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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해녀는 미역밭에서 정을 길어올린다

[김준의 섬섬옥수] ①통영 매물도

2017.03.21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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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섬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섬살이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여행지로만 생각하는 나그네의 시선도 문제지만, 섬살이를 여행자와 나누려는 주민들의 열린 마음도 부족하다. 하여 오랫동안 섬사람을 만나온 여행자가 느낀 섬살이의 지혜와 따뜻한 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 오래된 미래의 소망을 정책브리핑에 싣는다. <편집자주> 

하늬바람에 맞서 섬집은 납작 엎드리고 섬사람들은 사철 견디는 동백숲을 조성했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꽃을 피울 때면 미역 뜯는 해녀들도 몸을 푼다.
하늬바람에 맞서 섬집은 납작 엎드리고 섬사람들은 사철 견디는 동백숲을 조성했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꽃을 피울 때면 미역 뜯는 해녀들도 몸을 푼다.

“저 밑에 배가 돌아오죠. 그 섬이 동섬이에요. ‘똥섬치’라고 불러예. 저 섬이 엄청 중요한 기라. 대항리와 당금리 미역밭을 나누는 경곈기라”

당금마을 미역밭은 모두 16개로 구분되어 있다. 미역밭을 채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집은 모두 14가구다. 한 집에 미역밭 한 개를 가질 권리가 있다.

그런데 왜 16개일까. 사연은 이렇다.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한 미역밭은 풍흉을 고려해 같은 양을 채취할 있도록 위치와 면적을 나눈다. 그리고 미역밭 자리가 적힌 제비를 뽑아 주인을 결정한다. 그런데 어디 자연이 사람 뜻대로 움직이던가.

한 번 잘못 뽑아 낭패를 보면, 다음해에 잘 뽑으면 된다. 매년 추첨을 하는 이유다. 그런데 손재수가 없는 사람이 있다.

당금과 대항 두 마을에는 열댓 명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모두 제주출신으로 출가해 물질을 하다 섬 주민과 결혼을 해 정착을 했다.
당금과 대항 두 마을에는 열댓 명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모두 제주출신으로 출가해 물질을 하다 섬 주민과 결혼해 정착을 했다.

미역밭에서 배운다

달콤하고 비릿한 미역국 냄새에 눈을 떴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니 바다로 떠오르는 아침해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조모가 미역국을 끓여냈다.

어젯밤 만찬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국물 맛을 본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나름 음식에 할 말을 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미역국을 끓였기에 이렇게 담백하고 깊은 맛이 나느냐고 야단이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어요, 소금간만 해서 끓였어요.’ 대답은 의외로 싱겁다.

그 말을 믿는 이가 없다. 필자는 믿는다. 비법이 따로 있던가. 해녀들이 물질해 뜯어낸 초각미역이 아니던가. 옆집에도 주지 않고 팔지도 않고 가족들을 위해서 뜯는 다는 첫물 미역이다.

상품으로 내놓는 미역은 이후 중각이나 ‘망각’이다. 늦게 채취한 미역이라 만각이냐고 여쭈었지만 한사코 망각이라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 맛은 절대 뭍에서 낼 수도 맛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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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은 미역을 팔아 돈을 샀다. 그 돈으로 학비도 대고, 쌀도 사고, 옷도 샀으니 미역밭이 자식보다 중했다. 그러니 손재수가 없어 두해 연속 미역 흉년이면 굶어 죽어야 할 팔자다.

여기서 그친다면 섬살이를 견디며 살아남을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두 짓을 남겨 놓은 것이다. 최소한 생활을 위한 사회보장이다. 연속 ‘꽝’은 막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현명한 사람들이 있을까. 이보다 훌륭한 제도가 있을까. 그들이 섬사람이다. 그들이 진정한 어민이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다.

꼬돌개, 그 아픈 이야기

통영에서는 해안이나 갯바위를 ‘갱문’이라 한다. 매물도에서는 ‘바당’이라 부른다. 매물도와 가왕도를 제외하면 이런 말을 사용하는 섬은 없다.

