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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펼친 불사조와 알스터 호수의 달밤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독일/함부르크(Hamburg)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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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대륙을 형성하는데 여러모로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은 현재 유럽의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함부르크는 이러한 독일의 제2의 도시이자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로 예로부터 ‘세계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런데 함부르크는 바다의 도시가 아닌 강의 도시이다. 즉, 북해에서 110킬로미터 내륙 엘베 강변에 세워진 도시이다. 엘베강은 독일과 체코의 국경을 이루는 북동부의 산맥에 발원하여 구동독지역의 드레스덴과 마그데부르크를 지나 함부르크를 거쳐 북해로 흘러들어가는 1154킬로미터의 긴 강이다.

알스터 아케이드와 함부르크 시청사의 야경.
알스터 아케이드와 함부르크 시청사의 야경.

함부르크에는 운하와 다리가 많다. 이 ‘물의 도시’의 역사는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가 808년과 843년 사이 엘베강과 합류하는 알스터강 하구의 마을 함(Hamm)에 방벽으로 둘러싸인 성을 쌓음으로써 시작되었다. 

함부르크는 중세 한자 동맹시대에 바깥세계와 본격적으로 교역을시작 했고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그 전통은 독일이 통일된 이후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함부르크의 구심점은 알스터 호수와 시청사이다. 알스터 호수는 1190년에 엘베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알스터 강을 막아서 조성한 것인데, 케네디 다리와 롬바르트 다리를 경계로 도시 안쪽에 있는 비넨알스터 바깥 쪽의 아우센알스터로 나뉜다.

비넨알스터 남쪽에 눈길을 끄는 르네상스 양식 복고풍의 시청사는 함부르크에서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몇몇 되지 않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그 앞 작은 호숫가의 우아한 알스터 아케이드와 주변의 많은 고급매장들은 마치 스칸디나비아 도시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함부르크 도심의 ‘허파’ 비넨알스터 호수. 중세에 알스터 강의 흐름을 막아 조성한 것이다.
함부르크 도심의 ‘허파’ 비넨알스터 호수. 중세에 알스터 강의 흐름을 막아 조성한 것이다.

시청사의 높은 탑을 자세히 보면 커다란 시계 바로 아래에 날개를 펼친 불사조의 형상이 있다. ‘죽지 않는 새’ 불사조는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새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불사조는 500년(또는 1461년, 또는 1만 2945년)을 산 후 불 속에 뛰어들었다가 그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물의 도시에서 웬 불 얘기인가?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함부르크에 오랜 역사에 걸맞는 고풍스런 건축물이 별로보이지 않는 이유는 19세기와 20세기에 두 번의 큰 재앙이 이 도시를 휩쓸고 갔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재앙이 닥친 것은 1842년 5월 5일. 시내의 담배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때마침 불어 닥친 광풍을 타고 화마가 목조건축물들이 촘촘히 들어섰던 도심의 1/3을 집어삼켰는데 1290년에 세운 유서 깊은 시청사도 파괴되었다. 그렇지만 함부르크는 잿더미 속에서 곧 다시 일어섰고 1843년에는 알스터 아케이드가 세워졌다. 또 화재 44년 만인 1886년에는 시청사 재건공사가 시작되었다. 

엘베 강 하류에 자리 잡은 함부르크 항구.
엘베 강 하류에 자리 잡은 함부르크 항구.

공사가 시작된 지 2년 후, 함부르크 태생의 음악가 오스카 페트라스(1854-1931)는 <알스터 호수의 달밤>이라는 왈츠를 작곡했는데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도시로 상상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페트라스도 함부르크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당시 함부르크는 부유함과 번영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시청사는 1897년에 완공되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성 니콜라스 교회의 첨탑 밑 부분. 전쟁의 참혹함을 증언한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성 니콜라스 교회의 첨탑 밑 부분. 전쟁의 참혹함을 증언한다.

그런데 첫 번째 재앙 후 100년이 지난 다음 또 엄청난 재앙이 닥쳐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함부르크는 연합군에게는 그야말로 폭격대상 0순위였다.

마침내 1943년 7월 24일부터 연합군의 ‘고모라 작전’이 8일 동안 전개되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의 심판 같은 대대적인 폭격으로 사망자만 4만 2600명이 넘었으며 1200년 역사의 함부르크는 일주일 만에 완전히 파괴되어 ‘독일의 히로시마’로 변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성 니콜라스 교회의 첨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현재 이 첨탑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미래의 세대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상기시키기 위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동서냉전기간 중에는 함부르크는 동쪽과의 교역이 차단되었다. 따라서 교역량과 도시의 영향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다음부터 함부르크는 다시 교역의 중심지로서의 과거의 위상을 되찾았다.

현재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문화도시이자 누구나 부러워 할 정도로 쾌적한 도시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독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래서인지 알스터 호수에 달이 떠오르면 오스카 페트라스의 월츠 <알스터 호수의 달밤>이 어디선가 들려 올 것만 같다.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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