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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지 않을 권리’와 ‘잊혀질 권리’

2016.04.29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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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는 모바일 메신저가 여러 개 깔려 있다.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밴드, 라인, 인스타그램이 있다. 카톡이 감시될 수 있다는 말에 한때 텔레그램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카톡과 밴드에는 개설된 방도 많다. 가족, 부부, 친지, 중고등학교와 대학 동창, 친목 모임, 동호회 외에도 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주는 방들이다. 수시로 울리는 알람과 메시지 때문에 환경설정에 들어가서 알림 기능은 다 꺼놓았지만, 그래도 하루에 백 번 이상은 휴대폰을 들여다  보는 거 같다.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놓은 이상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방에서 나가면 다시 초대가 온다. 자주 확인을 하지 않으면 중요한 모임에 나가지 못하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단톡방(단체 카톡방)에 메시지를 남기면 몇 명이 읽었는지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많이 읽히지 않았으면 별 것도 아닌데도 마음이 아프다. 원치 않는 사람으로부터 카톡이 오면 잠시 고민도 한다. 읽어야 하나, 무시해야 하나. 읽고 나면 못 봤다는 거짓 변명의 여지는 사라진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 비행기 모드로 설정해 놓으면 읽어도 안 읽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보낸 메시지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자폭’되는 앱도 개발됐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사람들과 겹겹이 연결돼 있다. 뉴밀레니엄 이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내 모습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지만, 개인적 존재로서의 내 여지는 그만큼 잠식됐다. 연결되는 건 당초 나의 권리는 아니었다. 그냥 필요에 따른 자발적 의사의 결과였다.   

최근 한 기업이 밤 10시 이후에는 업무와 관련된 메신저를 보내는 것을 금지하고 그런 상사에게는 인사 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지침을 마련해 뉴스를 탔다.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이다. 연결은 나의 권리는 아니었지만, 연결되지 않는 건 권리가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올해 초 이런 권리를 노동개혁법에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하자 워싱턴포스트는 자유·평등·박애에 이은 새로운 권리 탄생이라고 보도했었다.

특정인으로부터,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목적으로 연결되는 걸 원천적으로 배제시키는 게 법적인 권리 개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긴 한다. 이미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고 제도적으로 많이 진전된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나는 검색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검색 화면에서,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나를 딜리트(delete)하는 게 권리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표현의 자유와 공익에 반할 수도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온라인에 올린 것은 삭제를 요청할 권리를 보장받는 추세이다.

인간의 권리도 진화하는 것인가 보다. 행복추구권이나 참정권 같은 인간의 기본권은 개인의 자각이나 투쟁에 의한, 공화정과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시대정치적 상황의 결과였다. 하지만 21세기에 탄생하는 인권은 기술문명의 발달에 따른, 과거엔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새로운 개념들이다.

디지털기기의 발전은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삶의 사적·공적 영역의 명확한 구분과 조화스런 균형을 무너뜨렸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우리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해방돼 삶의 가치를 회복하자는, 디지털 시대 인본주의적 운동의 시작이 아닐까. 근무 시간 후에 직장으로부터 받는 메시지는 번지점프를 하거나 배우자와 다툴 때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외국의 연구 결과가 있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87%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문제는 법과 제도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일종의 통제인데, 그 통제가 어느 경우와 범위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는 오랜 시간 사회적 합의와 규범이 필요할 것이다. 또 나라마다 사회마다 문화적 차이가 있는데 국경이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과연 얼마나 효율적일 것인가도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 잊혀질 권리 문제만 해도 논란이 분분하니,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제도화하기엔 꽤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디지털 인류에겐 새로운 권리장전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로봇이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대신할 미래에는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또 어떤 인간의 권리가 탄생할지 모르겠다. 교육을 거부할 권리, 어디에든 등록되지 않을 권리, 사랑하지 않을 권리…그런 권리들이 나오지 말란 보장도 없지 않을까.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인, 인터넷한국일보 대표이사,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는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위원이며,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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