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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악을 포용하는 ‘깊은 강’ 바흐의 고향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독일/아이제나흐(Eisenach)

2016.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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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적인 측면으로 볼 때 독일은 남부 카톨릭 문화권과 중부 및 북부의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카톨릭 문화권은 마인 강의 남부 지역과, 도나우 강 주변의 지역인데 이 일대에는 뮌헨, 아우그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만하임 등과 같은 유서 깊은 도시들이 있다.

여기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도나우 강 주변의 풍경은 사라지고 라인 강, 베저 강, 엘베 강의 색채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북해로 흘러 들어가는 엘베 강의 중간 지역에 해당하는 튀링엔 지방과 작센 지방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의 핵심을 이루는 곳인데 이 지역에 있는 주요 도시로 라이프찌히·드레스덴·바이마르·아이제나흐 등을 손꼽을 수 있다.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내려다 본 울창한 숲 속의 아아제나흐 시가지.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내려다 본 울창한 숲 속의 아아제나흐 시가지.

울창한 튀링엔 숲으로 둘러싸인 아이제나흐는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도시이지만 마르틴 루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고 작곡가 파헬벨이 활동했던 곳이며 바흐가 태어나 프로테스탄트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곳이다.

또 아이제나흐 뒷산에는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城)이 마치 수호신처럼 아이제나흐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성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며 마르틴 루터가 은거하면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곳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1685년에 태어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 S. Bach)의 행적을 더듬어 보기 위해 아이제나흐에서 바흐하우스를 찾아 프라우엔플란 광장으로 향한다. 바흐하우스는 바흐가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18세기의 주택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전후에 말끔히 복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프라우엔플란 광장에 세워진 바흐의 동상. 그 너머 바흐하우스가 보인다.
프라우엔플란 광장에 세워진 바흐의 동상. 그 너머 바흐하우스가 보인다.

바흐의 어린 시절에 관한 자료는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음악가의 일족에 둘러싸여 어려서부터 재능을 나타내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어린 바흐는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아버지의 사촌형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가 연주하는 오르간을 들으면서 자랐으며, 교회에서는 소년 성가대원으로 노래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동상.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동상.
어린 나이에 양친이 죽자 맏형의 집에서 자라게 되는데 맏형은 당시 바로크 음악의 대가인 파헬벨의 제자로 파헬벨, 북스트후데 등 당대의 유명한 대음악가들의 작품 사보를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곡들은 아니었지만 어린 바흐는 달이 밝은 밤이면 형 몰래 악보를 꺼내어 베꼈다고 전해진다.

이리하여 형이 애지중지하며 소장한 곡들은 6개월 후에는 모두 바흐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바흐도 형을 통하여 파헬벨의 양식을 습득하게 되는데 그 영향은 훗날 그의 작품에도 나타난다.

한편 바흐는 말년에 눈으로 심한 고생을 해 수술까지 받았는데 혹자는 눈병의 원인을 어릴 때 촛불도 없이 악보를 베끼느라고 눈을 혹사했기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바흐 가문은 모두 경건한 루터교 신자들로 튀링엔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200년 이상 일곱 세대에 걸쳐 작곡가, 오르간 주자, 교회의 악장 등 100명 이상의 훌륭한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이는 유전학상으로도 매우 흥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바흐 가계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다음으로 가장 걸출했던 음악가들은 바로 그의 아들들이다. 바흐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자그마치 스무 명이나 되는 자식을 낳았고 그 중 아홉 명만 살아 남았는데 그 중에서 세 아들, 즉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뛰어난 음악가로 성장해 18세기 후반의 서양 음악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음악사적으로 볼 때, 음악에 있어서 근대적 개념이 싹트기 시작하는 1600년대를 전후해 음악의 새로운 구성양식, 새로운 표현 수단, 새로운 미학 개념이 발전하고 또 서로 융합해 근대적 의미의 음악이 탄생된다.

바흐하우스 안에 전시된 바흐관련 자료.
바흐하우스 안에 전시된 바흐관련 자료.

1600년대를 음악의 소년기라고 본다면 1700년대는 ‘새로운 시대’, 즉 정신적으로 원숙해가는 성년의 초기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음악은 1900년대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발전하여 음악이 지니고 있던 여러 가지의 가능성이 최고의 수준으로 발휘되기에 이른다. 이 조그만 도시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난 바흐는 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연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독일어로 바흐(Bach)란 ‘개울물’이란 뜻이다. 하지만 음악가 바흐는 모든 음악을 포용하는 ‘깊은 강’이었다.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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