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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에도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김한석 기자의 스포츠 공감] ‘화수분’ 한국여자프로골프, 생애 첫 우승자들

2016.06.24 김한석 스포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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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골프는 최근 큰 이슈들을 맞았다.

6월 10일 박인비가 66년 역사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통산 25번째이자 최연소(27세)로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2007년 프로 데뷔 이후 메이저 7승으로 아시아선수 최초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하는 등 통산 17승을 쌓은 ‘세리 키드’ 박인비다.

LPGA 25승에 빛나는 ‘개척자’ 박세리가 한국선수로는 9년 만에 자신의 계보를 이어 골프 레전드로 헌액된 후배를 꼭 안아주는 장면에서 1998년부터 LPGA를 휩쓸고 있는 ‘골프 한류’의 어제와 오늘을 새삼 느끼게 됐다.

9일 뒤 일본에서는 신지애가 한국 여자골프 역사를 새로 썼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니치레이 레이디스에서 3연패를 달성하면서 개인 통산 45승을 기록, 한국여자선수 프로대회 최다승 기록을 수립했다.

2005~2008년 KLPGA 20승을 달성한 뒤 LPGA에서 2008~2013년 11승을 수확하며 아시아선수 최초로 세계 1위에도 올랐던 신지애. JLPGA에서 14승을 보태며 다원화된 골프인생을 개척하고 있어 세계골프 본류에서는 멀어져 있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날 LPGA 마이어 클래식에선 ‘역전의 여왕’ 김세영이 연장승으로 5개 대회 동안 침묵했던 태극낭자 우승 바통을 이어가면서 시즌 2승째를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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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인비, 김세영, 배선우.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해 3승을 휘몰아치며 태극낭자 9번째로 LPGA 신인왕에 올랐던 김세영. LPGA 통산 5승 중 3승을 연장전 승리로 장식하며 ‘연장불패’의 신화도 이어갔다.

박인비가 112년 만에 골프가 돌아온 올림픽에서 금메달 꿈을 키웠으나 부상이 좀처럼 낫지 않아 리우행이 사실상 힘들어졌다. 출전권 양보의 뜻도 내비쳤다.

7월 11일 랭킹을 기준으로 세계 15위 내에서 국가별로 4명까지 출전할 수 있는 올림피언이 정해지는 가운데 세계 3위 박인비를 제외하고 김세영(5위), 전인지(6위), 양희영(8위), 장하나(9위)가 경쟁에서 앞서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 박인비’는 누가 될 것인가.
김세영을 주목한다. 랭킹 선두로서 박세리가 감독으로 지휘할 리우 대표팀의 선봉장이 될 것이 유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우승 횟수가 가장 많아서도 아니다.

시련을 딛고 일어선 집념의 도전과 성공 스토리로 본다면 골프 한류의 내일을 책임질 에이스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개선의 단서들을 찾아나가면서 세계 정상권까지 올라선 ‘빨간바지의 마법사’ 김세영의 도전 시계를 되돌려보자.

2010년 KLPGA에 입회한 김세영. 2011년부터 정규투어에서 샷을 날렸지만 루키시즌 19개 대회에서 톱10 진입이 두 번에 그친다. 이듬해 20개 대회에서도 하위권을 맴돈다. 시즌 막판 드라이버 비거리의 난제를 해결하면서 희망을 찾는다.

40번째 도전인 2013년 개막전. 극적인 마지막 홀 이글로 첫 우승컵에 입맞춤한다. 그리고는 탄탄대로.

프로 데뷔 3년차에 3승을 휩쓸고 이듬해 2승을 보탠 뒤 2015년 LPGA에 입성한다. 역시 35번째 도전 만에 KLPGA 지각 데뷔승을 거둔 친구 장하나와 LPGA 퀄리파잉스쿨을 공동 6위로 통과, 꿈의 무대에 진출한다.

김세영의 도약을 지켜보노라니 올 시즌 국내 그린에서 생애 첫 우승을 맛보는 신선한 돌풍이 새삼 반갑다.

올해 KLPGA 14개 정식대회에서 탄생한 첫 우승자가 무려 6명이나 된다. 상반기에 이렇게 많은 신데렐라가 탄생한 적도 없다.

최근 5년간 시즌별로 첫 챔피언에 오른 선수는 평균 5명. 올 시즌 투어 일정의 절반도 안 돼 벌써 그 수치를 넘어섰다.

‘기다림의 미학’으로 와 닿는 신드롬이다. 저마다 데뷔승 스토리도 감동을 낳는다.

조정민이 베트남서 열린 창설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자로 스타트를 끊었다. 아홉 살 때인 2003년 뉴질랜드로 유학 갔다가 클럽을 잡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랭킹 1위인 리디아 고(고보경)와 2011년까지 뉴질랜드대표팀 룸메이트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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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신지애, 박성현, 장수연.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복수 국적을 갖고 있다가 뉴질랜드로 남은 리디아 고와는 달리 한국 국적을 택한 그는 1,2부 투어 오르내리며 무명의 세월을 보내다 데뷔 4년차에 햇살을 받았다.

