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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 그리고 양궁…과녁과 익숙함의 이유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경기’

2018.03.02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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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올림픽 컬링 여자결승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에서 한국의 리드 김영미가 첫번째 스톤을 딜리버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경애, 김영미, 김선영.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2월 25일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올림픽 컬링 여자결승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에서 한국의 리드 김영미가 첫번째 스톤을 딜리버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경애, 김영미, 김선영.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올림픽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국제 경연은 한 둘이 아니다. 얼마 전 평창에서 막을 내린 겨울 올림픽은 여름 올림픽과 함께 ‘정통’ 올림픽이자, 수많은 국제대회에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빌려 준 올림픽의 종가이다.

진짜 올림픽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 열리는 이런저런 올림픽은 운동경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평창 올림픽과 함께 열린 평창 문화 올림픽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런가 하면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처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문적 우수성을 겨루는 경연도 일종의 올림픽으로 볼 수 있다.

올림픽으로 불리는 적지 않은 국제 대회 가운데 한국이 세계적으로 최강을 자랑하는 올림픽이라면 ‘국제기능올림픽’(WorldSkills)을 빼놓을 수 없다. 2년마다 홀수 해에 열리는데, 지난해 아부다비에서 열린 게 44회째인 유서 깊은 국제 경연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은 지난 2015년과 2017년 대회에서 각각 25개와 24개의 메달을 따며 두 번 모두 세계 2위를 차지했다. 경연 종목은 대략 50개이며, 목공, 미용, 도장, 요리, 배관 등 말 그대로 실생활이나 산업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기능 혹은 기술을 망라한다.

기능올림픽의 경우, 한국은 50개 거의 모든 종목에서 국제적으로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을 자랑한다. 반면 여름 올림픽과 겨울 올림픽은 이른바 효자 종목이 제한돼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여름 올림픽의 경우 양궁이, 또 겨울 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 스케이팅이 강세이다.

최근 폐막된 평창 올림픽에서는 또 다른 효자 종목의 부상도 지켜볼 수 있었다. 컬링(curling)이 바로 그 것으로,  여자팀이 깜짝 은메달을 따내 응원하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컬링은 전통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강세가 두드러진 종목이다.

컬링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것은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에서였다. 대한컬링경기연맹이 창설된 게 1994년이니, 한국에 컬링이 본격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년 남짓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 여자팀의 은메달 선전에 앞서서 이미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는 컬링 강국이었다. 2001년과 2002년 아시아태평양선수권대회에서 각각 여자팀과 남자팀이 우승하고, 2004년에는 국제무대인 세계주니어컬링선수권대회에서 남자 4강 진출을 이뤄냈다. 또 2007년에는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남녀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컬링은 16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영연방 국가들에 주로 보급되었고, 날씨가 추운 북유럽 등지에서 특히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컬링이 한국 전래의 운동 경기가 아니라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단시간에 아시아권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컬링 강호로 발돋움하는 건 필경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컬링의 저변이 그다지 넓지 않다는 점, 다른 스포츠에 비해 시민들에게서 특별히 환대 받는 편도 아니라는 사실 등을 감안하면 컬링의 강세는 분명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컬링은 단시간에 급성장할 수 있을까? 선수들이 열성적이고, 감독 등 코치진이 헌신적이라는 등의 설명은 좀 진부하다.

평창 올림픽의 TV 중계를 통해 컬링을 처음 접해봤을 지라도 이 운동이 왠지 친숙해 보인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컬링은 대중 보급이 미진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상당수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경기’일지도 모른다.

컬링은 ‘하우스’라 불리는 일종의 과녁 속에 ‘스톤’을 집어 넣는 경기이다. 동심원의 컬링 하우스를 보면서 적잖은 한국인들이 양궁의 과녁을 떠올렸다면 비약일까?

과녁은 사실 한국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목표물’이다. 남자들에게는 군대에서 사격의 표적지이었고, 병역 여부에 관계 없이 다수의 시민들이 여름 올림픽 등의 TV 중계에서 양궁의 과녁을 자주 접해보곤 했을 것이다.

사격도 양궁만큼 강세는 아니지만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스포츠 종목이다. 양궁처럼 한두 해도 아니고 십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뛰어난 성적을 보이는 스포츠 종목들은 투자와 훈련의 결실이라는 ‘일반론’만으로만 그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남자양궁 개인전 32강전에서 한국 남자양궁 대표팀의 김우진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남자양궁 개인전 32강전에서 한국 남자양궁 대표팀의 김우진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영국의 BBC 방송 등 세계의 유수 언론들은 올림픽 열리면 한국의 양궁 강세에 대한 분석 기사들을 의례적으로 쏟아 낸다.  이때 흔히 등장하는 문구가 ‘양궁의 국제대회 성적은 한국 국내 대회 성적과 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한국 예선이 곧 국제 대회 본선이라는 것이다.  

양궁에서 한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점을 십분 곰곰이 생각하면, 한국의 컬링 선전이 그다지 이채로울 게 없을 수도 있다. 컬링과 양궁은 과녁만 비슷한 게 아니라, 스포츠로써 서로 공통된 부분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과녁의 중심에 화살을 쏘거나 스톤을 집어 넣어야 하는 경기는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사격도 같은 맥락에서 마찬가지이다. 이와 함께 양궁, 컬링, 사격의 또 다른 공통분모는 하체보다는 상체 의존이 크다는 것이다.

하체 단련은 모든 스포츠에서 기본이다. 양궁, 컬링, 사격도 예외는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나 100m 달리기,  혹은 마라톤 등과 비교하면 컬링, 양궁, 사격은 윗몸 부위 놀림이 한결 중요하다. 손가락에서부터 팔목 팔뚝 어깨에 이르는 부위가 정교하게 작동해야 한다.

한국인들이 스포츠 중에서 상체 놀림의 비중이 큰 종목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것과 기능 올림픽에서 선전은 그저 우연일까? 요리, 배관, 미용 등 기능 올림픽 종목들은 손을 비롯한 상체 사용이 절대적으로 많은 특징이 있다.

한국인들은 어쩌면 상체 놀림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역사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고서에서 동쪽 사람들을 일컬어 ‘동이’라 한 것은, 활을 잘 다루는 사람 동쪽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떤 무리 혹은 민족이 활을 잘 쏘았다면, 아마도 그래야 생계를 유지하고 영토를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농경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농경이라는 게 보다 정교한 기술, 특히 상체 의존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노동을 수반한다. 기능올림픽의 선전이 젓가락을 잘 다루는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 역시 그저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양궁에서 강세나 사격의 선전, 또 최근 컬링의 성적 향상은 그저 우연이라거나 넉넉한 예산지원과 국민적 응원의 결과라는 식으로 풀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종목 외에 여자 골프 선수들이 국제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골프채로 공을 쏘아 그린에 올리고, 과녁과 다를 바 없는 홀컵에 공을 떨어뜨리는 게 양궁이나 컬링과 너무 닮았지 않은가?

섬세하며 동시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상체 중심의 스포츠에서 한국인이 강점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천부적인 특성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배타적 우월적 차원에서 한국인의 강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종마다 민족마다 혹은 개개인마다 저마다의 특성 혹은 장점이 있게 마련인데, 한국인들 또한 그 나름의 강점 혹은 특징이 있다는 얘기이다.

컬링, 양궁, 골프, 그리고 기능올림픽에서의 강세는 한국 문화가 섬세하고 상당한 집중력의 소산일 수 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손가락부터 팔 어깨에 이르기까지 유달리 상체 놀림이 많은 일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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