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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아이들 곁에서 온다

[김준의 섬섬옥수] 인천광역시 강화 볼음도

2018.10.12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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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살금살금 가세요. 숭어가 눈치가 아주 빨라요. 거기 멈추시고, 제가 그물을 펼치면 마구 소리치면 달려오세요.

민박집 주인과 청년이 살금살금 바다 속으로 들어가 그물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물이 반원 모양이 되자 손짓을 했다. 손짓에 따라 10여 명이 소리를 지르며 그물을 향해 뛰어갔다.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숭어가 있을 것 같지 않던 물속에서 숭어가 튀어 올랐다.

어른이고 아이고 소리를 지르며 웃고 난리가 났다. 대여섯 마리는 그물을 넘어갔다. 그래도 그물에 걸린 숭어가 가숭어와 숭어가 섞여 네 마리나 된다. 이정도면 충분하다. 정신없을 땐 보지 못했는데 그물 뒤로 북한 어선인지 경비정인지 아른거렸다.

평화는 먹고 사는 거다

처음 볼음도 가던 날, 군인들이 배 앞에서 표를 걷는 것을 보고 약간 긴장을 했었다. 이젠 사정이 다르다. 배표 외에 ‘민통선 통제초소’ 출입한다는 ‘승선신고서’를 쓰는 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평화로움이 주는 여유로움이랄까.

오래전 연평도에서 만난 주민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가장 살기 좋았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이란다. 어업 비중이 큰 연평도 사람들에게 남북관계는 곧 먹고 사는 문제였다. 그들이 평화를 원하는 건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볼음도 은행나무 아래서 큰 잔치가 펼쳐졌다. 북쪽 은행나무와 남쪽 은행나무의 재회와 남북평화를 기원하는 민속행사다.
볼음도 은행나무 아래서 큰 잔치가 펼쳐졌다. 북쪽 은행나무와 남쪽 은행나무의 재회와 남북평화를 기원하는 민속행사다.

이번 볼음도 여행은 오롯이 은행나무 때문이다. 볼음도 은행나무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원래 황해남도 연안군 호남리 은행나무와 부부나무였다. 800년 전 홍수로 뿌리째 뽑혀 아내 나무를 남겨둔 채 남쪽 볼음도로 떠내려 왔다.

볼음도 어민들이 이를 발견하고 심어주었다. 그리고 정월 그믐날 두 마을에서는 날짜를 맞춰 제를 지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문화재청은 섬연구소의 제안을 받아 남북평화를 기원하며 ‘은행나무 자연유산 민속행사’를 개최했다. 볼음도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연안 은행나무도 천연기념물이다.

은행나무가 좋아하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모처럼 섬 주민들이 최고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언제 우리나라 최고의 예인들이 하는 공연을, 그것도 섬에서 볼 수 있겠는가. 종교적인 이유로 은행나무에 제를 지내는 것을 반대했던 사람들도 정작 공연이 시작되자 ‘잘한다’ 라며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볼음쌀, 우리 소리를 듣다

피리소리를 뒤로 하고 안골마을 나와 당아래마을로 향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바람에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도 정겹다. 밥맛 좋은 쌀로 ‘강화쌀’이 으뜸으로 알았는데, 더 맛이 좋은 쌀이 ‘교동쌀’이란다. 그런데 교동쌀보다 더 귀한 쌀이 있다. 볼음도 쌀 ‘볼음쌀’이다. 재배면적도 넓지 않으니 일찍 주문하지 않으면 맛보기도 어렵다.

작은 섬에서 고집스럽게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섬을 지키는 사람들이 볼음도 농부들이다. 볼음도는 고기잡이보다 쌀농사다. 올 여름 무던히도 더웠다. 여름가뭄으로 힘든 게 어디 사람뿐이랴. 큰 저수지 없이 웅덩이에 고인 물과 지하수에 의지해야 하는 섬벼들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그래도 큰 은행나무 잘 둔 덕에 오랜만에 호강을 했다. 얼마 만에 듣는 우리소리이고, 우리 춤인가. 어찌 섬 주민들만 덩실덩실 춤을 추었을까. 무논에 벼들도 들썩들썩, 익어가는 나락이 겅중겅중 했으리라. 올해 볼음쌀은 특별히 더 맛있을 것 같다.

볼음도를 지키는 사람들은 친환경을 너머선 방법으로 쌀농사를 짓는다. 강화도 쌀보다 교동쌀보다 볼음도 쌀을 으뜸으로 치는 사람들이 있다. 섬에서 오롯이 땅을 살리며 섬을 살리며 농사를 짓는 섬살이를 알기에.
볼음도를 지키는 사람들은 친환경을 넘어선 방법으로 쌀농사를 짓는다. 강화도나 교동쌀보다 볼음도 쌀을 으뜸으로 치는 사람들이 있다. 섬에서 오롯이 땅을 살리며 섬을 살리며 농사를 짓는 섬살이를 알기에.

