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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어쩌란 말이냐

2017.08.31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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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기의 대결’ 승자는 49전 전승의 복서 메이웨더였다. 격투기 최강자 맥그리거는 10라운드까지 잘 버텼지만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전 세계 시청자 10억 명에게 주먹이 아닌 것으로 자신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몸이다. 그렇다고 근육은 아니다. 그는 세계의 유명 스포츠 스타 가운데 가장 칼러풀한 몸을 가졌다. 가슴에는 고릴라, 배에는 호랑이를 키우고 있다. 목덜미에는 십자가 모양의 칼, 등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시 돋힌 장미, 왼 팔에는 단검과 장미, 오른팔에는 모자를 눌러쓴 신사, 발목에는 아랍어, 배에는 자신의 이름과 ‘NOTORIOUS’(악명 높은)라는 글자를 새겼다.

▶2007년 개봉한 영화 ‘버킷 리스트’의 일곱 번째 목록. 암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삶을 사는 잭 니컬슨과 모건 프리먼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곱 번째는 ‘몸에 영구 문신을 새기는 것’이었다. 여섯 번째 목록은 ‘최고 미녀와 키스하기’였다.

▶인스타그램에 한글로 ‘타투’라고 치면 게시물이 105만 개, ‘문신’이라고 치면 46만 개가 뜬다. 영어로 ‘tattoo’를 치면 무려 7398만 개의 포스팅이 있다. 어깨 가슴 등 배 허리 팔 다리 엉덩이 허벅지 손 발 손가락 발가락 귀밑 목덜미 발뒤꿈치 등 신체의 모든 부위에 다 존재한다. 

▶하드락 그룹 노브레인의 노래 중에 ‘타투’가 있다.
“…흐지부지한 일상에/너를 기다리는 샴페인/자, 이제 빛나는 몸에 꿈을 새겨/너의 긴긴 잠을 깨워줄/지워지지 않는 파라다이스/자, 이제 빛나는 몸에 꿈을 새겨/두 팔뚝을 걷어 두 다리를 걷어…”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공자, 효경)

▶“여러 사람이 이용하거나 다니는 도로·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고의로 험악한 문신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준 사람”은 경범죄처벌법 3조(종류) 19항(불안감 조성)에 해당돼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의 형을 받게 된다. 인권침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7월 26일에 개정 공포된 법에도 그대로 남았다.

부산 해운대 경찰서는 2017년 3월 공중목욕탕에서 문신을 드러내 혐오감을 주었다는 이유로 조직폭력배 16명에게 경범죄 처벌법을 적용해 범칙금 5만원을 처분했다. 경찰은 목욕탕에 문신을 드러내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단속한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신고를 당부했다. 이 기사의 댓글에는 잘했다는 반응과 인권침해라는 반응이 반반 정도였다.

▶2017년 7월 병역 의무를 피하기 위해 온몸에 문신을 새긴 22세 남성에게 광주지법이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는 전신 문신 사유로 4등급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가게 됐지만 병무청이 수사를 의뢰했다. 병무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 4월~2016년 5월까지 병역 기피 165건 중 고의 문신 사례가 38건으로 두 번째(23%)였다.

문신(文身, tattoo) 이야기다. 위 네 가지는 문신에 대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사례이고, 아래 세 개는 아직도 문신에 대해 부정적이고 범죄시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말해준다.

문신의 역사는 길다. 서양에서의 문신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소속이나 지위를 나타내거나 장식의 용도로 쓰였다. 또는 재앙이나 질병을 막는 주술적 종교적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에서의 문신은 고대 왕조부터 무서운 형벌이자 죄인에게 새기는 낙인이었다. 묵형(墨刑, 글씨를 먹으로 새김), 자자형(刺字刑 , 글씨를 새겨 흉터를 남김) 같은 것이다.  ‘경을 칠 놈’이라는 어른들의 질책은 사실 매우 무서운 말이다. 몸에 문신을 새기는 경형(黑+京刑)에서 나온 말이다. 죄를 지어 평생 문신을 새긴 채 살아갈 놈이라는 저주의 욕설이다. 현대판 전자발찌 같은 것이다.

문신에 대한 인식은 세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다. 삼청교육대에 잡혀온 어깨들이나 목욕탕에서 마주친 조폭 분위기의 건장한 사내들이 풍기는 불편한 위압감이나 공포감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문신을 드러낸 청춘남녀를 보는 일은 흔해졌다. 지구상 어느 문명국가에서든 형벌과 낙인으로서의 문신도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 문신이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한 첫 중요한 사례는 아마도 2003년 월드컵 1주년 기념 한일전에서 안정환의 골 세리머니일 것이다. 그는 생중계되는 가운데 상의를 벗어 문신을 드러냈다. 오른쪽 어깨에는 십자가, 왼쪽 어깨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담은 'hyewon love forever'라는 레터링이 새겨있었다.

