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 누리집 로고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콘텐츠 영역

야구판 수면 아래서 춤추는 잠수함

[김한석 기자의 스포츠 공감] 잠수함 투수의 진정한 경쟁력

2016.05.26 김한석 스포츠기자
인쇄 목록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 순위를 보면 선발야구가 강한 팀들이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퀵 후크’, 즉 선발이 3실점 이하로 잘 던지고 있는 데도 6회 이전에 투수를 교체하는 임기응변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선발, 특히 되도록 오래 마운드를 책임져주는 ‘이닝 이터’의 존재는 강팀의 조건이다.

그중 올 시즌은 유달리 ‘잠수함 선발’의 위세가 두드러진다. 공을 쥔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꽂는 오버핸드 투수와 달리 허리나 그 아래에서부터 공의 궤적을 그리는 사이드암, 언더핸드 투수들이 상위팀 선발진의 한 축으로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즌까지 나란히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사이드암 선발로 입지를 다진 LG 우규민과 NC 이재학 외에 넥센의 ‘중고신인’ 신재영과 정통 언더핸드인 SK 박종훈이 가세해 ‘옆구리 신드롬’을 낳고 있는 2016 시즌이다.

이재학·신재영·박종훈·우규민 이닝별 출루허용률 10걸 진입

이들 4명은 토종 투수 기준으로 평균 자책점, 이닝별 출루허용률 랭킹에서 모두 10걸에 진입해 있다.

1980, 1990년대만 해도 잠수함 투수들이 차별화된 존재로 선발 마운드를 맡기도 했으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중간계투나 마무리요원으로 역할이 축소되는 추세여서 이렇듯 걸출한 옆구리 선발의 동반 활약은 반갑기만 하다.

왼쪽부터 NC 이재학, 넥센 신재영, SK 박종훈, LG 우규민.<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왼쪽부터 NC 이재학, 넥센 신재영, SK 박종훈, LG 우규민.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중 신재영은 등판 때마다 화제를 몰고 다녀 리그 최고의 히트상품 후보로 주목받는다. 공수의 핵 박병호, 밴헤켄의 해외이적과 주축 투수 한현희, 조상우의 공백 때문에 유력한 꼴찌 후보로 꼽혔던 넥센. 5년 만에 1군에 이름을 올린 늦깎이 루키 신재영의 깜짝 돌풍을 덕에 4년 연속 가을야구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게 됐다.

데뷔 후 4연승. 2002년 김진우, 2006년 류현진이 세운 토종 투수 데뷔 후 최다 3연승 기록을 갈아치운 신재영이다. 이후 6승째를 기록할 때까지 다승 부문 1,2위를 다퉜다.

데뷔 후 30.2이닝 연속 무볼넷은 더욱 값지다. 그의 강점인 제구력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역시 2011년 롯데 브라이언 코리가 세운 최다 20이닝을 넘어선 신기록.

구종은 다양하지 못한,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투피치이지만 칼날 제구를 자신감 삼아 초구부터 스트라이커를 만드는 ‘싸움닭’ 기질이 인상적이다.

볼넷이 없고 적극적인 승부로 수비시간도 줄어들자 야수들은 타석의 집중력으로 화답하니 승리가 늘어날밖에. 공격적인 피칭이 낳은 나비효과라고 할까.

2009년 이현승(13승) 이후 끊겼던 넥센 토종 선발 10승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희망봉 신재영. 2012년 NC에 입단한 뒤 이듬해 이적해 신인왕 후보 5년차 자격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올해 KBO리그 최저 연봉 2700만 원의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는 27살 신재영에게 최고령 신인왕 타이틀이 돌아가더라도 ‘증고 신인이 신인왕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딴쭉걸기는 없을 듯하다.

서브머린 계보를 잇는 25살 박종훈은 릴리스 포인트가 가장 낮다. 정통 언더핸드인 롯데 클로저 정대현이 지면에서 40cm를 떨어뜨린 채 공을 던지는데 비해 박종훈은 불과 땅위 5cm 에서 공을 뿌린다. 잠수함 1세대 박정현만큼 낮게 던진다. 땅에 손등을 긁힌 적도 여러 번이지만 타자들에겐 솟구쳐 오르는 어뢰처럼 느껴지니 얼마나 위력적인가.

‘인천의 핵잠수함’으로 불리게 된 데는 선발로 보직을 변경한 지난해 얻은 ‘퐁당퐁당’이라는 별명이 큰 자극제가 됐다.

독특한 폼에 공까지 위력적인데도 제구 불안으로 냉탕온탕을 오갔으니. 6승8패로 가능성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올해 첫아이(딸)도 얻고 팀 선배 김광현의 조언으로 자신만의 루틴을 찾아 책임감과 평정심을 갖게 되니 눈에 띄게 기복이 줄어들었고 4월에만 3연승을 달렸다.

땅을 스치듯 워낙 낮게 공을 뿌리기 때문에 떨어지는 구질을 던지지 못하는 제약이 있는 투피치이지만 투심 패스트볼의 움직임이 좋고 커브의 각이 워낙 크니 제구력까지 잡힌 바에야 당당한 4선발로 인천 투수왕국 부활에 힘을 보탤 만하다.

4년 연속 10승 고지 돌파를 노리는 이재학과 우규민은 ‘옆구리의 힘’을 지켜나갈 경쟁력이 높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사이드암과 언더핸드의 명맥은 이들의 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잠수함 전성시대도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낳게 하는 주역들이다.

