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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 고독을 마주하다, 하지만 더 외롭다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자코메티와 시걸

2016.11.17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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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전설적 명제로 당대 사회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실존주의의 대가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1905~1980)는 동시대 예술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 대상의 한명이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1901~1966)였다. 샤르트르는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응시한 자코메티의 예술을 실존주의적 분석의 한 전형으로 보았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은 이후에도 많은 문학가와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현대미술에서 그 영향을 찾는다면 팝아티스트로 분류되는 조지 시걸(George Segal,1924~2000)을 들 수 있다.

조지 시걸과 사르트르는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문명화되어가는 대도시에서 인간의 고립과 고독한 삶을 응시한 시걸의 작품이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의 존재론적 위기와 맥락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코메티와 시걸의 삶과 예술은 현대인에게 망각하기 쉬운 실존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인간의 고독한 삶과 존재론적 위기는 이어져

자코메티 <걷는 남자> 1960년.
자코메티 <걷는 남자> 1960년.

자코메티의 작품은 형상에서부터 파격적이다. 길고 가드다란 독특한 형상은 면적이기보다는 선적이다.

길쭉하고 거친 질감, 유난히 가늘고 마른 형상은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에서 로댕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인간상과는 거리가 멀다.

자코메티의 대표작 <걷는 남자>(1960)는 정면에서 보면 특별한 동세를 감지하기 어려운 정적인 분위기다. 그냥 세로형 물체와 마주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측면에서 보면 큰 보폭으로 걷고 있는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허리와 무릎을 펴고 걷는 모습이 흡사 인(人)자를 형상화한 듯하다.

“최대한의 간결함에 훨씬 큰 존재감을 느껴”

머리에서부터 왼발까지 사선방향의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덩어리(mass)를 최대한 없앤 간결한 형상임에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인체상보다 훨씬 큰 존재감을 준다.

최소한의 질량만으로 강한 인간의 상을 구현한 자코메티 조각의 힘이다. 그의 인간상은 균형을 중시했던 전통 조각의 미적기준을 파괴하고 인간과 사물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실존의 의미를 탐미하는 과정에서 버리고 제거하는 반복을 통해 남겨진 최소치이다.

조지 시걸의 작품 또한 외형이 예사롭지 않다. 먼저, 그의 조각은 현실의 오브제와 석고 인간상이 어울려 일상의 한 장면을 옮겨온 듯한 느낌이 특징이다.

선적인 자코메티의 작품에 비해 양적이다. 일명 ‘실물뜨기’라는 특별한 제작기법이 말해주듯 인간의 신체를 그대로 떠내(인물에 외과용 붕대를 직접 씌워 석고형을 떠내는 형식)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기존의 조각방식과는 차별화된 독창적 방식으로 누드는 누드대로 옷을 입은 경우는 입은 채로 실존그대로 직접 떠내 실재감을 높였다.

특히 시걸의 작품은 특별한 채색 없이 하얀 석고상 질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독창적이다. 옷이나 동작 등은 생생함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인 데 비해서 표면은 특별한 오브제나 색채를 가미하지 않았다.

“저는 조각상들에 진짜 옷을 입할까 생각했다. 그 뿐만 아니라 색도 칠할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들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처음부터 색을 입히지 않으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옷이나 색을 칠해도 하얀 석고상 자체가 지닌 진실한 모습을 느낄 수 없었다.(나중에는 채색한 인물상도 나타남) 결국, 하얀 인물상은 인간의 본질적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작가 의도로 읽힌다.

“어떤 옷을 입혀도 하얀 석고상만큼 진실하진 못하다”

조지 시걸<Walk, Don’t Walk>1976년.
조지 시걸 1976년.

자코메티의 작품과 시걸의 작품은 마치 감정이 메마른 인간이나 유령처럼 보인다. 인간을 모델로 했지만, 결과물이 비인격적이고 무감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코메티 작품의 바탕에 깔린 정서는 ‘부조리’이다. 사르트르가 소설 <구토>에서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와 같은 '사물 그 자체'를 직시할 때에 그 우연한 사실성 그것이 부조리이며 그런 때에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라고 말한 것처럼 자코메티의 작품은 존재론적 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인간 존재의 우연성은 부조리이지만 궁극에 부조리는 인간의 삶에서 거부할 수 없는 본질임을 직시한다.

