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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힙합의 멋과 특성을 제대로 재현하다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⑦] 지누션의 ‘가솔린’

2018.12.28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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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으로 돌아가 보자. 응답하라 1997~!

힙합 듀오 지누션(JINUSEAN)의 데뷔가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듀스’의 이현도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힘을 합쳐 제작한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현도는 듀스 해체, 김성재의 죽음을 거쳐 솔로 데뷔앨범을 발매한 후였다.

한편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제작자로서 킵식스를 데뷔시켰으나 큰 실패를 겪은 후였다. 둘은 각자의 상황 속에서 뜻을 모아 지누션을 데뷔시켰다. 그리고 지누션은 성공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YG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뒀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YG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뒀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누션의 성공에 관해 말하려면 ‘가솔린’보다는 ‘말해줘’가 더 적절할지 모른다. ‘가솔린’이 흥행에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해줘’는 ‘가솔린’과는 차원이 다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요 프로그램에서 몇 번이나 1위를 했는지 여부가 아닌, 지누션이 한국힙합 역사에 어떤 존재감을 남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말해줘’보다는 ‘가솔린’ 쪽이 조금 더 적절하다.

일단 ‘사운드’에 관해 말해보자. 사운드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힙합 사운드 역시 지난 수 십 년간 계속 변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순수한 의미의 힙합 사운드도 분명 존재한다. 다른 장르와 섞이지 않은, 혹은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고유성만을 간직한 힙합 사운드 말이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가볍기보다는 무겁고, 밝기보다는 어둡고, 매끈하기보다는 거칠고, 멜로디보다는 리듬 위주이고, 노래보다는 랩으로 가득하고 등을 들 수 있겠다. 때로는 이러한 특성을 가리켜 ‘Golden Era(황금기)’의 힙합 사운드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솔린’은 이러한 사운드를 품고 있었다.

‘가솔린’은 당시 주류 가요계에서 어떻게 최전선에 존재할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타협 없는’ 힙합 사운드에 가까웠다. 마치 당시의 미국힙합 사운드를 그대로 이식한 것 같았다.

지누션(JINUSEAN)이 지난해 11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누션(JINUSEAN)이 지난해 11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과 H.O.T의 ‘전사의 후예’도 이러한 사운드를 품고 있기는 했다. 사운드만 보자면 이 두 노래가 ‘가솔린’보다 앞서서 타협 없는 힙합 사운드를 한국대중음악계에 선보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사’도 포함시켜 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Come Back Home’과 ‘전사의 후예’는 각각 청소년 가출 문제와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노래였다. 그리고 이 주제들은 한국인에게 생경하거나 이질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사자인지 여부와 별개로) 어떤 한국인이라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제였다. 즉 이 두 노래의 가사는 익숙함과 일상성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솔린’의 가사는 달랐다. ‘가솔린’에서 지누션이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감옥에 있는 친구’였다. 감옥에 간 친구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 다시 말해 ‘수감된 자에 관한 서사’는 힙합 안에서 매우 중요하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 힙합 안에서 그렇다. 힙합은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에 사는 미국 흑인으로부터 탄생했다고 보는 편이 정설이다. 주류 백인 동네와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그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뒷골목 생활을 하며 감옥에 드나들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유명한 래퍼들은 마약상 출신이거나 수감 경력이 한두 번 정도는 있는 경우가 많다. 제이지(Jay-Z) 역시 뉴욕의 마약상 출신이다. 즉, 미국의 흑인 래퍼들에게는 본인이 수감 경력이 있거나, 적어도 감옥에 갇힌 친구 한 두 명 쯤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2017년 뉴욕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앨범 <4:44> 투어 공연을 하고 있는 Jay-Z.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Invision/AP,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년 뉴욕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앨범 <4:44> 투어 공연을 하고 있는 Jay-Z.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Invision/AP,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게다가 힙합은 ‘자기 고백’을 기본으로 하는 음악이기에 래퍼들은 노래를 통해 자신의 삶과 주변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뱉어냈다. 자연스레 감옥과 수감된 자에 대한 서사는 미국힙합의 (전부는 아니지만) 주요한 특성 중 하나가 됐다.

나스(Nas)의 ‘One Love’는 그 좋은 예다. ‘가솔린'을 가리켜 한국판 ‘One Love’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이쯤에서 ‘가솔린’의 뮤직비디오를 다시 떠올려보자. 감옥에 갇힌 친구를 연기한 이현도가 입고 있는 죄수복은 주황색이다. 놀랍게도 지누션은 한국의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 미국 감옥에 갇힌 친구에 관한 랩을 내뱉고 있던 것이다.

당시 지누션은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 종종 ‘가솔린’을 불렀다. 미국힙합이라고 믿어도 될 법한 비트, 미국 래퍼를 그대로 빼다 박은 패션, 그리고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는) 미국힙합의 단골 주제인 수감된 자에 관한 서사를 가진 노래가 가요 프로그램 1위 후보에 올랐던 광경이라니.

지금 되돌아보면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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