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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능선을 타는 가을 섬 산행 백미, 사량도

[김준의 섬섬옥수] 경남 통영시 사량도

2018.11.20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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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의 가을밤은 수우도 너머로 해가 진후에 시작된다. 황금바다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왜 이곳에 겨울이면 물메기가 몰려오는 지 알 것 같다. 그 아름다운 바다가 그리워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해가 지고 나서도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돈지마을을 지나 수우도전망대에 못미처 길 가에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고기잡이를 마치고 포구로 돌아오는 배를 보았다. 그 배는 분명 ‘검은돛배’였다.

사량도 가을밤은 수우도 너머로 해가 진 후에 시작된다.
사량도 가을밤은 수우도 너머로 해가 진 후에 시작된다.

사량도는 ‘박도’라고 불렀다. 상도와 하도 두 섬이니, 윗박도 아랫박도쯤 될 것 같다. 두 섬 사이로 흐르는 ‘동강’의 물길이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해 ‘사량’이라 붙였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를 ‘사랑’으로 해석한 모양이다. 그리고 전해오는 옥녀봉 설화를 입혔다. 사랑과 사량은 의미도 글자도 다르다.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하다지만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

낮지만 범상치 않는 암릉 산행

옥녀봉에 이르면 이제 하산이다. 서울에서 왔다는 부부와 지리산부터 옥녀봉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상도를 종주했다. 신발부터 옷차림새까지 동네 뒷산을 오르는 모양새다. 높은 봉우리라고 해봤자 400m 내외다. ‘숲길 사량도’라는 안내에 편하게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걸어보니 전문 등산화를 신고 마음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사량도 등산길은 크게 5코스이다. 지리산과 옥녀봉을 아우르는 세 길과 고동산 둘레코스까지 상도에 네 길이 있고, 칠현산이 있는 하도에 두 길이 있다. 고동산 둘레길을 제외하면 모두 칼날 같고 공룡의 등 같은 바위 능선과 암봉으로 이루어진 ‘암릉’이 대부분이다.

지리산에서 옥녀봉에 이르는 산행길은 칼바위와 암봉으로 이어져 있다. 에둘러 가는 길이 있지만 운동화는 피해야 하며 등산화를 착용하고 동료와 함께 산행하는 것이 좋다.
지리산에서 옥녀봉에 이르는 산행길은 칼바위와 암봉으로 이어져 있다. 에둘러 가는 길이 있지만 운동화는 피해야 하며 등산화를 착용하고 동료와 함께 산행하는 것이 좋다.

시간이 없어 옥녀봉에만 올랐던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버스를 타고 돈지마을 너머에 있는 수우도전망대로 향했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완만하다는 표 파는 아가씨의 추천도 있었고 지리산을 거쳐 옥녀봉에 이르는 주요 암봉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등산로이기도 했다.

제일 완만하다는데 이게 완만한가. 산행을 시작한지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서 사량도 등산이 만만치 않음을 직감했다. 지리산을 앞두고는 암벽을 오르듯 기어야 한다. 하늘이 도와 미세먼지가 없는 것을 고마워하며 땀을 닦기 시작할 무렵 사천과 고성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헬리콥터가 고성 방향에서 지리산 능선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너머에 있는 돈지마을을 지나 하도로 가더니 잠시 후 선회해서 곧장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앞서 가던 외국인 두 명이 바닥에 엎드렸다.

필자도 좀 떨어진 곳에서 영문을 모르고 긴장하며 지켜보았다. 잠시 후 헬리콥터 문이 열리고 소방대원이 내려왔다. 사고였다. 같은 배를 타고 왔던 흰 바지에 분홍색 자켓 입고 있던 여성이 들것에 묶여 헬리콥터 안으로 들어갔다.

발이 삐끗하면서 어른키 두 질 아래로 굴렀다고 했다. 사량도는 일 년이면 한 두 차례 사망사고가 날 정도로 악산이며 위험하다.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쉽게 편하게 섬에 들어와 등산한다. ‘섬과 바다,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환상의 등산코스’라고만 기억하고 있다. 일 년에 60만 명이 찾는 100대 명산으로 꼽힌다.

출렁다리를 놓고 위험 구간을 정비를 하고 에둘러 가는 우회로를 만들었지만 기암절벽과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행길은 아무리 준비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구나 음주 산행은 절대금물이다. 배 안에서 술을 먹고 섬에 들어오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상도와 하도를 잇는 다리가 놓였다. 상도에 위치한 사량도의 중심 진촌이다. 조선시대 수군만호진이 설치된 곳이다.
상도와 하도를 잇는 다리가 놓였다. 상도에 위치한 사량도의 중심 진촌이다. 조선시대 수군만호진이 설치된 곳이다.

사량바다에 건져 올린 가을 맛

섬에서 하룻밤을 자야 누릴 수 있는 것은 수우도 너머로 지는 아름다운 저녁노을만이 아니다. 눈만 아니라 입도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섬이다. 백조기 회라니. 식당 주인은 조기회가 얼마나 맛이 좋은 줄 아느냐며 한 술 더 뜬다.

오늘 얼마나 힘든 산행이었던가. 마지막 옥녀봉을 넘어 설 때는 다리가 흔들렸다. 오늘만큼은 나를 위한 멋진 성찬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런데 1인 밥상이 문제다. 그래서 아예 두 사람인 것처럼 주문을 했다.

