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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다문화 호모사피엔스다!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다문화 지향의 유전자

2017.08.30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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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종과의 결혼의 확대는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고 다른 인종간 혼인은 다문화 사회를 이끌어내는 핵심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사진은 결혼 이민자 가족들 초청 문화 체험 나들이 행사.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다른 인종과의 결혼 확대는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고 다른 인종간 혼인은 다문화 사회를 이끌어내는 핵심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은 결혼 이민자 가족들 초청 문화 체험 나들이 행사.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어머니, 저는 백인여자나 흑인여자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요. 한국사람이 제일 좋고요. 그도 아니라면 그래도 동양인이 무난하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간 K씨는 올해 28세이다. 그의 부모는 가끔씩 조심스럽게 아들이 결혼을 염두에 두고 미국에서 사귀는 여성이 없는지를 떠본다.

50대 중후반으로 상당히 개방적인 부모는 며느리가 다른 인종이어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 헌데 정작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오래 산 아들의 관심은 한국인(혹은 한국계) 여자들을 벗어나지 않는다.

올해 40대 초반인 J씨는 10여년전 미국인 남성과 혼인했다. 두 사람은 동남아시아 여행을 하다가 만났는데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빠른 속도로 상대방에게 빠져들었다.

결혼 후 서울에서 잠시 같이 생활하기도 했지만, 이내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현재 두 사람은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소도시에 살고 있다.

이른바 ‘국제결혼’이 비교적 흔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1980년대 후반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 이후 계속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때 국제결혼은 한국 여성과 해외 남성 사이의 혼인이 대종을 이뤘다.  하지만 최근 십 수년 동안은 반대로 한국 남성과 해외 여성간의 혼인이 더 많이 눈에 띄곤 한다.

다른 인종과 혼인 건수를 증가시킨 일등 공신은 뭐니뭐니해도 대폭 늘어난 해외여행 혹은 이민이다. 결혼을 법적으로 담보하는 ‘서류’가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요즘 세상에 남녀가 눈을 맞추지 않고 혼인에 이르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필리핀 신부와 나이지리아 신랑의 결혼. 필리핀과 나이지리아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덜한 축에 속한다. (제공=매그너스 맨스켈)
필리핀 신부와 나이지리아 신랑의 결혼. 필리핀과 나이지리아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덜한 축에 속한다. (제공=매그너스 맨스켈)

다른 인종과 결혼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지만, 이민(혹은 식민)으로 이뤄진 북미나 중남미 국가 등은 다문화 사회가 사실상 출발점이나 다름 없었다.

다문화 사회라는 관점에서 한국 사회는 세계적 추세에 비춰보면 오히려 늦게 발을 뗀 모양새다. 최근 수십 년 국제적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는 지구촌에서 다문화 사회가 아닌 국가를 찾기가 훨씬 어려울 듯 하다.

다문화 사회가 21세기 인류의 보편적 흐름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지구촌의 다문화 흐름을 촉발시킨 요인을 집약하면 냉전의 종식과 뒤이어 폭발적으로 늘어난 해외 여행, 해외 이주 등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요소들에 불과하다. 인류 본래의 속성이 다문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해 사람들의 본성 안에 숨어 있는 ‘다문화 지향성’이 해외이주와 여행의 증가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땅 속에서 잠들어 있던 씨앗이 온도가 맞으면 싹을 틔우고 성장을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핏속에 흐르는 다문화 지향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과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종의 번식과 생존 가능성의 증대였다.

사람도 생명체로써 다른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살아 남아 자손을 널리 퍼뜨리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데 토를 다는 학자들은 없다. ‘짝짓기’에 있어 핵심은 종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데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서로 상이한 경로를 걸어온 남녀의 만남은 자손의 유전자 풀(pool)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한다. 인류의 혼인 관습이 근친상간을 피하는 쪽으로 자리잡아 온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다.

