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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미술사 속 알레고리

2016.09.28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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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직접적인 전달보다 특정한 대상을 빗대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담아낸 그림들이 있다. 이른바 ‘알레고리(Allegory-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로 그린 그림이다.

알레고리는 기본적으로 서사구조를 지닌 문학, 영화, 연극의 예술영역에서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총체적인 은유로 사용되어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승전결이 불투명한 미술에서는 단절적 이미지를 통해 함축된 알레고리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알레고리 비유법으로 그려진 그림의 의미와 그림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기 어려운 이유이다.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 있다

그렇다면 왜 해독이 어려운 방식을 사용했을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이다.

내재한 의미가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또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통해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 있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실제 르네상스 시대에서 바로크 시대까지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가장 활용도가 높았던 알레고리는 그 표현의 형식은 달라지만, 작가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 표현방식이었다.

작품에 내재한 알레고리는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었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겼는지, 무엇보다 당대의 시대정신이나 가치관들을 엿볼 수 있는 장치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미술사의 대표적 알레고리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홀바인의 <대사들>, 브론치노의〈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세월(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 루뱅 보쟁의 <오감>,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부부의 초상화>, 베르메르의 <신앙의 알레고리>, 스탠비크의 <정물-바니타스의 알레고리>, 판 데르 빌리허의 <허망한 영광의 알레고리> 등이 서양미술사에 대중에게 익숙한 알레고리 방식을 활용한 대표작들이다.

예로 든 작품들에는 의미심장한 각기 다른 오브제들이 그림 곳곳에 배치되어 마치 퍼즐을 풀어가듯 오브제에 담긴 의미를 음미(吟味)하게 한다. 

브론치노 〈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세월>1546년경, 나무패널에 유화, 147x117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브론치노 〈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세월>1546년경, 나무패널에 유화, 147x117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예컨대 브론치노(1503~1572)의〈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세월(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는 유난히 알레고리가 많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1860년 영국이 파리의 화상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이 작품은 복잡한 구성과 화려한 색채가 압권이다.

이 그림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소장한 것으로 메디치가의 코시모가 프랑수아 1세가 에로틱한 그림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선물로 제작한 그림이다.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무시했고, 색채는 조화로움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거기에 복잡하게 얽힌 인물구성은 시각적으로 불편함을 준다.

 ‘불가사의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여러 해석이 난무한 그림이지만, 그림 속 알레고리를 대략 조합해보면 이렇다.

육체적 쾌락을 지닌 사랑은 신기루와 같은 것

사랑(큐피드)은 육체적 쾌락(비너스)을 탐닉하는 욕구를 지니게 되는데, 육체적 쾌락 뒤에는 변덕(소녀)과 기만(가면), 질투(노파)가 생겨나 순수한 사랑(비둘기)을 망각(뒷머리 없는 여인)하게 한다.

시간(노인)의 장막이 걷히고 나면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다. 결국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순수성이 퇴색되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망각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450여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사랑에 관한 우의(寓意)로써 여전히 공감할 만하다.

얀 반 아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1434년, 나무패널에 유화, 82x59.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한스 홀바인<프랑스 대사들>1533년, 나무패널에 유화, 207×209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얀 반 아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1434년, 나무패널에 유화, 82x59.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한스 홀바인<프랑스 대사들>1533년, 나무패널에 유화, 207×209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브론치노의〈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세월>의 작품만큼 많은 알레고리를 지닌 홀바인의 <대사들>과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부부의 초상화>를 보면 점선으로 표시한 오브제들에 화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두 작품에 등장한 오브제 하나하나가 각기 의미하는 바가 다르지만, 궁극에 부와 명예, 사랑, 종교, 과학, 죽음 등 인간의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욕망과 상실의 충돌은 거부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해준다. 동시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암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모호하고 복잡한 알레고리 방식, 이쾌대의 <상황>과 <운명>

그렇다면, 한국미술사에서 알레고리 방식으로 그린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서양미술에 견주어 작품들이 많지 않지만, 한국 근현대 화가인 이쾌대의 <상황>과 <운명>은 브론치노의 작품처럼 모호하고 복잡한 알레고리 방식의 그림으로 손꼽힌다.

시계방향 : 이쾌대 <무희의 휴식>1937년, 캔버스에 유채. 116.7×91cm, 개인소장 / <상황> 1938년 캔버스에 유채. 156×128cm, 개인소장 / <운명> 1938년 캔버스에 유채. 156×128cm, 개인소장
시계방향 : 이쾌대 <무희의 휴식>1937년, 캔버스에 유채. 116.7×91cm, 개인소장 / <상황> 1938년 캔버스에 유채. 156×128cm, 개인소장 / <운명> 1938년 캔버스에 유채. 156×128cm, 개인소장

<상황>은 이쾌대가 1938년에 그린 작품으로 <무희의 휴식>이란 그림을 그린 지 3개월 후에 완성한 그림이다.

<상황>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정작 어떤 장면인지는 불명확하다.

화면 구성상 브론치노의〈비너스, 큐피드, 그리고 시간>의 작품처럼 인물이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인물들의 동작과 시선, 옷차림이 서로 다르다.

무희를 중심으로 노파, 젊은 남자, 머리를 풀어헤친 무희, 벌거벗은 여인 등이 얽히듯 모여 있다.

바닥에는 깨진 그릇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다. 중앙에 전통적인 궁중 무복을 입고 있는 무희(무희의 휴식 모델과 동일인물)의 시선과 자세가 의미심장해 보인다.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앞을 향해 경계하듯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딘지 저항적 모습으로 보인다.

무희 뒤로 패물을 들고 있는 노파, 머리를 풀어헤친 무희, 벌거벗은 여인 등 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인들이 상황에 직접 영향을 받거나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면, 인상을 쓰고 다른 곳은 응시하는 남자는 이들과 무관한 듯 반대편을 응시하고 있다.

이쾌대가 이 작품을 제작한 동기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림 속 인물들이 어떤 같은 상황(다른 상황일 수도 있지만, 바닥에 흩어진 깨진 그릇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힌다)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상황>을 <운명>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이 겪은 수난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시각이 짙다.

미술사에서 알레고리의 활용은 추상미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매우 보편적이었다.

특정 이미지를 통한 상징적 의미를 읽고 해석하는 방식을 멀리하면서 알레고리는 미술사에서 그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특히 모더니즘 미술에 이르러 알레고리는 작품의 내적 순수성과 자율성을 방해하는 요소로 취급되어 한동안 미술표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퇴색하던 알레고리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귀환

하지만,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더불어 알레고리는 귀환했다.

과거보다 한층 넓은 범위에 적용되면서 시대를 넘어선 예술기법의 하나로 재등장했다. 이미지의 차용과 재현, 오브제의 의미와 해석이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표현으로 인식되면서 알레고리의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고유성으로 예술작품이 고정불변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 참고문헌: 이주헌 지음『지식의 미술관』아트북스. 2009. / 국립현대미술관 『거장이쾌대-해방의 대서사』돌배게. 2015.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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