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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 키즈’를 위하여

2016.08.23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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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 7일 새벽, 열 살의 소녀 인비는 TV 생중계 소리와 엄마 아빠의 환호성에 잠을 깼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스무 살 낭자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국민들에게 IMF 구제금융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용기를 준, 신발 양말 다 벗고 햇볕에 그을린 갈색  종아리와 유난히 대비된 흰 발목을 드러낸 채 연못에서 샷을 하던, 그 명장면이 나온 대회다. 한국의 많은 어린이들이 이날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골프연습장에 등록했다. 소녀 인비에게도 이날 생애 첫 골프채가 생겼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인 2008년 6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열린 같은 경기. 박세리의 최연소 기록은 깨진다. 만 스무 살에서 두 주 모자란 박인비가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든다. 그 후 두 사람은 9년의 간격을 두고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다. 20대에, 아시아 여성으로서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사람은 이 두 사람뿐이다.

그리고 또 8년 후. 두 사람은 116년 만에 부활한 리우 올림픽 골프경기에서 국가 대표와 감독으로 만났다. 우승 퍼팅을 결정지은 선수는 그린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감독과 포옹했다. ‘여제’는 울지 않았지만, ‘전설’은 눈물을 보였다.

두 사람의 포옹은 박세리의 그날 샷에 이어 한국 골프 역사에서 가장 유의미하고 상징적인 장면으로 후대는 기록하지 않을까. 그것은 ‘세리 키즈’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인비 키즈’의 서막을 알리는 장면이다. 10년 후 새로운 여제는 이 날의 감동을 말할 것이다. 올림픽 골프 코스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연주된 그 장면을 보고 골프채를 잡았다고. 

어느 신문의 1면 컷은 ‘인비의 위엄, 세리의 눈물’이었다. 박인비의 금메달을 보도한 신문 제목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전설의 눈물은 퇴위식이며, 여제의 위엄은 대관식이다. 한국 골프의 시대적 전환을 간결한 대구법(對句法)으로 멋지게 표현한 제목이다.

인비에게 세리는 롤 모델(role model)이었다. 롤 모델의 힘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 이론이 있다. ‘거울신경(Mirror Neuron)효과’라는 거다. 어느 특정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뇌파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거울처럼 똑같이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이탈리아 신경생리학자 리촐라티 박사가 1990년대에 원숭이의 행동과 뇌신경의 상관관계 실험을 통해 입증한 유명한 학설이다.

타인의 행동을 보고 있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뇌의 신경세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거울신경은 어떤 행동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이야기만 듣고 있어도 움직인다고 한다. 유년 시절에 마치 도장처럼 새겨진 심리의 단편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평생을 따라하게 되는 표본이 된다는 것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전염되는 것, 옆 사람이 하품을 하면 나도 모르게 하품하는 것, 부부가 늙어가며 닮아가는 것 등이 이 이론으로 설명되어진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감정과 의도를 알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과 같은 맥락이다.

리우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 네 개를 목에 걸어 새로운 스타로 데뷔한 미국의 케이티 러데키. 19세로 올림픽 첫 출전이다. 미국 언론은 펠프스가 떠난 자리를 러데키가 메울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금메달을 따고나서 자신이 아홉 살 소녀일 때 펠프스로부터 사인을 받은 사진을 공개했다. 10년 후 그는 자신의 롤 모델로부터 사인을 요청받은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롤 모델을 만들고 싶어 한다. 과학자를 꿈꾸든, 연예인을 꿈꾸든, 정치인을 꿈꾸든 롤 모델은 자신의 꿈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동기를 부여한다.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용기를 주는 마음속 존재도 롤 모델이다. 대학이나 입사 시험을 치를 때 자소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게 롤 모델 이야기고, 성공했을 때 비로소 내 마음 속의 우상을 털어놓는다. 당신이 나의 롤 모델이었다고.

청소년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롤 모델을 찾았는가. 당신의 롤 모델은 누구인가. 롤 모델을 찾았다면 오늘 그 사진을 책상 앞에 걸어놓고 혼자 조용히 바라보자. 10년 후, 20년 후 당신의 모습이 오버랩될 것이다.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한국 언론과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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