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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2016.07.29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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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체로 언론을 욕한다. 요즘 친구나 지인을 만났을 때 언론이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언론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신문방송을 열심히 읽고 들은 듯이 입에 침을 튀긴다. 대체로 정치적, 이념적 사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 더 그렇지만, “요즘 언론은…”하며 싸잡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신문에 났다니까”라는 한 마디가 좌중의 논란을 평정했던 시절이 있었다.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논쟁이 붙으면 시비를 가린다며 신문사로 전화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인터넷이 없던 시절 이야기지만 격세지감이다.

언론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다. 언론을 보는 국민의 눈이 많이 달라졌다. 오랜 독재정권 시대에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언론도 반성문을 써야 할 게 많지만, 그래도 언론은 어느 정도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기자는 대학생들에게 선망의 직종이었다. 그런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고, 김영란 법의 적용 대상이 되었다.

나는 언론중재위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언론중재위원회에 가서 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일을 한다. 그때 신청인으로부터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이 말이다. “언론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양측의 주장은 팽팽하다. 피신청인(언론사)은 감시와 비판은 언론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신청인은 보도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고, 자신이 그 보도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었으니 정정보도도 하고, 손해배상도 하라고 주장한다. 책상을 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언론중재 제도가 생긴 지 1년 후인 1982년 신문사에 들어가 30년을 기자로 일했다. 나도 한 번 출석을 요구받고 중재위에 선 적이 있다. 그때는 언론중재를 신청하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언론사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한다는 게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후환이 생기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언론중재위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한 해 평균 2500건 안팎의 조정신청이 들어온다. 80년대에는 100건 이내, 90년대에는 500건 안팎, 2000년대에는 1000건 안팎으로 점차 늘어갔다. 국민이 ‘무소불위’ 언론을 상대로 자기 권리를 찾고 손해배상을 받는 데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오는 거다.

피해구제율도 점차 높아져 초창기에는 50%에 못 미쳤으나 90년대에는 50%, 2000년대에는 60%를 넘겨 지금은 70% 후반까지 와있다. 신청인의 절반 이상이 구제를 받는다는 이야기다.

언론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때 법원에 가지 않고 개인의 권익을 보호받을 수 있는, 35년이나 된,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아직 모르는 국민이 많다는 게 아쉽다. 법원에 정정보도나 손해배상 소송을 하면 변호사 비용도 들어야 하고 확정판결을 받으려면 2~3년이 걸린다.

그동안 자신이 입은 피해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언론중재위는 보통 2주 이내면 법원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 결정을 내려준다. 그게 바로 언론중재위의 설립 취지이다. 언론중재위는 공공기관이자 준사법기구이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언론은 당연히 늘 피고(피신청인)석에 앉아야 한다. 보도의 진위와 경위를 묻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하고, 자칫하다간 큰 돈도 물어내야 한다.

중재위는 광역지자체 별로 구성돼 있는데, 중재위원 5명이 양측의 주장을 충분히 듣고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손해배상 청구를 놓고 합의를 권유하며 조정을 한다. 한 쪽이 완강하게 나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재위원 5명이 직권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나는 요즘 언론이 잘못해서 욕을 먹든, 애꿎게 욕을 먹든 간에 그 대안은 그래도 언론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민주사회, 민주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을 가진 건 언론뿐이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그렇지만 언론·출판에 의해 명예나 권리를 침해받은 사람이 피해 배상을 청구할 권리 또한 헌법 21조에 같이 명백하게 적혀있다.

중재위에는 대체로 불공정하고, 편파적이고, 무책임하며, 보도의 목적이 의심되는 기사들이 접수된다. 요즘 독자들은 내가 젊은 기자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법과 제도를 활용해 자기 권리를 지키고 명예를 보호하는 데 적극적이고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돈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전에는 언론을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늘 피고석에 앉아야 하는 언론의 모습이 딱하긴 하다. 오보는 기자의 숙명이다. 자신의 기사에 누군가가 조정이나 중재를 신청하면 무조건 중재위에 출석해서 소명해야 한다. 기자들도 언론중재 제도를 잘 알아야 한다. “언론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하는 독자의 하소연을 생각하면서 자판을 두드려야 할 때다.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한국 언론과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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