가족의 이름과 사진을 온 몸에 새긴 축구 스타 네이마루, 베컴, 루니. 전신에 호랑이와 용, 불교 기도문을 새긴 안젤리나 졸리. 해달별 같은 자연이나 사랑의 의미를 아로새긴 이효리에 이르기까지 문신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셀렙에서부터 시작돼 일반에 퍼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타투를 한 사람은 어림잡아 100만 명 정도로 본다. 쉽게 지울 수 있는 헤나(식물성 염료)나 문신 스티커, 눈썹 문신 등을 한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외국에선 타투 자체가 오래 전부터 대중문화의 영역이었다. 유명 타투이스트들은 예술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패션쇼와 타투이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있다. 타투 박람회가 열리는 나라도 많다. 

국내의 타투이스트(문신사)는 짧은 기간에 급격히 늘어나 비공식적으로 2만 명으로 추산된다. 유명한 이들도 많아 외국에서 고객이 찾아오기도 하고 해외 타투 박람회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아티스트로 불리길 바란다.
 
문화란 결국 시대의 욕망이다. 시대는 문신의 운명을 바꾸었다. 조폭에겐 섭섭할지 모르지만 문신으로 더 이상 조폭다울 수는 없는 세상이 되었다. 문신은 자신을 드러내는 패션이자 예술적 표현의 영역으로 승격했다. 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육체의 엄숙주의도 전복됐다. 보디 페인팅은 일찌감치 그랬다. 문신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건 문신행위가 표현과 장식을 뛰어넘어 개인의 정신세계와 가치관, 신념을 상징하는 영역으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티셔츠에 레터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가 천운영의 강렬한 데뷔작 ‘바늘’의 주인공은 문신사(타투이스트)다. 소설 속 남자들은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강인함의 표식으로 거미나 전갈 문신을 새기고, 여성은 종속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여성성의 회복을 위해 문신을 한다. 작품 속에서 문신을 하는 이들은 각자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문신을 이렇게 말한다.
“육체와 그 위에 새겨진 글귀 사이에 공존하는 어떤 것. 그것은 아름다운 상처, 혹은 고통스러운 장식이다.”

질풍노도의 청춘들이 문신을 많이 하는 건, 그만큼 내면의 혼란과 불안이 크고 그럴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하고 다짐하고픈 욕구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연인의 이름이나 하트를 새기는 것은 변덕스런 사랑의 속성에 대한 반항일 것이요, 십자가나 경전이나 격언을 새기는 것은 자신을 지탱해줄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의 이름과 얼굴은 마지막까지 불변의 존재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가수 이상민은 최근 한 프로그램에서 문신을 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고 털어놓았다. 정신적 상처를 육체적 고통으로 이겨냈다고 했다. 그는 척추뼈를 따라 등 아래까지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이라고 새겼다. (회오리는 아침내 불지 않고 소나기도 종일 내리지 않는다.)

미국의 9·11 테러 후 현장에서 살아남은 소방관들은 순직 동료들의 이름을 몸에 새기고 다닌다고 한다. 잊고 싶지 않은, 잊혀서는 안 될 기억이나 시간이나 사람들. 그것들을 결코 지워지지 않는 몸의 상처로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각인의 고통을 수반한 그 상처는 몸에 착색돼 휘발되거나 풍화되지 않는다. 타투는 몸을 인화지로 한 사진이다. 혼자만의 사진첩 같은 내밀한 추억이자 회한이자 맹세이자 삶의 나침반이다.

문신이 법적으로 ‘의료 행위’라는 사실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까. 문신은 신체에 바늘을 사용한다는 점 때문에 의료 행위로 규정된다.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타투이스트들이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 신고되면 벌금을 내거나 구류를 산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합법적인 문신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문신을 해주는 병원이나 의료인은 극소수다. 닥터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예술 문신을 하는 닥터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문신 합법화는 우리 사회의 숙제다.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폐기돼 있는 상태다. 의사협회도 감염의 위험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규제 기요틴과 새로운 직업 양성의 일환으로 문신행위를 합법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미용 문신과 예술 문신을 구분하자는 말도 있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문신이 불법으로 규정된 국가다.

나는 오늘도 지하철 안에서 문신남녀를 여러 번 마주쳤다. 상대가 민망하지 않도록 실눈을 뜨고 살짝 보았다. 한 젊은 여성의 목덜미 깃에서 살짝 피어난 한 송이 장미꽃을, 한 청년의 반소매 팔뚝에서 영문 이니셜과 해독 불가의 언어를 봤다. 나름대로 상상했다. 몸은 마음의 동반자다. 타투는 인생이다.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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