 정물 , 시카고 미술관

그러나 세잔 하면 역시 과일정물을 통한 사물의 본질적 구조를 통찰한 화가로 더 유명하다. 특히 세잔은 사과를 소재로 한 정물화를 많이 그렸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정복하고 싶다’는 심오한 말을 내뱉었을 만큼 사과를 통해 자신의 예술정신을 펼쳐나갔다.

사실 사과는 인류의 시작부터 인간의 삶 속에 깊은 인연을 맺으며 그 신화를 이어간 유일한 과일이다. 아담에서 파리스, 윌리엄 텔, 아이작 뉴턴, 스티브 잡스까지 사과는 언제나 창조적 신화를 낳는 과일이었다. 이러한 창조신화를 미술에서 이어간 화가가 세잔이다.

세잔이 사과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다른 과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과만의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사과는 수백 가지의 색을 지녔다. 포도, 바나나, 수박, 오렌지, 앵두, 자두 등 그림의 소재로 등장하는 그 어떤 과일도 사과만큼 다양한 색을 지니지 못했다.

세잔에게 사과가 늘 새로운 대상이었던 이유이다. 그에게는 한 달 전 그렸던 사과와 어제 그렸던 사과가 같지 않았다(이는 과학적으로도 엄연한 사실이다). 세잔이 사과를 특별한 표현대상으로 삼은 이유이다. 똑같지 않은 사과를 언제나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같은 방법으로 감상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세잔,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1890~94 캔버스 유채 65.5×81.3cm 시카고 미술관
세잔,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1890~94 캔버스 유채 65.5×81.3cm 시카고 미술관

이 같은 세잔의 생각은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세잔의 정물화는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는 ‘낯선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익숙한 방식의 그림이 아니었다. 결국, 늘 같은 방식으로 보는 것에 익숙한 관람자와 같은 방식으로 보는 것을 꺼린 화가와의 시각차가 세잔의 그림이 지닌 차별성을 낳았다.

사물의 본질적 구조를 드러낸 것에 몰두한 세잔의 시각은 동시대화가들과 분명히 차별화된 정물화를 추구하며, 많은 화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세잔은 ‘충동적이고 거친 성격’, ‘불완전한 가정생활’, ‘촌스런 복장과 예의 없는 행동’을 지녀 원만한 교유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성격이었다. 그런데도 동시대 화가들은 세잔을 ‘실제와 추상을 독특한 방식으로 혼합하는 법을 발견한 화가’로 평가하며, 그를 ‘현대회화의 아버지’로 부를 만큼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최고의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나의 유일한 스승,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라고 그의 예술을 높게 평가했다. 이 정도면 그가 호언장담했던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라는 목표를 이룬 셈이다.

‘화가들은 세상에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알랭 드 보통 저, 정영목 옮김 <불안>이레, 2005)라며 샤르댕의 예술을 평가한 알랭드 보통의 시각처럼 예술의 위대함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변함없는 가치를 준다.

시대를 뛰어넘어 정물화의 또 다른 새로움을 느끼게 한 샤르댕과 세잔의 진정한 창조적 가치가 여기에 있다.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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