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 누리집 로고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콘텐츠 영역

이 시대의 남편들에게

2017.03.29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인쇄 목록

“그와 사랑에 빠지는 건 쉬운 일입니다. 저는 첫 날에 그랬죠. 제 남편과 결혼해 주실래요?”

에이미 로즌솔은 지난 밸런타인 데이에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저는 제이슨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제 아이들과도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목요일 밤, 그린밀 재즈 클럽에서 마티니를 홀짝거릴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있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 행성 위에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며칠 정도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신가요? 저는 이 글을 밸런타인 데이에 마무리했습니다. 거짓 없이, 제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선물은 좋은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제이슨을 만나 또 다른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새로운 시작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이 아래는 여백으로 남겨두겠습니다.”

그녀는 한 달 후인 화이트 데이에 행성을 떠났다. 향년 51세.
난소암과 투병하면서 자신이 죽은 후 남편과 함께 할 여자를 찾는다는 글을 쓴 미국의 동화작가 에이미 로즌솔의 이야기다.

국내 언론에도 그 사연이 보도되었지만 나는 그녀의 공개구혼장 전문이 너무 궁금했다. 인터넷에 누군가 벌써 그 원문을 찾아 깔끔하게 번역해 놓았다. 제법 긴 글이었다. 눈물샘을 자극했다. 작가다웠다. 그녀의 표현대로 ‘몰핀과, 육즙이 흘러내리는 치즈버거가 없다는 사실이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앗아갔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진정과 유머를 잃지 않은 따스한 ‘유언장’이었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이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팔팔한 젊은이들이라면 공감이 크게 가지 않는 스토리일 수 있지만, 중년들은 좀 다르게 느끼는 거 같다. 우리네 인생사는 부부가 백년해로하고 한날한시에 떠나는 행운을 주지는 않을 테니까.

한 친구가 물었다.
“그 남편이 아내 소원대로 다시 결혼하게 될까?”
여기서부터 의견이 엇갈렸다. 세상 이목이 쏠려있는데 쉽게 재혼하긴 부담스러울 거다… 막상 재혼하면 여자들이 실망할 거다… 이 사연에 감동한 여자들이 분명 찾아올 거다… 진정한 미담이 되려면 남편도 아내를 평생 그리워하며 독수공방하다 아내 곁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한 친구가 순간 모두의 허를 찌르는 매우 ‘현실적이고 냉정한’ 답을 내놓았다.
“다 쓸데없는 걱정들이야. 좀 안 된 말이긴 하지만 상처한 남자는 얼마…”
분위기가 썰렁해지는가 싶더니 “그래. 그게 맞다. 맞아. 정답이야”라고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치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별은 가정을 꾸민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큰 상실이다. 단순한 관계의 종결,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함께 있다가 홀로 남겨진 자의 슬픔과 외로움은 너무나 크다. 결혼 스트레스가 50점이라면 배우자 사망이 주는 스트레스는 99점이라는 어떤 조사 결과가 있었다. 자녀나 부모의 사망보다 높다고 한다.

그런데 사별 후에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많이 다르다.
작년에 보험연구원이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아내와 사별한 남성의 사망률은 배우자가 있는남성보다 무려 4.2배나 높았다. 이혼한 남성의 사망률도 2.7배 높게 나왔다. 남편과 사별한 여성의 사망률도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3배 정도 높긴 했지만, 같은 상황의 남성 사망률과 비교해 보면 4분의 1 수준이었다. 나도 모친상을 당한 지 몇 개월 안 된 친구로부터 다시 부친상 부고를 접한 경험이 더러 있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사망률뿐 아니라 우울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노인학회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배우자 사별에 따른 우울감은 모든 나라에서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오래 지속됐다. 배우자를 잃은 첫 해에는 남녀 모두 우울감이 가장 높았지만, 여성은 최장 10년의 관찰 기간에 서서히 그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됐다. 반면 남성은 사별 후 6∼10년이 지나도 높은 수준의 우울감이 유지됐다.

이 조사는 동서양을 비교하기도 했는데 배우자를 잃은 후의 우울감은 한국인이 유독 심하고 오래 갔다. 조사 대상인 미국, 영국, 중국, 유럽인과 비교할 때 우울감의 변화폭은 한국인이 미국과 유럽인들의 2~3배나 됐다. 특이했던 건 중국인만 유일하게 배우자 사별 후의 우울감이 오히려 떨어졌다.
궁금한 김에 자료를 더 뒤져보니 사별하거나 이혼한 남성은 아내가 있는 남성보다 자살 위험이 2배 이상 높다는 조사도 있었다. 반대로 여성은 사별, 이혼 후에 자살 위험이 낮아졌다. 

해석은 대체로 이렇다.
남편들은 아내가 곁에 있을 때 누리는 심리적 신체적 이익이 여자보다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사별한 남성은 영양부족, 생활습관 악화, 고립감 심화 등의 변화가 생긴다. 심지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도 더 빨리 감소한다고 한다. 특히 가부장적 전통이 강하고 아내가 주로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그 정도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불쌍한 것일까. 은퇴한 남자들에 대한 씁쓸한 유머는 무척 많다. 술자리에서는 아내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한 남자들의 처절한 생존수칙이 자주 안주에 오른다. 무척 자조적이고 자학적이다. 아내들 입장에서는 이른바 ‘은퇴남편 증후군’에 대한 블랙유머가 많다. 이른바 ‘삼식이 스트레스’다.

남자들은 왜 여성보다 독립적이지 못할까. 남자는 왜 아내가 늘 챙겨줘야만 실수 안 하고 제대로 지내는 걸까. 과부는 잘도 사는데 홀아비는 왜 궁상맞게 보일까.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고 직장에선 나름 인정받은 사람이 막상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건 왜 이리 서툰 걸까. 남성의 평균 수명이 여성보다 7, 8세 적은 게 다행일지 모르겠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흐르게 되자, 우리는 술을 마시며 우울하게 반성했다.  

에이미 로즌솔은 공개구혼을 할 만했다. 그녀가 쓴 글에는 남편 제이슨 로즌솔에 대한 자랑이 많다. 홀로 남은 제이슨은 다행히 우리보다 잘 하는 게 많다.

맵시 있게 옷도 잘 입고, 심지어 양말까지도 바지와 구두에 어울리게 고르는 안목이 있다. 몸도 잘 관리하고 콘서트도 자주 가고 그림도 그리는 취미가 있다. 팬케이크도 잘 뒤집는다. 식사 전에 아내에게 올리브와 맛있는 치즈를 건네준다. 언제나 일찍 일어나서 식탁 소품으로 귀여운 소품을 만들어 이쁨을 받는다. 마트에서 나오면서 짜잔, 하며 색색의 풍선껌을 건네주는 사랑스런 남자다.

나는 제이슨 로즌솔이 너무 상심하지 말고 우울에 빠지지 말고 빨리 좋은 여자를 만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게 진짜 해피엔딩이자 네버엔딩 스토리다. 제이슨이 아내 에이미가 남겨놓은 뉴욕타임스의 여백을 채우는 상상을 해본다. 그 제목은 “여보, 잘 있나요? 기뻐해줘요. 나 결혼해요.”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이전다음기사 영역

하단 배너 영역

지금 이 뉴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