잠수함 투수의 황금기는 다승 10걸 중 5명이나 포진시킨 1989년부터 10여년 정도로 볼 수 있다. 19승으로 다승 2위를 차지하며 신인왕에 오른 박정현은 태평양 돌풍을 주도했다.

빙그레의 첫 정규시즌 1위를 이끈 한희민, 해태 에이스 선동열보다 더 많은 이닝을 책임진 루키 이강철, 재일동포 출신의 삼성 에이스 김성길, ‘선동열 킬러’로 명성을 떨친 베어스 김진욱 등이 모두 두 자릿수 승리를 신고하며 르네상스를 열었던 1989년이었다.

태평양 박정현, 해태 이강철, 삼성 박충식 “그땐 더했다”

이듬해엔 삼성 이태일이 신인 최초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7명이 10승 이상을 거두는 등 잠수함 열풍이 이어졌다.

좌타 거포가 드물던 때는 ‘잠수함 파워’가 먹혔지만 좌타자들이 중심타선을 점령한 뒤에는 잠수함들은 가라앉았다.

1990년대 초반 박충식은 횡으로 변하는 슬라이더 위주의 언더핸드 투수 결정구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 공의 궤적이 시야에 잘 들어오는 좌타자를 공략해야 하는 게 옆구리 투수들의 숙명인데 박충식은 종으로 변하는 싱커 계열의 변화구를 승부수로 내세워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1997년 쌍방울 김현욱의 최다 20승과 해태 임창용의 14승 26세이브 활약, 1998년 해태 이강철의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위업 등이 돋보였다. 임창용과 1999년 미국 메이저리그 애리조나에서 데뷔한 김병현의 활약 속에 시속 150km의 ‘고속 사이드암’이 주목받는 시기로 넘어갔다.

왼쪽부터 이강철, 박충식, 한희민,김병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왼쪽부터 이강철, 박충식, 한희민, 김병현.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0년대 본격적인 선발투수 예고제 도입으로 상대 팀은 좌타자들을 줄줄이 내세워 대비하기에 이르자 결국 잠수함 선발은 설 땅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 잠수함의 반격은 좌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면서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시작됐다. 그 대표주자가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낮은 이재학과 우규민이다.

2013년 신인왕을 차지한 이재학의 체인지업은 패스트볼을 던질 때와 같은 폼에서 나와 더욱 위력적이다. 우규민은 체인지업과 싱커를 적절히 활용해 볼넷을 줄이는 정교한 제구력,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변칙 투구동작 등으로 리그 정상급 선발로 성장했다. 지난 4월 1108일 만에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올 시즌 불어 닥친 옆구리 신드롬이 역대급으로 커지려면 성적도 더 오르고 임팩트도 더 강렬해져야 하겠지만 살아나는 경쟁력만큼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미 10~20년 전에 언더핸드 계열이 자취를 감췄다고 해서 잠수함 투수들이 생존력을 찾고 있는 한국 야구가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다.

지난해 프리미어 12에서 초대 우승을 차지할 때 김인식 한국 대표팀 감독은 전체 투수 13명 중 선발 우규민-이태양(NC), 구원 정대현-심창민(삼성)을 내세워 역대급 규모로 잠수함 투수진을 꾸렸다. 사이드암과 언더핸드의 변형투구에 유독 약한 중남미팀을 집중 공략했다.

내년 첫 우승에 도전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한국의 옆구리 투수들이 더욱 강한 ‘희소성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올 시즌 잠수함 선발-구원 요원들의 분투가 기다려진다.

사이드암과 언더핸드 투수들이 저평가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기형적으로 많아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성적지상주의에 휘말려 아마추어무대에서 의도적으로 양산되고 있지는 않는지 경계해볼 일이다.

제구력 살아있는 꿈나무 만든다면 KBO리그 다양성 차원 해볼만

오버핸드와 언더핸드의 이어던지기가 단판 승부에서 효과를 낸다고 해서 웬만한 학교팀들에서 언더핸드를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쓴다면 선수 미래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잠수함 투수의 장점이 될 수 있는 제구력에 초점을 맞춰 경쟁력 있는 스페셜리스트를 길러낸다면 KBO리그도 ‘다양성 극장’으로 팬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삼성 임현준이 살아남기 위해 전대미문의 ‘왼손 잠수함’으로 변신해 올해 시범경기에서 무실점 행진으로 파란을 일으켰지만 리그 개막전에서 한 타자만 상대하고는 잊혀져 있다. 프로에 오기 전에 좌타자를 공략하는 스페셜리스트로 길러졌다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규민이나 신재영처럼 볼은 빠르지 않더라도 볼넷만은 거부하는 제구력 하나를 똑똑한 필살기로 삼는 것은 큰 의미를 던진다.

두산 오버핸드 유희관은 ‘공이 느린 투수는 KBO리그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뜨리며 ‘제구력 투수’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그의 겁 없는 도전은 ‘느림의 미학’이라는 찬사와 애칭으로 보상받았다.

‘제구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잠수함 투수들이 더욱 많이 보여줘야 아마추어에서도 보고 배우는 트렌드가 되고 표준이 된다. ‘옆구리 신드롬’이 ‘제구의 미학’으로 승화되길 기대하는 이유다. 

김한석

◆ 김한석 스포츠기자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체육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Q 창간멤버로 스포츠저널 데스크를 맡고 있다. 전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이었으며 FIFA-발롱도르 ‘올해의 선수’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제21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이전다음기사 영역

하단 배너 영역

지금 이 뉴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