장수연은 6년 전의 트라우마를 이겨낸 ‘73전 74기’ 우승으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고교생이던 2010년 KLPGA 대회 마지막 홀에서 우승 세리머니까지 했건만 15번 홀에서 어프로치샷을 할 때 아버지가 무심코 2m 앞에 캐디백을 세워놓은 게 규정 위반으로 뒤늦게 지적돼 손아귀에 들어왔던 우승컵을 놓쳤던 악몽으로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1부 투어 직행티켓을 놓친 뒤 2013년 뒤늦게 프로에 입문했지만 73개 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국내 개막전과 한 달 뒤 대회에서 연속 연장승으로 데뷔 1,2승을 내리 따내며 ‘불운의 아이콘’이란 꼬리표를 깨끗이 떼어냈다.

무려 130번째 대회에서 대관식을 맞은 ‘무관의 여왕’ 김해림. 9년 전 프로에 데뷔한 뒤 2부 투어에 내려갔다 오는 좌절을 딛고 해뜰날을 맞았다.

체중을 불려 비거리를 늘리겠다는 집념 하나로 매일 달걀 흰자를 수십 개씩 먹었다는 ‘에그 골퍼’는 치킨회사가 타이틀스폰서로 나선 대회에서 달콤한 첫 우승을 맛봤다.

지난해 마지막 날 챔피언조로 나섰다가 두 번이나 역전우승을 허용한 울렁증을 말끔히 날리면서 우승상금 1억 원을 전액 기부하는 약속까지 실천해 감동을 던졌다.

매년 상금의 10%씩 기부해오면서 2013년 KLPGA 투어 최초로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해 얻은 애칭이 ‘기부천사’. 하늘도 뒤늦게나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선행과 노력의 결실이 아닐까.

투어 4년차 배선우는 KLPGA 8년 만의 ‘노 보기’ 우승과 54홀 최소타 우승으로 첫 챔피언 트로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준우승만 4번에 그쳤지만 지난해 모든 대회에서 컷을 통과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뒤 얻어낸 성과였다.

2012년 프로 전향 후 지난해야 1부 투어로 올라왔던 박성원은 KLPGA 최초로 예선통과 선수로 우승하는 무명의 대반란을 일으켰다. 올 시즌 조건부 출전권을 얻었지만 다시 예선을 거쳐 턱걸이한 대회에서 끝내 첫 우승의 눈물을 쏟았다.

지난해 톱10 진입 4회만으로 최고 루키 타이틀을 따낸 박지영은 겨우내 미국전훈으로 약점을 보완한 끝에 첫 우승샷을 날리며 ‘무관의 신인왕’이란 오명을 떨쳐냈다.

그동안 불운이란 이름으로 땀의 대가를 보상받지 못한 경우도 있고 말 못할 징크스도 있을 테지만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있는 한 준비된 자들은 언제고 빛을 보기 마련이다.

이들 ‘초짜’들이 챔피언 인터뷰에서 이구동성으로 밝힌 점은 ‘지각’ 우승자가 나올 때마다 용기를 얻고 ‘나도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톱10, 톱5, 준우승 등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라 정상으로 가는 사다리임을 새기게 되면서 긍정 바이러스가 그린에 퍼지게 된 것이리라.

올 시즌 우승한 신인이 없다는 데서 대형신인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새내기들이 쉽게 정상을 넘보지 못할 만큼 KLPGA 선수층이 두꺼워졌다는 것을 뜻한다.

슈퍼루키보다는 눈물밥을 먹으면서 위기를 극복해 탄탄한 토대를 닦은 자원들이 많아지게 되면 KLPGA의 ‘화수분 투어’ 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세계랭킹 100위 안에 38명이 포진한 골프 한류의 젖줄로서 말이다.

이제 패러다임이 점점 바뀌고 있다.
상금왕까지 거머쥔 KLPGA의 대표적인 슈퍼신인왕 출신 박세리나 신지애가 LPGA 무대를 점령하던 시절도 지났다. 유학을 통해 미국에서 LPGA에 진입한 박인비의 성공 루트도 한계가 있다.

한국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실패를 딛고 질경이처럼 살아남은 위너들이 빅 투어로 도약하는 모델이 힘을 얻고 있다. 그 대표주자인 김세영이 KLPGA 첫 우승자들에게 로망으로 다가가는 이유다.

김세영이 올림픽에 나가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면 첫 우승의 꿈을 버리지 않는 무관의 도전자들은 더욱 큰 용기와 희망을 얻지 않을까.

생애 첫 우승으로 LPGA 투어를 처음 밟을 수 있었던 장수연은 단독 5위에 올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39개 대회 만에 첫 우승을 거둔 지난해 3승을 수확하더니 올해 벌써 4승을 쌓아 KLPGA 투어의 대세가 된 박성현도 올해 LPGA 무대를 두 번 경험하면서 경쟁력을 보여줬고 메이저대회도 초청받아 출격하게 됐다.

신인이 아니라면 첫 우승은 ‘지각 우승’이 아니다. 많은 실패를 통해 터득한 첫 생존법이요, 포기하지 않는 꿈이 살려낸 도약의 출발점이다.

기나 긴 시련 뒤에 찾아온 첫 승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꿈을 향해 더 힘찬 샷을 날리는 영원한 위너들을 더 많이 보고 싶어지는 시즌이다. 

그리고 더 느끼고프다. 그린에도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김한석

◆ 김한석 스포츠기자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체육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Q 창간멤버로 스포츠저널 데스크를 맡고 있다. 전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이었으며 FIFA-발롱도르 ‘올해의 선수’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제21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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