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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넘어 희망을 꿈꾸었던 기억의 ‘조각’들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기마상의 대결 - 마리노 마리니 VS 권진규

2016.05.25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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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조각을 대표하는 권진규(1922~1938)와 이탈리아 현대조각을 대표하는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 1901~1980)는 기마상을 단골 주제로 삼은 작가다.

두 작품은 말과 사람이 일체형처럼 연결된 점이 닮았다. 말 머리에서 목까지의 처리기법, 유독 짧게 처리한 꼬리, 말과 사람사이의 친밀도 등이 매우 유사하다. 무엇보다 기수를 영웅처럼 표현하던 서양조각의 전통에서 벗어나 어떤 욕망이나 욕심도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 등장하는 게 이채롭다.

좌-권진규 作 <말과 소년> 1960년대, 테라코타. 우-마리노 作 <기수> 1947년, 청동
左-권진규 作 <말과 소년> 1960년대, 테라코타. 右- 마리노 作 <기수> 1947년, 청동
 

미술사에서 기마상이 제작된 역사는 오래다. 역사 속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인물을 공공성 목적으로 영웅화해 기마상으로 제작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예를 들어 로마 시대에 제작한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상>이나, 한국의 <강감찬 장군상> 등 동서양을 떠나 위대한 인물을 제작한 동기는 비슷하다.

말의 역동성과 인물의 영웅성을 최대한 강조하며 예술성보다 국가에 충성하거나 애국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교육적 효과에 초점을 둔 것이 이러한 조각상의 특징이다. 이처럼 공공미술의 성격을 지닌 조각품은 목적성이 분명하다.

左-김영중 作 <강감찬 장군상>. 右-<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원작>
左-김영중 作 <강감찬 장군상>. 右-<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원작>
 

반면, 현대조각에서 기마상은 공공성보다는 작가의 주관적 성향을 중시한 미적감상 대상으로서 독창적 표현을 중시한다. 고대 기마상이 유지했던 기념비적인 규모와 영웅성을 강조한 표현에서 벗어나 인간의 원초성이나 사물의 본질, 내면의 세계 등을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마리노 마리니와 권진규가 여기에 속한다.

마리니와 권진규의 기마상은 고독, 불안, 침묵 등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한 회의를 자신들만의 독자적 조형성으로 구축해낸 공통점을 지녔다.

전쟁으로 참혹하게 소멸된 인간성에 대한 고발적 자세와 인간의 본성을 찾기 위한 외로운 방황이 강하게 도출된다. 두 작가의 조형세계가 닮은 것은 권진규가 일본유학 시절에 마리노 마리니를 접하고 그의 조각세계에 심취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로댕과 마욜, 부르델 이후 서양 조각의 중심에 있던 대가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세계에 도입하여 궁극에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추구했다.

닮은 듯 다른 기마상
기마상을 통한 두 작가의 차이점을 좀 더 살펴보자. 우선, 말의 표현이 다르다. 마리니 작품의 말이 권진규 작품의 말보다 훨씬 날렵하다.

목을 길게 앞으로 내밀고, 가느다랗고 긴 다리로 서 있는 모습이 긴장감을 준다. 그런데 말 위에 앉아있는 기수는 오히려 느긋하다. 어떤 안전장치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 무덤덤하게 말 위에 앉아있다.

권진규 作 <말과 소년>
권진규 作 <말>
권진규의 <말과 소년>은 마리니의 작품과 정반대이다. 소년은 잔뜩 긴장한 듯 뻣뻣하게 앉아있고 말이 긴 목을 돌려 소년과 입맞춤하려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마리니의 말이 근육질의 날렵한 다리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권진규 말의 다리는 운동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둔해 보인다.

말 다리가 긴장감이 풀려 좌우로 펼쳐진 듯한 유머러스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권진규의 작품은 마리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유머가 담겨있는 것도 특징이다.

철저히 고독했지만, 작품에는 언제나 인간애와 유머가 넘친다. 1960년대 작품 <말>을 보면 말이라기 보다는 공룡이나 기린에 가까운 형상을 지녔다. 어린아이들이 보면 초식공룡인 브라키오 사우르스를 닮았다고 할 것 같다. 귀엽고, 따뜻하고, 동화적이다.

마리니의 기마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역동적 자세와 추상적 형태가 주를 이룬다. <기적>시리즈를 보면 초창기의 부드러운 구상성이 사라지고 안정적인 형상이 깨졌다.