최근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이곳 초등학교가 문을 닫을 계획이란다. 1976년 개교한 볼음분교는 2015년부터 휴교에 들어갔다. 섬에서 학교는 그냥 학교가 아니다. 그래서 학교를 세울 때 섬 주민들이 땅을 내놓고 직접 일을 해서 건물을 세운 곳도 많다.

볼음도에는 비록 분교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섬을 떠나고 노인들만 남게 되면서 휴교상태다. 폐교를 하지 않고 휴교를 유지한 것도 섬에서 학교가 사라지면 생기를 잃게 된다는 것을 주민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의 완도나 신안의 섬의 경우 취학아동이 없어 폐교를 했다가 후회를 하는 곳도 있다. 젊은 사람이 들어와 양식을 하거나 섬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가족과 함께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교육문제 때문이다. 일부러 학교라도 만들어야 할 판에 있는 학교를 지키는 것은 섬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볼음도에 백합갯벌이 있다

볼음도는 백합이 서식하기 좋은 갯벌을 가지고 있다. 너른 갯벌에 내려선 아이들으 파도소리 바람소리에 맞춰 저절로 손이 올라가고 어깨가 들썩인다. 춤사위가 멋스럽다.
볼음도는 백합이 서식하기 좋은 갯벌을 가지고 있다. 너른 갯벌에 내려선 아이들은 파도소리 바람소리에 맞춰 저절로 손이 올라가고 어깨가 들썩인다. 춤사위가 멋스럽다.

볼음도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은행나무 때문이 아니다. 바로 갯벌 때문이었다. 그냥 갯벌이 아니라 백합이 서식하는 갯벌이다. 우리나라에서 백합을 캘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백합은 가는 모래가 많은 갯벌에서 자란다. 오염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최고 최대 백합 서식지는 부안, 김제, 군산 연안을 아우르는 바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이 만들어 내는 갯벌이었다. 그 갯벌은 세계 최대의 개발사업이자 최대의 방조제라 자랑하는 새만금사업으로 사라졌다. 그 덕분에 인천 옹진지역 장봉도, 볼음도, 주문도 갯벌의 백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충남 서천 유부도 갯벌에도 좋은 백합이 자라며, 고창 곰소만갯벌과 영광 백수갯벌과 신안 증도갯벌에도 약간의 백합이 자란다. 이들 갯벌의 공통점은 모래가 많은 갯벌이라는 점과 깨끗하다는 점이다. 다양한 저서생물은 물론이고 어패류가 서식하니 어민들만 아니라 물새들도 많이 찾는다.

백합이 자라는 갯벌이 사라지자 계화도 한 어머니는 볼음도로 이사가고 싶다고 했다. 백합이 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평생 갯벌에서 백합만 캐며 살았던 어머니인데, 그 갯벌이 사라졌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백합도 먹을 만큼 캤다. 오늘 저녁은 백합탕이다. 이쯤에서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알려드리려 한다. 볼음도 백합 캐는 체험은 마을어촌계에 신청을 해야 하며, 많지는 않지만 체험비를 내야 한다. 특별한 절차는 없다. 숙박하는 민박집 주인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서 체험을 한다고 마구 들어가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신이 났다.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런 곳에서는 누구나 동심이고 날고 싶고 뛰고 싶을 것이다. 볼음도의 저녁이 그렇게 무르익어갔다.

볼음도는 북방한계선(NLL)에 있다. 숭어잡이 어장 너머로 북한 배가 아련히 보인다. 그마저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최근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잰걸음 탓일 것이다. 볼음도 주민들이 가장 반길 것이다.
볼음도는 북방한계선(NLL)에 있다. 숭어잡이 어장 너머로 북한 배가 아련히 보인다. 그마저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최근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잰걸음 탓일 것이다. 볼음도 주민들이 가장 반길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 너머에 바다가 있고 그 뒤가 NLL이다. 숭어잡이 그물을 펼친 곳과 가깝다. 북한 배가 모습을 보였던 곳이다. 숭어에게 북방한계선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물에서 탈출한 숭어들은 벌써 북한의 연화군 갯벌로 헤엄쳐 갔을지도 모른다.

볼음도 안골마을 은행나무도 잘 있다며 곧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누렇게 벼가 익어간다. 그 바다를 평화수역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오간다. 가을에는 볼음도 안골마을에서 봄에는 호남리 마을에서 은행나무 아래서 한바탕 잔치를 벌일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날이 오면 당아래마을 ‘황해여인숙’에서 하룻밤 묵어보자.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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