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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쇼날 뿌라스틱’ 시대, 넌 플라스틱 하니?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석기, 철기…‘플기 시대’

2017.06.26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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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비닐봉지 5개만 주세요. 친구들 만나기로 했는데 상추 좀 뜯어다 주려고요.” 세종시 근교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주부 C씨는 대전에 있는 친구들에게 가끔씩 텃밭에서 나는 이런저런 채소들을 나눠주곤 한다. 상추는 물론 밭에서 수확한 마늘, 감자 등을 포장할 때 그가 애용하는 건 비닐봉지이다.

C씨 집 주방 한 켠에는 커다란 두루마리 형태를 한 비닐봉지 뭉치가 있다. 식구들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뜯어 쓰듯 비닐봉지를 하나씩 뜯어 사용한다. 두루마리 형태의 비닐봉지 뭉치에는 어림 잡아 적어도 500개 이상의 비닐봉지가 말려져 있는데, 일년에 이 뭉치를 거의 2개 가까이 쓴다.  다시 말해, 1000개 안팎을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의 가족은 자급자족을 목표로 시골에 내려와 살고 있지만, 보조 부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재활용 박스에는 하루가 무섭게 비닐이며 플라스틱 재질의 각종 폐기물이 쌓인다. “우리 아파트 살 때나 지금이나 폐기물로 나오는 플라스틱 양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그렇죠?” 포장용이든 뭐든 플라스틱 재질을 생래적으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남편은 시골에 살면서도 플라스틱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하는 게 불만이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시골마저도 구석구석 플라스틱의 세례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대이다. 주변을 돌아보라. 컴퓨터, 휴대전화기, TV, 의자, 벽에 걸린 액자, 자동차의 안팎, 심지어는 안경까지 온 사방이 플라스틱 천지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후세의 사가들이 21세기를 어떻게 기록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마 문명사적 측면에서 20세기 이후는 ‘플기 시대’로 구분해도 그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 온 인류가 새롭게 연 주류 물질문명의 주 재료가 플라스틱임은 틀림 없다. 플라스틱이 판을 치는 이 시대를 그러니 ‘플기 시대’로 대별해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재활용을 기다리는 물병 등 플라스틱 폐기물. 플라스틱은 매립이나 소각이 어려워 재활용이 최선이다. (사진=스트리트 와이즈)
재활용을 기다리는 물병 등 플라스틱 폐기물. 플라스틱은 매립이나 소각이 어려워 재활용이 최선이다. (사진=스트리트 와이즈)

플기 시대는 물론 사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이미 구미 문화계에서는 이런 단어가 등장한 바 있다. 1980년 영국에서 발매된 뉴웨이브 계열의 앨범, ‘플라스틱 시대’(The Age of Plastic)가 대표적인 예이다. 플라스틱을 현대 물질문명의 심벌로 여긴, 이 앨범의 곡들에는 펑크, 디스코, 프로그레시브 락 등의 요소가 녹아 들어 있다.

플라스틱은 물성 특징으로 분류하면, 유기고분자화합물이다. 원천적으로 플라스틱은 석유화학의 부산물이다. 가장 주된 재료가 석유나 천연가스이기 때문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플라스틱 분자를 이루는 핵심 원소인 탄소와 수소를 공급한다. 이 탄소와 수소에 각종 첨가물 등이 들어가고, 이런저런 공정을 거쳐 다양한 플라스틱(비닐류 포함)이 생산된다.

물질 혹은 재질로써 플라스틱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 단어 ‘plastic’의 여러 뜻 가운데 하나인, ‘모양이 마음대로 되는’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생김새와 재질 특성에서 천의 얼굴을 가진 재료가 바로 플라스틱인 것이다. 헌데 플라스틱의 이런 특성은 재질 혹은 재료과학적 차원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단적인 예로, 플라스틱 재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얼굴 등을 고치는 시술을 성형시술(plastic surgery)이라 칭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플라스틱의 존재는 현대 인류의 사고방식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 플라스틱이라는 단어는 성형이라는 뜻 외에도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뛰어난 예술적 창조력을 수식할 때도 역시 플라스틱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외에도 성격 등이 유연한 걸 가리켜 플라스틱이라 묘사할 수도 있다.

