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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Leaders are Readers, 대통령과 독서

2018.08.07 한기봉 언론중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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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통령의 책은 약발이 먹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에도 휴가에서 읽은 책 목록을 공개했다. 세 권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구한말 민중의 삶을 그린 김성동 작가의 대하소설 ‘국수’, 평양을 여섯 차례 방문한 언론인 진천규의 취재기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서점가에는 곧바로 반응이 왔다. 세 권의 판매량이 순식간에 평균 3~4배가 넘어버렸다.

독서삼매경에 빠진 문 대통령의 사진을 유심히 본다. 슬리퍼에 셔츠 차림으로 푹신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두 손으로 책을 잡은 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소설 ‘국수’에 몰입해 있다. ‘안광이 지배를 철한다(眼光紙背撤)’는 표현이 생각난다. 책 읽는 대통령의 사진은 언제 봐도 좋다. 꼭 휴가지에서가 아니어도 청와대는 대통령이 편안하게 독서하는 모습을 자주 공개하면 좋겠다. 대통령이 문득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는 일이 있다면 더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김성동의 대하소설 ‘국수’에 빠져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김성동의 대하소설 ‘국수’에 빠져있다.

작년에는 ‘명견만리’였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미래의 이슈에 대해 KBS TV에서 강의한 내용을 엮은 이 책(3권)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휴가 때는 아니어도 지난 1월 문 대통령이 감동을 받아 작가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는 ‘이상한 정상 가족’(김희경)은 직후 판매량이 20배 가까이 늘었다. ‘책 읽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이른바 ‘문프(문재인 프레지던트)셀러’의 파워다.

미국 백악관도 해마다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을 발표하는 전통이 있다. 1961년 라이프지는 잠들기 전에 꼭 책을 읽는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애독서 10권을 소개했다. 이언 플레밍의 ‘007시리즈’는 이 덕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대통령의 여름 휴가 가방에 들어가는 책을 공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0년 여름 휴가 때 읽고 극찬했다는 조너선 프랜즌의 소설 ‘자유’(2011년 국내 발간)는 100만 부 넘게 팔리는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사실 대통령의 독서는 고도의 정치행위라고들 해석한다. 대통령이 읽는 책은 통치권자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국민에게 간접적으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책 선별에 어떤 의도가 있든 없든 간에 국정운영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로 읽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책을 읽는 대통령의 모습은 당신도 그러하겠지만 갈등의 정치판에, 삶이 고단한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참에 궁금해서 역대 대통령의 독서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다. 리더십 전문가 최진은 2010년에 쓴 책 ‘대통령의 독서법’에서 대통령들의 독서 습관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감성적인 우뇌형 독서 스타일이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성적인 좌뇌형 독서에 위인전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화끈한 공격적 독서를 했다 하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조용한 심리독서, 풍류 속 독서를 즐겼다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발췌식 독서 습관에 책 대신 남의 머리를 빌리기 좋아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없다. 그는 엄청난 독서광이었다. 감옥에서는 이희호 여사에게 책 차입을 부탁해 하루에 10시간을 읽었고 망명 시절, 자택연금 중일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일종의 학력 콤플렉스까지 겹쳐 ‘무섭게’ 모든 분야의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다독과 정독을 합한 스타일에, 반복해 읽고, 읽고 나서는 사색하고, 밑줄 긋고 메모하는 독서 습관을 가졌다. 3만여 권의 책을 보유했던 그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독서 목록을 처음 공개한 건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다. ‘지식자본주의혁명’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맹자’ ‘미래와의 대화’ ‘비전 2010 한국경제’ 같은 책 목록이 공개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책 선택에 자유분방하면서도 책에 매달려 읽기보다는 단시간에 많은 책을 섭렵하는 다독파였다고 한다. 현안이 생기면 관련 서적부터 찾아서 상상력을 얻었다고 한다. 공개된 휴가도서 목록은 ‘대한민국 개조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주5일 트렌드’ 등이다.

김대중이 독서광이었지만 대통령의 독서정치 원조는 노무현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책은 국정철학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공직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책을 활용했다. 재임 중 공식석상에서 50여 권의 책을 추천했으며 몇몇 저자는 청와대 비서관 등 요직에 중용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를 쓴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을 펴낸 이주흠 전 리더십비서관 등이다. 그는 유서에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으니 그의 삶에서 독서가 지닌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답게 실용적 독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그 상황에 필요한 책만 집중적으로 읽어 전문성을 키웠다. 속독파이며 새벽 독서를 했다. 전자책을 즐겨 읽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넛지’ ‘로마인 이야기’ ‘퍼스트 무버’ 등을 휴가 중에 탐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서는 가장 알려지지 않았다. 독서 목록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탄핵심판을 기다리며 ‘관저 유폐’ 중일 때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을 읽고 있다고 청와대가 발표한 게 거의 전부다. 2015년 휴가 당시 한국 대학에서 강의하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한국인의 우수성을 찬양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읽고 국무위원들에게 일독을 권한 적이 있다. 그는 독서보다 TV 시청을 즐겼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서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취임 100일을 맞아 국민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추천받아 580권으로 대통령의 서재를 꾸몄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책의 해’인데 지난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에 즈음해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독서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되었고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짬을 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부쩍 커진 내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정신이 강한 나라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고, 그 정신은 선대의 지혜와 책을 통해 강해진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다는 회고에서 볼 수 있듯 문 대통령은 인문적 감수성이 깊은 편이다. 이번 휴가 중에 외국 책이 아니라 국내 문학 서적 중심으로 읽은 것을 두고 출판계는 환영했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문재인의 운명(2017)’, ‘대한민국이 묻는다(2017)’, ‘운명에서 희망으로(2017년)’, ‘1219 끝이 시작이다(2013)’, ‘사람이 먼저다(2012)’, ‘문재인이 드립니다(2012)’ 등을 냈는데 ‘문재인의 운명’ 은 한때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현직 대통령이 쓴 책으로는 처음이다.