‘바당’은 제주말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매물도에서 미역을 뜯는 조모들은 제주에서 출가한 해녀들이다. 통영에서는 할머니를 조모라고 부른다. 이곳에 물질을 하러 왔다가 눌러 앉은 것이다. 그게 어디 매물도만 그렇던가.

서해와 남해 그리고 동해와 울릉도 물질하기 좋은 섬과 연안에는 대부분 제주해녀가 있다. 그런데도 매물도에서만 그 말이 통용되는 것은 조모의 영향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리라.

아이를 낳거나 귀한 손님이 오면 성게미역국을 내놓는 것도 제주음식의 영향이다. 농사보다는 바다에 그것도 해녀의 물질에 의지해 살아왔다는 의미이다.

매물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부터라지만 왜구 등살에 섬을 비웠다가 다시 섬살이를 시작한 것은 1810년대로 알려져 있다. 고성에서 들어온 첫 이주민이 정착한 곳은 꼬돌개라는 곳이다.

대항마을에서 남서쪽으로 해안 길을 따라 걷다보면 소매물도 등대가 보일라말라 할 즈음에 다랑이 논 흔적이 남아 있다. 유일하게 산비탈을 일궈 쌀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꼬돌개에 정착한 주민들은 10여년 뒤 흉년과 괴질로 모두 죽고 말았다. 한꺼번에 ‘꼬돌아졌다’고 해서 붙여진 아픈 지명이다.

그 후 50, 60년이 지난 뒤 고성과 사천 사람들이 작은 꼬돌개로 들어와 오늘에 이르렀다. 옛날 섬에서는 먹고사는 것만 아니라 입고 자는 것도 문제였다. 슬레이트가 보급되기 전이라 매물도처럼 벼농사가 어려운 섬은 짚을 마련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매물도에 정착한 사람들이 머물렀다는 꼬돌개다. 불행하게 흉년과 질병으로 초기 정착한 사람들은 모두 ‘꼬돌아졌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두 운명을 달리 했다는 말이다.
매물도에 정착한 사람들이 머물렀다는 꼬돌개다. 불행하게 흉년과 질병으로 초기 정착한 사람들은 모두 ‘꼬돌아졌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두 운명을 달리 했다는 말이다.

제주도 마라도나 가파도가 그랬다. 모슬포에 며느리 친정이라도 있으면 짚을 변통하기 수월했다. 매물도도 거제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있는 집은 그래도 나았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미역밭이 있었기 때문이다.

봄볕이 따사로운 주말 할머니 두분이 대항마을로 가는 고개에 앉아 가파른 골목길을 줄지어 오르는 등산객을 구경한다. 한때 테왁에 미역을 가득 담아 등에 지고 오르내리던 길이다.
봄볕이 따사로운 주말, 할머니 두분이 대항마을로 가는 고개에 앉아 가파른 골목길을 줄지어 오르는 등산객을 구경한다. 한때 테왁에 미역을 가득 담아 등에 지고 오르내리던 길이다.

상군해녀, 퇴직하다

대항마을에서 당금마을로 가는 언덕 조모 두 분이 봄 햇살을 맞으며 배에서 빠져 나오는 울긋불긋 차림새의 여행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분은 허리에 보호대를 찼고, 다른 한 분은 앉은 채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옛날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던 섬이었다. 두 할머니 모두 제주도 출신 해녀다. 지금은 은퇴를 했다.

일제강점기 매물도 바다에서 물질을 하던 몇몇 제주 해녀들의 소문을 듣고 아예 제주에서 해녀를 모집해 매물도를 찾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겨우 물이 빠진 갯바위에서 해초를 뜯는 정도였지 바다 속까지 들여다볼 생각은 못했다.

통영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 보는 위치에 따라 섬이 한 개, 세 개, 다섯 개, 여섯 개로 보인다는 바위 섬 가익도를 배경으로 노을이 진다.
통영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 보는 위치에 따라 섬이 한 개, 세 개, 다섯 개, 여섯 개로 보인다는 바위 섬 가익도를 배경으로 노을이 진다.