기수와 말의 관계가 처음과 다르게 불화의 관계로 표현되면서부터이다. 기수가 더는 말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까지 되었다. 마치 불완전한 시대상을 상징하듯 말과 기수의 관계가 갈수록 위태롭게 묘사된다. 궁극에 ‘기적’처럼 다시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간과 동물의 조화로움을 되찾고 싶은 작가적 욕망이 엿보인다.

마리노 마리니-가마상 시기별 변화-1937/ 1947/1953/1953~1954
마리노 마리니-가마상 시기별 변화-1937/ 1947/1953/1953~1954
 

청동 VS 테라코타
마리니의 <기수>가 청동의 차갑고 견고한 맛을 내고 있다면 권진규의 <말과 소년>은 테라코타 특유의 투박함과 정겨움이 잘 묻어난다. 이는 재료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권진규는 당시 서구미술의 거센 물결 속에 다양한 장르의 미술이 밀려오던 한국미술계에서 시대흐름에 편승하는 재료나 작품세계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는 철과 같은 강한 재료 대신 전통재료인 흙을 선택했다.

그리고 제작방식은 테라코타(Terracotta)를 고집했다. 테라코타는 말 그대로 ‘구운 흙’이다. 작품규격, 작품가격이나 견고성 등 청동재료가 가진 장점을 멀리하고 굳이 테라코타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권진규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테라코타는 청동이나 돌과 달리 오랜 세월 변질하지 않고(영구성), 둘째, 작품을 굽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우연적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우연성), 셋째, 주물제작방식과 달리 작가의 손길이 마지막까지 작품에 가해질 수 있다(책임성)는 이유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방식까지 미술작품으로 인정되는 현대미술에 비하면 권진규의 제작방식은 처음부터 마지막 완성까지 온전히 작가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다르다.

이는 예술성과 미적 가치를 떠나 테라코타에 기울인 권진규의 작가 정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부드러운 흙이 가마 속 뜨거운 불길에서 고전의 색감과 질감을 되찾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쉽게 떨치지 못한 매력이었을 것이다.

실제 그의 테라코타를 보면 신라시대의 토우나 기마인물형 토기에서 볼 수 있는 고전의 질감과 기운의 흔적이 보인다. 유난히 공공성을 강조한 기념비적 조각상 제작을 싫어했던 그에게 테라코타는 부와 명예대신 당대를 뛰어넘어 한국조각사에 독보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하게 해줬다.

위-신라시대 / 아래-권진규 작품
위-신라시대 / 아래-권진규 작품
 

마리니의 청동은 로댕 이후 서양조각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재료이다. 청동이 조각의 재료로 사용된 것은 실로 오래전이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작품에도 청동조각상이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녔다. 청동의 장점은 견고성과 원본 틀만 있으면 복제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로댕의 <지옥의 문>이 그의 사후 복제될 수 있었던 것도 제작방법과 재료의 특성을 잘 살린 결과이다.


희망과 기적을 꿈꾼 작가
권진규와 마리노 마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 식민과 해방,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겪은 세대니만큼 그들의 작품에는 시대의 고뇌와 갈등이 담겨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오랜 전통과 역사 속에서 찾으려 했던 공통된 작가정신을 지녔던 두 사람에게 조각은 궁극에 아픔과 좌절을 극복하고 세상에 희망과 기적을 주는 대상이었다.

적막함과 차가움 속에 생명의 충만함을 담고, 과장된 동작이나 섬세한 묘사 없이도 리얼리즘의 본질을 느끼게 하는 두 사람의 작품에서 인간을 위한 조각을 꿈꾸었던 작가의 욕망이 보인다.

 마리니는 간결한 조형성, 과감한 생략과 입체의 본질을 탐구한 조형세계로 당대를 포함해 서양조각사에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면서 동서양을 넘어 많은 조각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권진규는 당대 한국미술계에서 철저히 외톨이였지만, 그가 걸어온 작품세계는 많은 조각가에게 희망의 길이 되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거듭되는 전시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았지만, 고혈압, 신경성 수전증, 신장염 등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병에 창작의 열정이 꺾이고 말았다. ‘인생은 공, 파멸’이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권진규의 삶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현실을 이겨내고 꿈과 유머를 잃지 않으려 했던 작가의 마음을 품고 있는 테라코타는 뜨거웠던 불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듯 온기가 느껴진다.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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