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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fake news here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나도 봤다. 그 영상을 본 전 세계 1억 명 이상 중 한 명이다. 그 가족이 유명세를 탄 후 기자회견까지도 챙겨 봤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른다. 그는 그날 자신이 졸지에 ‘세계적’ 인물이 될 거라고 눈곱만큼이라도 생각했을까. 방문을 잠그기만 했어도 그는 제자들만이 알아보는 평범한 교수로 남았을 것이다.

짐작했겠지만,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로버트 켈리 교수(45)의 10일 BBC 인터뷰 방송사고 이야기다. 주변에는 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아주 사소한 실수가 빚은 에피소드에 불과한 그 동영상이 그토록 나라 안팎의 화제가 될 만큼 뉴스 밸류가 있냐고 반문할 만도 하다.

BBC 웹사이트에 들어가봤다. 문제의 동영상은 BBC 페이스북에서만 약 1억 번 이상 조회됐다고 한다. 속보도 떠있다. 이번에는 두 아이를 안은 켈리 부부의 정식 인터뷰 영상이 ‘특종-방해받은 인터뷰, 파트2’ 란 제목으로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에피소드가 맞다. 국내정세와 남북관계 전망에 대한 진지한 인터뷰에서 이는 삽화에 불과했다. 그런데 왜 인터뷰 내용은 정작 관심을 끌지 못하고 에피소드만 남은 본말전도가 되었을까. 한낱 실수이자 방송사고에 불과한 이 40초짜리 동영상이 지구촌 화제가 된 건 무엇 때문일까.

관련 기사를 이리저리 찾다보니 명쾌하게 답을 내린 이가 있었다. 미국 배우 톰 행크스다.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그 영상을 링크하며 남긴 한 줄은 이렇다. “No fake news here!(여기에 거짓 뉴스는 없다)”

BBC가 생방송 후에 이 영상을 편집했거나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다면 켈리 교수 가족에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켈리 교수는 밉보여서 밥줄이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켈리 교수는 생방송을 마치고 BBC 측에 즉각 아이들을 단속하지 못해 방송사고를 낸 데 대해 사과했는데 BBC는 오히려 인터뷰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도 되겠냐고 설득했다고 한다. BBC는 뭐가 더 큰 뉴스가 되는지를 동물적 감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켈리 교수 가족은 국내외 미디어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자 BBC 방송 5일 후인 15일 부산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나는 켈리 교수의 모두 발언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는 진실하고 솔직했고, 거들먹거리지도 않았으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났고, 기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그의 아내 김정아씨(41)도 처음에 자신이 보모로 인식된 인종차별 논란에(일부 해외 언론이 처음에 nanny라고 보도한 후 정정)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고, 앞으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길 바란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저희 가족은 이 영상을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가족일 뿐이고,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마 전 세계 부모들이 이 영상을 보고 공감한 이유일 듯합니다. 아이들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우리의 방송사고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게 되어 기쁩니다. (중략) 이 인터뷰는 조작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상황이 조작되었고 가짜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방송사고 직후 아내와 싸우지 않았고, 아이들을 혼내지도 않았습니다. 이 영상에 대한 정치적이거나 진지한 분석에 대해서는 아무 답변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이를 굉장히 공개적인 방송사고로 볼 뿐입니다.”

이 굉장히 공개적인 방송사고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의 말대로 아무런 조작이 개입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냥 우연한 실수가 마치 리얼리티 프로그램처럼 방송됐을 뿐이다. 톰 행크스는 그게 이 동영상의 진가임을 한 마디로 말한 것이다.

이 짧은 동영상은 물론 정치적으로 페이크도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모습에서도 페이크가 아니었다는 점이 모두를 유쾌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는 동양인에게나 서양인에게나 다 사랑스럽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벌어진 난감한 상황은 미국인이든 영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다 공감이 갈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켈리 교수, 당신은 2017년을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라고 코멘트했다.

난감한 남편의 표정, 거의 빛과 같은 속도로 남편의 방에서 황급하게 아이들을 낚아채듯 끌고 나가는 엄마의 동작이 웃음을 자아냈지만 그 눈물겨운 모습, 가족의 풍경이 한편으론 짠하기도 하다. 넥타이를 매고 의젓하게 인터뷰하고 있는 교수님도 실상 바닥을 기다시피하면서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고단한 아내의 내조에 의존하는 남편일 뿐이다.

근엄한 공적 공간에서 사적인 돌발상황이 만든 한 편의 유머다. 정치가 어떻고 안보가 어떻네 하는 심각한 어른들의 세계는 생일파티를 마치고 기분이 업돼서 어깨춤을 추며 침입하는 네 살짜리 매리온과 보행기를 밀며 누나를 졸래졸래 따라 들어온 9개월 된 제임스에게 순식간에제압당하고 희화화되었다. 영화에서 주연 이상으로 주목을 받는 조연을 신 스틸러(scene stealer, 장면을 훔치는 사람)라고 부르는데 바로 우리의 귀여운 난입자 매리온이다.   

조금 과장된 말이겠지만, 이제는 페이크 뉴스라는 의혹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뉴스만이 제대로 뉴스 대접을 받는 시대인가 싶다. 미국 대선을 계기로 불순한 정치적 의도로 생산되는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가 지구촌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었다. 각 나라마다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페이크 뉴스는 이른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탈진실)의 사생아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뽑은 ‘올해의 단어’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뜻한다. 탈진실 자체가 언론자유의 산물이라는 점은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지금 범람하는 뉴스의 대홍수 속에서 각자 탈진실과 페이크 뉴스를 경계해야 하는 처지다. 이게 로버트 켈리 교수와 아내 김정아씨, 귀여운 아이들 매리온과 제임스의 합작 비디오에 열광한 이유가 아닐까.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2017.03.17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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