실제 현대인은 부조리 앞에서 ‘메스꺼움’을 느끼지만, 결국 인생은 부조리의 연속이다. 인간이 고독하고 고립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부조리를 자각하는 순간이며, 그 순간 인간의 존재적 가치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이는 시걸의 작품에도 마찬가지이다. 단, 시걸 작품의 근저에는 부조리대신 인간의 ‘고립’이 더 짙게 깔려있다.

자코메티의 <광장>(1947-1948)과 시걸의 <Street Crossing>(1992)는 인간의 우연한 마주침(실상은 스쳐 지나는 것)속에 드리운 절대적 고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극히 대조적인 질량이지만 소외된 인간의 고독함을 표현하는 두 시선을 닮았다. 다만, 외형적 사실성이 더 뛰어난 시걸의 인간상보다 추상적 형태에 가까운 자코메티의 인간상이 더 극적인 고독감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빛의 소명을 생의 소멸처럼 생각하며 40여 년 동안 잠을 잘 때 불을 켜놓고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려 했던 일상처럼, 그의 고독한 인간상이 자신을 자각하기 위한 체험적 산물로 인식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궁극에 자코메티 작품에서 전해지는 처절한 고독의 분위기는 작가의 정신적 심리적 상태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좌-자코메티 <광장>(1947-1948) / 우-시걸 <Street Crossing>(1992)
왼쪽-자코메티 <광장>(1947-1948) / 오른쪽-시걸 (1992)

자코메티의 가늘고 긴 뼈대만 남아 거의 추상적 선으로 표현한 입상들에서 느낀 고독과 고립은 인간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지만, 정작 유령처럼 넋이 빠져나간 듯 무감정하게 보이는 시걸의 인간상에서도 유사하게 감지된다.

감정이 매몰된 인간상들이 유령처럼 배회하듯 배치되어있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의 모습이지만,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현실을 옮겼지만 정작 현실과 동떨어진 그의 작품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무관심하고 의미 없는 지나침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시걸의 작품이 팝아트와 연결된 지점은 석고인물상을 팝 양식의 상업적 소도구들과 함께 전시한 부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시걸 작품의 독자성은 팝아트의 성격과는 다른 독자적 길을 걸으며 인간의 고립과 고독을 특유의 시선으로 담아낸 것에 있다.

실물 크기의 인물상들을 일상의 오브제 속에 배치하여 실물과 석고인물상 간의 대비를 통해 고독한 현대인들의 일상을 비생명적인 분위기로 연출했다.

예컨대 아무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유령처럼 지나치는 인파들 속에 서 있거나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형식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사는 현대인은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실상은 철저하게 고립된 고독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고립된 고독한 인간상은 자코메티가 그토록 도달하고자 했던 인간상이기도 했다.

상-자코메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1947년 작 외 대표작품 / 하-시걸 <러시아워>1983년작  외 대표작품
위-자코메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1947년 작 외 대표작품 /아래-시걸 <러시아워>1983년작 외 대표작품.

현대미술에서 조각은 더는 인물과 얼마나 형상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느냐로 미적 가치를 논하지 않는다. 인간의 외형적 닮음에서 인간 내적 사고의 표현에 관심을 옮긴 지 오래다.

조각분야에서 실존적 가치로써 인간을 표현주제로 삼았던 자코메티와 시걸은 표현기법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만, 인간의 형상을 기본으로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특유한 시각과 독창적인 기법으로 응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의 예술적 성향을 극히 다르지만, 인간과 사물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응시하려는 시도는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두 조각가의 작품은 고독이 인간의 실존적 자각을 깨우는 시간이며,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요소임을 일깨워준다.

인간의 존재가치가 갈수록 희미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자코메티와 시걸의 작품은 지워버리거나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절대가치가 무엇인지 자각하게 한다.

참고문헌 및 추천도서- 이가림지음 『미술과문학의 만남』월간미술, 2002 / 프랑크 슐츠 ?음, 황종민 옮김『현대미술, 보이지 않은 것을 보여주다』미술문화, 2010 / 모마하이라이트 뉴욕현대미술관 컬렉션350, 에이치코리아, 2013/ 위키백과사전.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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