플라스틱은 물질문명을 넘어서 현대인의 문화적 특징 등을 함축하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마치 철기시대 철이 강인함의 상징이자, 하나의 미덕으로까지 받아들여졌듯 플라스틱 또한 그 재료과학적 측면에서 유연함과 다채로움 등을 넘어서 현대인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강철 같은 성격이라든지, 철통 같은 방어라든지 하는 개념에 철이 녹아 들었듯, 유연하고 창조적인 사고 등에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의 존재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플라스틱은 칭송이나 미덕 혹은 상찬의 대상만은 아니다. 환경호르몬의 폐해, 암 발생의 증가, 잘 부패하지 않는 특징 등은 플기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플라스틱의 어두운 그림자들임이 분명하다. 플라스틱이 재활용이 강조되는 건 사실 경제적 가치에 앞서 플라스틱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구조재 혹은 포장재 등으로 사용된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태우면 생명체에 매우 유독한 물질이 뿜어져 나온다. 그렇다고 손쉽게 매립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잘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피가 커서 자리를 엄청나게 많이 차지하는, 즉 폐기물로써도 단점이 적지 않은 게 바로 플라스틱인 까닭이다.

현대의 문명과 문화는 특히 야누스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 마치 양날의 칼처럼 인류의 몸과 마음에 안식 혹은 편안함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인간성을 파괴시키고 또 생태계를 교란하는 등 역기능도 적지 않다. 적당한 인터넷 게임은 휴식이 되지만, 인터넷 게임 몰입은 중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스턴트는 플라스틱의 대표적 속성 가운데 하나이다. 일회용 상품 등을 통해 플라스틱 문화의 인스턴스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공주얌)
인스턴트는 플라스틱의 대표적 속성 가운데 하나이다. 일회용 상품 등을 통해 플라스틱 문화의 인스턴스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공주얌)

플라스틱은 현대 문명과 문화의 다면적인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하는 물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값싸게 또 더 없이 편리하게 여기저기에 활용할 수 있지만, 자연계와 인간의 심신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기도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의 전방위적인 사용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산업의 규모는 수천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액수와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OECD 그룹 국가에서 생산 유통되는 플라스틱의 대략 30% 남짓은 포장재로, 또 다른 30% 남짓은 건축물에 사용된다는 통계가 있다. 나머지 30% 남짓은 자동차, 장난감, 가구 등이 차지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국가에서는 특히 포장재 사용이 많다는 보고도 있다.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 전체 플라스틱 생산유통량의 42% 가량이 각종 상품 포장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폐기물 형태로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물질은 대부분은 포장재라고 할 수 있다. 포장재 플라스틱류는 한번 쓰고 버린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인스턴트’ 상품이다. 인스턴트는 현대인들의 삶의 양식 특성 가운데 하나로,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인스턴트로 한다는 혹평이 있는데 이게 바로 플라스틱의 활용상의 특징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먹을 거리며, 때로는 입을 옷까지 ‘1회용’으로 접근하는 사고 방식에 플라스틱의 영향과 뒷받침은 실제로 적지 않다. 한번 쓰고 버리는 1회용 상품을 하나씩 떠올려 보라. 아마 플라스틱 성분의 물질이 겉봉투나 주요 구조재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재질 혹은 재료로써 플라스틱은 나무나 철이 넘볼 수 없는 장점이 한둘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로 성형이 가능함은 물론 제법 견고하면서도 동시에 부식 혹은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예를 들면, 자동차 등에는 날로 플라스틱의 비율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나무 혹은 철에 비해 보통 사람들에게 정이 가는 재료는 아니다.

1980년 발매된 앨범
1980년 발매된 앨범 플라스틱 시대의 표지. 플라스틱을 현대 기술문명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사진=아일랜드 레코즈)

혹 현대인들의 정신세계가 또 정서가 옛사람들에 견주어 척박하고 건조하고 피폐하다면, 플라스틱의 등장과 폭 넓은 플라스틱 사용과 연관은 없는 걸까? 현대적 플라스틱은 1907년 미국 뉴욕에서 벨기에 출신인 레오 배켈랜드라는 사람에 의해 최초로 개발됐다. 배켈랜드는 바로 플라스틱이라는 당시로서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다.

20세기 개막과 함께 등장한 플라스틱은 이후 1차 대전을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을 주재료로 한 무수한 상품들이 그 뒤 개발되고, 현대인의 일상에 침투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인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은 우연치고는 기막히게 플라스틱의 발병 그리고 보급 양상과 맞물리면서 변해왔다. 그러니 플라스틱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 말로 플라스틱 사고를 하는 게 아닐까?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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