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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김한석 기자의 스포츠 공감]코리아 메이저리거 4인 데뷔 시즌 교훈

2016.10.10 김한석 스포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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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가을야구를 여는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선 좌익수 김현수가 경험한 위험천만한 순간.

7회 수비에서 뜬공 타구를 쫓을 때 관중석에서 날아든 맥주 캔이 그의 옆을 비껴 떨어졌다. 김현수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중견수 애덤 존스가 달려와 스탠드를 향해 삿대질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뭉클했다.

마치 자기 일처럼 달려와 영어를 잘 못하는 김현수 대신 싸워주는 존스의 동료애를 보면서.

경기 뒤 인터뷰에서 존스는 “캔이 김현수의 머리에 맞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김현수를 향한 인종차별적인 욕설도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수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처음 경험했다”는 그 가슴 철렁한 순간, 벅 쇼월터 감독까지 뛰쳐나와 ‘투척 폭거’에 강력히 항의했다.

용의자는 재판에 넘겨졌고 이른바 ‘김현수 맥주캔 사건’으로 이슈화돼 MLB의 관중문화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짜릿했다.

6일 전 같은 장소. 지면 시즌이 끝나버리는 절체절명의 9회초, 김현수는 대타로 잡은 천금의 기회에서 역전 결승 투런홈런을 쏘아 올리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볼티모어 언론 MASN이 “김현수의 홈런이 볼티모어의 1년을 구했다”며 '아름다운 김현수'라는 타이틀까지 달아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삐뚤어진 토론토 홈 관중이 몽니를 부린 것이다.

비록 연장 패배로 코리안 메이저리거 6번째로 포스트시즌을 맞았던 김현수의 첫 가을야구는 짧게 끝났지만 역경을 딛고 싹틔운 믿음을 뜨거운 동료애로 확인받은 무대였기에 소중했다.

 

시즌초 덕아웃 한켠에서 숨죽여있던 김현수는 보란듯이 냉대와 야유를 이겨내고 내년시즌 볼티모어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가 됐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시즌초 덕아웃 한켠에서 숨죽여있던 김현수는 보란듯이 냉대와 야유를 이겨내고 내년시즌 볼티모어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가 됐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볼티모어 김현수-이제야 한국의 타격머신을 알아봤다

시즌 개막 때만해도 ‘미운오리새끼’, 로스터 끄트머리 25번째 선수로 냉대를 받았던 김현수가 마지막에는 ‘백조’로 환대받는 반전 드라마.

역대로 가장 많은 8명이 북미프로야구에 도전한 2016시즌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약을 이룬 코리안 빅리거가 아닐까.

한국 프로야구가 수출한 메이저리거로서 KBO리그 선수도 MLB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욱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단순히 뛰어난 실력으로 성공가도를 쭉쭉 달린 것이 아니라 냉대 속에도 시련을 뚫고 일어서는 극복의 힘을 보여줬고 더 큰 도약에 대한 믿음도 탄탄해졌기 때문이다.

위기를 기회로 살려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낸 힘이다.

KBO리그의 대표적인 3할 타자 김현수가 MLB 시범경기부터 고난을 맞으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타율 1할대, 극도의 부진에 빠졌다. 단장과 감독은 마이너리그행을 권유했다. 위기설은 한국 유턴설로까지 확산됐다.

하지만 김현수는 계약조건에 포함된 마이너리그 거부권으로 버텼다. 그러자 홈 개막전에서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4~5일 충전하는 선발투수들보다 더 쉬는 날이 많았다.

대타 기회도 가물에 콩 나듯 돌아왔으니 배팅 감각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뒤늦은 데뷔전에서 멀티히트를 치고 난 뒤 김현수는 볼티모어선과 인터뷰에서 “더는 야유 받지 않도록 하자고 마음에 새겼다”고 전의를 가다듬었다.

정면돌파.

육성선수 신분으로 국내 프로무대에 뛰어들어 데뷔시즌 1타수 1안타에 그친 뒤 혹독한 훈련으로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볼넷이 삼진보다 많은 ‘출루의 아이콘’으로 강점을 만들었던 그다웠다.

쉬는 날도 없이 피칭머신과 외로운 싸움으로 시속 150km 이상 빠른 공에 대한 공략 해법을 찾아나갔다.

우투좌타로 왼손 투수가 나오면 벤치를 지켜야 하는 플래툰 시스템의 제한적인 기회 속에 내야안타들로 감각을 키우더니 외야를 뚫고 담장까지 넘겼다.

