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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현상, 그 해석의 어려움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2017.04.28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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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하트필드, 쥐, 코끼리, 양, 일각수, 제이, 댄스….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곳곳에는 이런 수수께끼 같은 키워드들이 가득하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온갖 은유와 상징을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만큼 그의 작품은 난해하다. 읽는 이마다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큰 영향을 받았다는 미국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타인과 다른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타인과 다른 말로 이야기하라”는 문구를 금과옥조로 삼은 탓일까. 하루키는 ‘자폐문학’이라는 평을 들으면서까지 타인과는 사뭇 다른 말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이른바 ‘하루키 월드’다.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가 다시 화제에 올랐다. 한국어 출판권을 따내기 위한 출판사들 간의 판권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인세로 20억 이상을 써냈다고 한다. 선인세 경쟁의 승자는 하루키에 유달리 강한 면모를 보여온 문학동네다. 웬만한 출판사의 1년 매출을 넘는 액수이니 적지 않은 돈이다. 그동안 하루키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선인세 논쟁에 휩싸였다. 2008년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해변의 카프카’의 경우 6억원 정도, 2009년 문학동네가 펴낸 ‘1Q84’는 10억원선, 2013년 민음사가 출간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16억 원이 넘는 선인세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을 추구하는 ‘제조업체’로서 출판사가 먼저 ‘상업적’인 가치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출판사, 특히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라면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일반 제조 회사와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을 추구하고 또 추구해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학에는 ‘돈’으로 측량할 수 없는 정신적 가치가 담겨 있다.

하루키는 어떤 작가이길래 이토록 논란을 몰고 다닐까.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단골로 오르는 하루키는 미국과 유럽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견고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하루키스트’라고 부를 정도다. 이들에게 하루키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온전히 갖춘 작가로 통한다. 하지만 하루키의 문학적 성취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거나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혹평을 내놓는다.

하루키 문학에 관한 국내 논자들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하루키 현상을 통속적 대중문화의 세계화 쯤으로 보는 ‘반(反)하루키’ 진영이다. 그들은 종종 하루키의 작품이 서양 독자들에게도 두루 통할만한 모티프와 세련된 감각을 갖추고 있지만 자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건강한 인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 2005년 ‘올해의 책 10’에 선정된 ‘해변의 카프카’는 아시아 최초로 프란츠 카프카 상을 받아 일본에 노벨문학상을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 대해 국내 평자들은 하루키가 일본 국민의 전쟁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스스로를 피해자로만 기억하려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역사의 기억을 지우려는, 탈역사화의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 결여된 피상적인 작가가 덜컥 노벨상이라도 받으면 난감한 노릇이라며 하루키가 아직 안 탄 것이 세계문학을 위해서도 다행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일본 문학이 세계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데는 1990년대 이후 일본문학이 급격하게 탈민족적인 경향을 띠게 된 것이 한 요인으로 꼽힌다. 국가나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 대중문화의 확산과 획일적인 소비문화의 팽창이라는 전 지구적인 흐름에 적절히 대응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우리도 괴테적인 의미의 ‘이념’으로서의 세계문학을 넘어서는 하루키적인 ‘현실’로서의 세계문학에 더욱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은 읽는 이마다 다르게 읽을 수 있고, 되풀이 읽을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게 읽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독자라면 누구나 해석의 자유가 있다. 해석의 갈등은 숙명이다. 장정일은 “하루키는 문학이라는 뷔페에 올라온 ‘인스턴트 식품’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문열은 자신의 작품 ‘호모 엑세쿠탄스’와 ‘1Q84’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하루키에 일정부분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선수들끼리만 알아보는 게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하루키에 대한 보다 엄정한 평가가 내려지기 위해서는 한층 치열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하루키 현상을 애써 외면하려는 자세는 온당치 않다. 하루키 열풍과 냉소 사이에서 지적 혼란을 겪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하루키 재평가’는 절실하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과 관련, 일본군이 난징에서 중국측 주장보다 많은 40만명 정도의 중국인을 학살했다고 적어 갑론을박이 일고 있는 작품이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만만찮은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선인세로 촉발된 하루키 논쟁의 본질은 그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관건은 이를 통해 얼마나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한국 문학시장의 볼륨을 키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종면

◆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서울신문에서 문화부장 등을 거쳐 수석논설위원을 했다. 지금은 국민권익위원회와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로 세계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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