해녀들이 물질한 미역, 가사리, 전복, 홍합 등은 마을과 반반으로 나누었다. 명절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주해녀들은 목돈을 챙겼지만, 주민들 섬살이도 나아졌다. 특히 매물도 미역은 가왕도와 함께 통영, 마산 상인들이 탐내는 보물이었다.

통통배로도 하룻밤 하루 낮이 걸리는 먼 길이지만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년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매물도를 찾았다. 이렇게 경제력 있고 생활력 강한 해녀들을 매물도 총각들이 그냥 두었을 리 없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야 했기에 외롭고, 매년 바닷길을 오가는 것도 쉽지 않고, 그 사이 눈도 맞고 정분도 났다. 그렇게 하나 둘 매물도에 정착을 했다. 지금도 당금과 대항 두 마을에 열댓 명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그렇게 40, 50년, 매물도 바다를 지켜온 상군해녀는 이제 지팡이 없으면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서기 어렵고 허리에 보호대를 차야 버티는 상할머니로 바뀌었다. 그리고 미역을 가득 담은 테왁을 지고 오르던 가파른 골목길은 울긋불긋 배낭을 맨 등산객들이 차지가 되었다.

하늘길을 걷다

골목을 빠져 나온 이들의 목적은 하나다. 다음 배가 오기 전에 장군봉을 거쳐 대항마을 까지 가는 것이다. 중간에 목 좋은 곳에서 잠깐 쉬면서 싸온 도시락 까먹는 것이 일이다. 미역이고, 성게고, 해녀고 관심이 없다. 아름다운 섬마을과 하늘로 열릴 것 같은 섬길을 조곤조곤 걸으면서 섬 속살을 보면 좋으련만.

동백숲을 지나면 하늘로 이어지는 천상길이 나올 것 같고, 좁은 오솔길을 지나면 바다로 가는 용궁길로 이어질 것 같다.
동백숲을 지나면 하늘로 이어지는 천상길이 나올 것 같고, 좁은 오솔길을 지나면 바다로 가는 용궁길로 이어질 것 같다.
 

여행객이 늘면서 골목에 야채 바구니가 하나 둘 놓이기 시작했다. 마늘, 달래, 방풍 등 여행객에게 팔기 위해 내놓은 것들이다. 하지만 호주머니를 여는 이가 드물다.
여행객이 늘면서 골목에 야채 바구니가 하나 둘 놓이기 시작했다. 마늘, 달래, 방풍 등 여행객에게 팔기 위해 내놓은 것들이다. 하지만 호주머니를 여는 이가 드물다.
 수십 년 섬길을 걸었지만 이보다 아름다운 길을 본적이 있던가. 매물도에 가면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 해품길이다. 산비탈을 일궈 농사를 짓던 골골에는 바람을 막던 동백 숲이 봄볕에 윤슬처럼 반짝인다. 그 사이로 때로는 바다로 이어지고 때로는 하늘로 이어진다. 그래서 해품길  필자는 ‘하늘길’이라 부른다.

하늘길은 이정표을 볼 필요도 없다. 쉬엄쉬엄 두어 시간 걷다보면 당금마을에서 대항마을로 이어진다. 북서풍에 맞서 언덕에 자리를 잡은 대항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것도 동백숲이다. 아름드리 동백나무에 매달린 꽃이 더욱 붉다.

뱃고동이 울리자 여행객이 달음질을 친다. 돌아갈 때 ‘해녀가 건져 올린 돌미역’ 한 가닥이라도 사가면 좋으련만. 모두 입맛이 양식미역에 길들여져 자연산의 깊은 맛을 외면한다. 섬살이를 이해하는 발걸음이 섬을 지키는 일인데. 물질하는 해녀가 없는 매물도, 성게미역국 대신에 오뎅국이라도 좋을까.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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