상대의 극단적인 수비시프트를 허무는 교타자의 부챗살 타법도 감을 찾았다.

감독과 단장이 의구심을 거둬들이는 데는 두 달이 걸렸다.

타격기계의 면모를 되찾자 USA투데이는 “경기에 나설수록 선구안과 배트 스피드로 적응력을 발휘해 볼티모어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 이유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ESPN은 기회를 살려내려는 절실한 의지에 주목했다. "거침없는 스윙이 일색인 볼티모어 타선에서 김현수가 보여주는 인내심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격동의 루키 시즌에 그런 인내심으로 의문부호를 끝내 느낌표로 바꿔낸 김현수. 추신수도 최희섭도 데뷔 시즌에 달성하지 못한 3할 타자로 우뚝 섰다.

이젠 더그아웃에서 눈치 보면서 음료수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타율과 출루율에서 팀 내 1위. 볼티모어가 그토록 원하던 ‘출루율 높은 타자’로서 약속을 지켜냈기에 당당해도 되지 않을까.

볼티모어선으로부터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계속 증명해나갔다”는 결산평가와 함께 리그 홈런왕 마크 트럼보와 동급인 ‘A학점’을 받았으니 말이다.

KBO리그 출신 코리안 메이저리거 4인의 데뷔 시즌은 그렇게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얻은 교훈은 값지다. 국내에서 내일의 빅리거를 꿈꾸는 선수들도 새겨봐야 할 소중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류현진 강정호의 성공을 보면서 빅리그에 과감히 도전했지만 자신감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체득한 시즌이 아니었을까.

시차와도 싸워가며 팀당 162경기 강행군 레이스를 치르는 MLB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으리라.

넥센 히어로즈 출신 박병호(미네스타) 시즌초 강속구 대응력에 대한 과제를 안았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박병호(미네스타) 시즌초 대형홈런을 때려내며 자리잡는 듯 했으나 완주하지 못한채 강속구 대응력에 대한 과제를 안았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안타까웠다.

KBO리그 4연속 홈런왕 박병호. MLB 진출 이전부터 틈틈이 영어공부도 하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비거리가 화제가 될 만큼 홈런 12개를 펑펑 쏘아 올리며 최약체 미네소타의 희망봉으로 성가를 높이는 듯 했지만 5월부터 강속구 대응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극심한 슬럼프를 겪더니 마이너리그행.

8월엔 오른손가락 수술까지 받고서는 첫 시즌을 완주하지 못했다.

아쉬웠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홈런으로 평정했던 이대호의 무한도전도 비슷했다.

이대호(시애틀)는 ‘백업으로 무난한 성적’이라는 평가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며 내년시즌에는 그 이름값을 해내리라 기대된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대호(시애틀)는 ‘백업으로 무난한 성적’이라는 평가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며 내년시즌에는 그 이름값을 해내리라 기대된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시애틀과 마이너리그 1년 계약 후 스프링 캠프에 초청선수로 참가해 MLB 로스터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성과였다.

 ‘느리고 수비가 안 된다‘는 편견부터 날렸다. 결정적인 홈런들로 영문 이니셜을 딴 별명 ‘DHL'까지 얻은 그였지만 지독한 플래툰 시스템으로 기회가 줄어들어 14홈런밖에 배달하지 못했다.

손바닥 부상과 타격 슬럼프로 마이너리그에 다녀오면서도 얻은 ’백업요원으로는 무난한 성적’이라는 현지의 평가는 그에게는 좀처럼 성이 차지 않을 듯하다.

이들 루키 거포는 부상을 혼자 이겨내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좀 더 기회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커리어 통산 10차례 부상 중 올해만 4번씩이나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추신수나 지난해 어깨 수술에 이어 올해는 팔꿈치 수술로 힘겨운 복귀를 기약해야 하는 류현진 만큼은 아니더라도 생존경쟁에 던져진 코리안 루키들에게 찾아든 부상 악령은 마이너리그행 만큼이나 충격이 컸다.

부상을 참고 이겨내는 것이 투혼으로 미화되는 국내 풍토에서 성장해왔던 한국 선수들로서는 ‘생존 조급증’에 감춘 ‘통증 인내심’의 결과가 얼마나 큰 지도 확인할 수 있었으리라. 건강해야 버틴다는 것도.