크로아티아의 트로지르 시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이다. 크로아티는 이국에 대한 동경, 해외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로부터 최근 부쩍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이다.(제공=위키피디어)
크로아티아의 트로지르 시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이다. 크로아티아는 이국에 대한 동경, 해외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로부터 최근 부쩍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이다.(제공=위키피디어)

유전자 풀의 확대란 사실 별 게 아니다. 손쉬운 예를 들어보자. “ΟΟΟ은 혹시 혼혈 아닐까?” 인기 연예인들의 외모를 두고 심심치 않게 이런 얘기가 오가는 걸 들을 수 있다. 실제 혼혈 여부를 떠나, 이런 얘기들은 ‘이국적’인 그 무엇인가에 대한 선망 같은 걸 담고 있다.

‘이국적’(exotic)이란 단어는 설령 선망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호기심’, 아니면 '관심'을 전제한다. 내가 살아본 경험이 없는 세계, 즉 이국은 갖은 상상을 불러 일으키기 쉽고, 이국 체험은 종종 꿈이 되기까지 한다.

휴가를 다 모아서 해외 여행을 떠나는 직장인, 혹은 1~2년씩 생업을 중단하고 장기 세계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건 다름 아닌 ‘이국’이다.  보다 상세히 말하자면, 이국의 사람들과 이국의 풍광 등등이다.

서로 다른 인종의 남녀가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배경 문화가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종종 만나기 무섭게 ‘불꽃’을 튀기며 사랑에 빠져드는 건 이런 ‘이국의 힘’이 작용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국적인 것에 끌리는 남녀 심리를 파고 또 따지고 들면, 끝내는 종족 번식 확률을 끌어 올려야 하는 인간의 숙명과도 연결된다는 말이다.

사람은 본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욕심 많은 존재이다. 헌데 후손에 보다 다양한 유전자를 물려 줄 수 있는 다른 인종간 남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숨어 있는 욕심을 만족시키는 측면이 있다. 설령 스스로 이를 깨닫고 있지 못하더라도 그렇다.

지구촌의 공통적인 현상인 다문화 확산 설명에 구태여 다른 인종까지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 심지어 마을이나 동네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 먼 곳에서 전학 온 친구들은 유달리 더 주목을 받는 경향이 있었다.

먼데서 온 사람들이 더 큰 관심이 대상이 된 것은 일단 배경 문화나 말투 등이 달라서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따지고 들면, 다른 지역 출신의 경우 유전자 차원에서도 미세하나마 상이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 출신이 보다 눈길을 끄는 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주목 받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는 얘기이다.  

요즘 같은 다문화 사회를 꿈조차 꿀 수 없었던 200~300년 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 조상 대부분은 태어나서 반경 수십km 밖을 나가보지 않고 유명을 달리했다. 먼 지역일수록 왕래는 반비례해 적게 마련이었는데, 그 시대에도 신랑 신부는 가능한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 구하는 예가 적지 않았다.

우리 전통사회만 그런 게 아니다. 기계문명을 멀리하는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흔히 ‘아미쉬’로 알려진 미국의 동부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인구집단 또한 수백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신부나 신랑을 구하는 예가 많다.

다른 인종간 혼인은 다문화 사회를 이끌어내는 핵심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다른 인종간 결합에는 장벽이 적지 않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이질감 등을 크게 인식할수록 다문화 사회는 뿌리 내리기 쉽지 않다.

특정 인종, 나아가 특정 유전자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이뤄지는 ‘순혈’ 사회는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  현존하기 힘들다. 또 순혈에 가까운 사회든 혹은 다문화 사회든 그 나름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다문화 사회도 그 양상이 제 각각이다. 예컨대 미국은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불리지만, 인접한 캐나다는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라고 칭하는 이들도 있다.

현대 국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상 다문화 사회의 스펙트럼 중 어느 곳인가에 위치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이른바 주류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경우도 있고, 미국이나 중남미 국가들처럼 확연하게 여러 인종에 걸친 인구집단이 많은 예도 있다.

지구촌의 다문화 사회는 인류가 인류인 이상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문화를 지향하는 유전자를 가진 탓이다. 다만 문화와 언어, 역사와 전통 등이 다문화 사회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브레이크나 가속페달로 작용할 뿐이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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