“Leaders are readers”라는 말은 한국전쟁 때 미군 파병을 결정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그는 고졸이었지만 엄청난 독서를 통해 인문적 교양을 쌓았다. 전체 문장은 “Not all readers are leaders, but all leaders are readers”다. 독서를 즐긴다고 모두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지도자들은 일반인보다는 독서광이 많다는 건 확실하다.

미국에서는 지난 밸런타인데이 때 ‘백악관을 책으로 묻어버리자(Bury the White House in books on Valentine’s day)’라는 캠페인이 있었다. 이 캠페인을 주도한 민간 단체의 이름은 바로 ‘Readers are Leaders’다. 백악관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을 보내자는 운동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TV시청에 몰두하고 독서를 등한시한다는 말이 많다. 책을 안 읽는 대통령을 조롱한 것이다.

미국의 독서 대통령 중에는 트럼프의 전임인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퇴임을 일주일 앞두고 가진 마지막 인터뷰는 자신의 정치 치적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서평 담당기자 미치코 가쿠타니와 독서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그는 재임 동안 자신의 판단에 균형감을 준 책은 역사나 정치 서적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고전이었다고 술회했다. 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악관 8년을 버틴 비결은 독서에 있었다.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무거운 책임감과 외로움을 독서로 이겨냈다. 매일 잠들기 전 한 시간씩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은 음악, TV, 영화와 다르게 나 자신을 안정시켜주는 특별한 힘을 준다.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게 8년간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 특히 소설은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퇴임 후 소망은 자명종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실컷 자는 것과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끔 도와주는 일이다.” 

미국 대통령 중 책을 가장 사랑했던 링컨 대통령이 막내 아들 토머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1864년 사진으로 미국의 독서 캠페인 홍보사진으로 쓰였다.
미국 대통령 중 책을 가장 사랑했던 링컨 대통령이 막내 아들 토머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1864년 사진으로 미국의 독서 캠페인 홍보사진으로 쓰였다.

링컨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가난한 아버지는 책을 사줄 형편이 못 됐다. 링컨은 책을 빌리기 위해 몇 십리를 걸었다. 사방 800리 안에 있는 책은 모조리 읽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링컨 대통령이 의자에 앉아 막내아들 토머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는 유명한 흑백사진은 미국의 독서 캠페인 홍보 사진으로 자주 사용됐다. 

오프라 윈프리는 아홉 살 때 성폭행을 당했고, 14세 때 미혼모가 됐고, 20대엔 마약에 빠졌지만 미국 최고의 여성 중 한 명이 됐다. 그녀가 어둠과 고통에서 빠져나온 유일한 문은 독서였다. 일주일에 꼭 책 한 권씩을 읽었고 도서관 카드를 가장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 마을의 공립도서관이 오늘날 자신을 있게 했고,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가 더 중요했다고 여러 번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스시와 책이라고 했다. 억만장자 워렌 버핏은 주식시장에 발을 들였을 때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1을 독서에 투자했고 지금도 하루에 500페이지를 읽는다.

황제는 독서로 준비돼 있었다. 코르시카 출신의 키 작은 촌뜨기 나폴레옹은 사관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책만 읽었다. 전쟁터에 갈 때는 전용 책마차에 책을 싣고 다녔다. 포탄이 날아드는 전장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세인트 헬레나 섬 유배지에서는 8천 권의 책이 발견됐다. 문제아 에디슨은 공부를 못 해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디트로이트 도서관의 책을 다 읽었다. 처칠은 70년 간 잠자기 전 30분을 독서했다.

두보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고 했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평생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남자만이 출사(出仕)했으니 이해가 된다. 이 시의 앞 구절은 ‘부귀필종근고득(富貴必從勤苦得)’이다. 부귀는 반드시 근면한 데서 어렵게 얻어진다는 뜻이다. 두 문장을 이어 풀이하면 “부귀를 바란다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근면하게 책을 읽어라”가 될 것이다. 결국은 ‘책’이다.

한기봉

◆ 한기봉 언론중재위원/칼럼니스트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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