정작 인내해서 잡아야할 것은 기회다. 기다리면서 준비해야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야유를 환호로 바꾼 김현수 말고도 불펜에서 시작해 뒷문을 책임진 오승환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시즌 전 기대치가 낮았던 탓에 중간계투 역할이 주어졌지만 묵묵히 믿음을 쌓으며 서서히 다가온 마무리의 기회를 잡아 한국과 일본에 이어 미국에서도 ‘끝판대장’의 위용을 빛냈다.

세인트루이스 간판 마무리투수 트레버 로젠탈이 극심한 부진에 빠지자 셋업맨에서 클로저로 보직을 바꿔 19세이브를 수확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끝판대장은 시즌중 보직변경에도 19세이브 위력을 뽐냈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국과 일본에서 끝판대장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은 시즌중 보직변경에도 19세이브 위력을 뽐냈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팀에서 가장 많은 76경기에 등판해 이닝 당 채 한명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으니 존 모젤리악 단장이 "자신의 위치를 찾을 지 예상하기 힘들었지만 오승환은 확실히 기회를 잡아냈고 우리 팀을 구했다"고 찬사를 보낼 만했다.

트렌드를 잘 읽고 인내했던 오승환의 승리.

파이어볼러들이 넘쳐나는 MLB에서 출중한 기량의 불펜투수들을 이닝별로 끊어서 기용하는 추세다.

그래서 오승환은 중간계투로서 대세를 따랐고 언젠가는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꾸준히 ‘믿음투’를 뿌렸던 것이다.

새로 붙여진 별명 ‘오케이(Oh-K)’처럼 그렇게 데뷔 시즌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했으니 ‘돌부처’ 얼굴에 미소가 번질 만했다.

이제 KBO리그에서 직수출된 김현수 박병호는 내년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데뷔 시즌 막판 불의의 무릎 부상으로 뒤늦게 복귀했으면서도 아시아 내야수 최다 21홈런을 기록한 2년차 강정호가 피츠버그 핵심타선에 자리를 굳힌 것처럼.

2016년 MLB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92.3마일, 즉 148.5km로 ‘속구의 시대’다.

점점 공이 빨라지는 트렌드와 달리 까다로운 변화구에 잘 적응해 질 높은 타구로 경쟁력을 보여주려고 했던 김현수가 시범경기부터 속구에 나가떨어지면서 낭패를 봤지만 뒤늦게 절실한 노력으로 기회를 살려내 연착륙했다.

하지만 플래툰 시스템에 따라 적게 상대한 왼손 투수에게 18타수 무안타로 물러나야 했다. 점점 늘어나는 좌완 파이어볼러를 상대로 내년엔 집중적으로 대응해 플래툰 대상자의 꼬리표를 떼야 풀타임 빅리거로 롱런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올해처럼 높은 야구지능과 인내심으로 기회 공략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박병호는 귀국 인터뷰에서 “많이 부족했다. 확실히 투수들이 강했다”고 현실을 인정했기에 기대가 크다. 생각의 변화를 오롯이 가슴에 새겼기 때문이다. “생각을 많이 바꿔야 할 것 같다. 내가 가진 타격 폼을 간결하게 수정해야 한다. 그래야 힘 있는 투수들을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소포모어 징크스’란 말도 있듯이 2년차 시즌인 내년에는 환경이 더욱 달라진다. 상대의 수비 시프트는 새롭고 정교하게 바뀐다.

내년 시즌에는 아예 클로저로 스타트할 것이 유력시되는 오승환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통했던 위력투와 승부구의 구질도 세이버메트릭스에 의해 더욱 정밀하게 분석된다.

트렌드를 정확히 짚어내 빠르게 생각의 변화를 꾀하는 게 기회를 찾는 길이다.

위기를 맞아도 스스로 빠르게 변신하려는 노력으로 기회를 살려내는 것이 자신의 성공뿐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의 경쟁력을 증명하는 길이다.

강한 자가 기회를 살리는 게 아니라, 기회를 살려내는 자가 강한 것이다.

이러한 집념의 2년차 도전이라면 KBO리그 출신 메이저리거들이 내년에는 더욱 상쾌한 대한민국의 아침을 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김한석

◆ 김한석 스포츠기자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체육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Q 창간멤버로 스포츠저널 데스크를 맡고 있다. 전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이었으며 FIFA-발롱도르 ‘올해의 선수’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제21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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