바깥주인인 선장님이 마침 물을 보고 왔다며 쥐치와 참돔 그리고 백조기회를 내왔다. 그리고 여기에 직접 담은 ‘옹기사곡주’를 내왔다. 누룩에서 주모를 추출해 수수·옥수수·참쌀·기장·생강을 넣고 직접 담은 수제 막걸리다. 선장이자 바깥주인이며 주방을 책임지는 이정덕씨가 제조자다. 이정도면 성찬으로 부족함이 없다.

사량도의 가을이 익어간다.
사량도의 가을이 익어간다.

남해에서 사량도 만큼 좋은 어장도 드물다. 수우도, 추도, 사량도 일대의 어민들은 슬슬 대나무 통발을 만지기 시작할 것이다. 겨울 낙지잡이도 한철이다. 봄 도다리, 여름 문어 그리고 철없이 잡는 광어가 있다.

낚시객을 유혹하는 참돔, 감성돔, 돌돔까지 예전만 못하다지만 풍성하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연산으로 돌우럭과 농어와 문어를 추천한다. 계절음식으로 도다리쑥국, 대구탕, 물메기탕 그리고 바지락탕까지 올라온다.

상도와 하도 사이에 골과 골 사이에 갯벌도 제법 있다. 바지락 등 패류가 나오는 곳이다. 낙지는 돌낙지라 서해안 어촌마을에서 잡히는 뻘낙지와 다른 맛이다. 사량도 어장은 ‘주부’라고 부르는 정치망이다. 사량횟집을 운영하는 선장 이정덕씨는 그날그날 그물을 털어 싱싱한 회를 상에 올린다. 겨울철 사량도는 본격적으로 낙지잡이가 시작된다.

돌 틈에서 잡은 ‘반짝게’(바위게로 추정됨)를 미끼로 ‘낙지주낙’을 한다. 돌문어는 단지를 이용한다. 무엇보다 주인이 직접 개발했다는 막걸 리가 좋았다. 다음날 숙취가 없다는 주인장의 권유도 있었지만 맛있는 안주에 막걸리 한 주전자 바닥을 보고서 일어섰다. 

겨울이면 물메기와 낙지, 봄이면 도다리, 여름부터 가을까지 문어 그리고 대구탕, 물메기탕, 도다리쑥국 등 사량은 바다와 섬이 내준 먹거리로 풍성하다.
겨울이면 물메기와 낙지, 봄이면 도다리, 여름부터 가을까지 문어 그리고 대구탕, 물메기탕, 도다리쑥국 등 사량은 바다와 섬이 내준 먹거리로 풍성하다.

옥녀봉이 그립거든 칠현산에 올라야

상도에 비해 하도를 찾는 사람은 적다. 토요일 이른 아침,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옥녀봉으로 향한다. 두 섬을 잇는 다리 위에서 일출을 보고 곧바로 칠현산으로 향했다. 아무리 험한들 어제 걸었던 능선만 할까.

칠현산으로 오르는 길을 짧다. 그만큼 가파르다. 산에 잘 오르는 사람이라면 반시간이면 능선에 닿는다. 오를수록 욕지도, 연화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에서 칠현산 정상까지는 상도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암릉이다. 덕동에서 칠현봉을 거쳐 망봉과 용두봉 그리고 읍포로 내려오는데 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 내려오는 길도 오르는 길 만큼이나 급경사다.

어제 암릉 산행이 힘들었을까. 다리가 팍팍하고 종아리가 당긴다. 그래도 칠현산을 고집했던 것은 봉화대 때문이다. 사실 칠현산(349m)은 상도의 지리산이나 옥녀봉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칠현산에 올라야 상도의 암릉 봉우리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산도 깊고 낙엽송들이 많아 가을산으로 오히려 칠현산을 추천하고 싶다.

칠현산 암릉도 상도 못지않다. 옥녀봉을 비롯해 상도의 바위산을 제대로 보고 싶거든 칠현산에 올라야 하다. 가는 길에 봉수대도 살펴볼 일이다.
칠현산 암릉도 상도 못지않다. 옥녀봉을 비롯해 상도의 바위산을 제대로 보고 싶거든 칠현산에 올라야 하다. 가는 길에 봉수대도 살펴볼 일이다.

무엇보다 상도와 하도 사이 동강도 오롯이 조망할 수 있다. 마침 상도 진촌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동강과 사량대교를 지나 윤슬 사이를 비집고 지나간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칠현산에 오를 이유가 충분한다. 새벽에 길을 나서 통영 미륵산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본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룻밤을 묵어야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상도의 진촌마을은 조선시대 사량만호진이 설치되었다. 면사무소 앞에는 만호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만호진에서는 왜구의 침략을 감시하기 위해 하도 칠현산 아래 봉수대를 세웠다. 쌓인 돌이 무너지고 안내판마저 어디로 갔는지 기둥만 잡목에 가려 지나치기 쉽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암봉과 암릉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마침내 칠현산에 이르면 보리암을 품은 남해 금산, 다랭이논을 낳은 설흘산이 두 팔을 멀리고, 통영의 명산 미륵산을 중심으로 봉화산과 벽방산도 인사를 한다.

사량도 봉수대.
사량도 봉수대.

이정표가 있지만 덕동으로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을 잃을 수 있는 곳도 있고, 가시와 풀과 잡목이 길을 막기도 한다. 주말을 피할 수 있다면 가을 섬여행지으로 권하고 싶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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