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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낚고 다시 서울로…아내에게 감사

제주에서 혼자 한달 살고, 돌아가는 40대 아재의 말

2017.12.01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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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5개월. 가을 찬바람이 불자 더욱 조급해지고 초라해진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2015년 8월 스타트업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했다.

더 안정된 삶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1년 9개월 만에 ‘폐업에 의한 명예퇴직’을 당했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도 나 자신을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하루라도 빨리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실직을 하고 가을이 되도록 몇 번의 재취업 노력은 실패했고 그때마다 더욱 심한 내상을 입었다. 더이상 주위에 취업 부탁 전화도 하질 못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주도 가서 한 달 지내고 올래? 취업도 중요하지만, 당신 너무 힘들어 보여…”

제주가 고향인 아내에게 서귀포에 사는 친구가 사람 소개를 부탁했다. 한 달가량 해외여행을 떠나게 돼 약간의 비용만 내고 살던 집에서 지낼 사람을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내는 나를 제일 먼저 떠올렸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제주 생활을 하게 되었다.  

주소를 받고 주변을 검색해보니 모슬포항에 인접한 크지 않은 읍내였다. 모슬포? 항구네! 뭐하지? 계획된 제주살이가 아니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30대 초반 회사 선배들 따라다니며 배운 낚시가 생각났다. 바쁘다는 핑계로 10년 넘게 방치한 민물낚시 대를 차에 싣고 모슬포로 왔다.

바다낚시 그것도 제주도에서 창피하지 않을까? 모슬포항 사람이 잘 안 다닐 만한 구석진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항 근처 낚시점에서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여기서 민물대로 낚시할 수 있나요?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일이다. 바다는 물때가 있고 조류가 있고 망망대해에 어디에 고기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 친절한 느낌을 받지 못하고 약간 빈정거리는 주인장의 성의 없는 대답을 뒤로하고 숙소에서 ‘제주도 바다낚시’ 검색을 시작했다. 벵에돔! 요거 한번 잡아볼까?

일단 바다에 걸맞은 장비가 필요했다. 낚싯대와 릴 등 장비를 주문하고 검색을 통해 매듭과 바늘 매기 등 하나하나 배워 갔다. 하지만 검색으로 배운 낚시는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제주에 오래전 내려오신 선배를 만나 애월 방파제에서 낚시를 같이하며 실전을 경험했다.

물론 꽝이었다. 선배가 몇 가지 조언과 당부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다. 비용부담으로 사지 못한 바다낚시 구명조끼를 빌려주시고 번거롭더라도 꼭 입고 낚시를 가라고 하셨다. 제주낚시는 배를 타거나 부속 섬을 가야 대물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큰 욕심을 부릴 처지도 아니고 제법 비용이 드는 앞서 두 방법은 처음부터 제외했다.

선배가 제주에서 벵에돔을 잡을 수 있는 팁 몇 가지를 말씀하셨다. 미끼는 방부 처리된 비싼 미끼 크릴보다 벌크로 판매하는 냉동 크릴을 머리와 꼬리를 잘라내 작게 바늘에 달고, 본섬 수심 깊지 않아 아무 곳이나 고기가 있는 게 아니니 무조건 현지 낚시꾼이 있는 곳에서 낚시해야 하고, 바늘은 맬 수 있는 한 제일 작은 것을 쓰라고 하셨다.

11월 제주시 북쪽은 북서풍이 세차게 부니 서귀포 쪽에서 낚시하라고 하셨다. 선배가 추천한 서귀포 낚시 포인트로 새벽, 해 질 녘, 밀물 때, 썰물 때,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등 가리지 않고 다녔다. 처음 어색하고 두려웠던 갯바위는 점점 익숙해지고 초반 한두 마리 조과가 어느새 서너 시간에 벵에돔 십여 수 이상을 낚아낼 수 있었다.

제주 벵에돔 낚시에 몰입한지 열흘쯤 되던 날 만조에서 첫 썰물이 시작될 때 신발이 젖을 정도로 물이 덜 빠졌을 때 갯바위 제일 곶부리 자리로 들어갔다. 미끼를 끼고 20여 미터 앞으로 찌를 던지고 밑밥이 퍼지기도 전에 쭉 빨려 들어가는 낚싯대에 급하게 챔질했다.

제주 한달 혼자살기에서 손맛을 느꼈던 벵에돔으로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그 기억으로 이제 서울에서의 인생맛을 느낄 차례다,
제주 한달 혼자살기에서 나를 시험에 들게했던 벵에돔 녀석들로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그 기억으로 이제 서울에서의 인생맛을 느낄 차례다.

지금까지 것 중 가장 큰 씨알의 벵에돔을 첫 캐스팅에 잡았다. 이후 계속되는 입질에 작은 사이즈를 방생하고도 쿨러에 담긴 게 20여 마리 주위에 낚시꾼들의 시샘의 눈초리마저 느껴졌다. 이제 됐다. 이날 이후 더는 욕심은 생기지 않았다.

새벽잠을 깨 별이 보이는 해변 길을 달려 갯바위에 나가 해가 지면 숙소로 돌아오고 다음 날 쓸 미끼와 밑밥을 준비하고 잠들었다. 열흘 가까이 반복된 생활은 재미로만 설명할 수 없다. 발가락과 손가락 일부는 감각이 없어졌다.

현무암 갯바위는 마치 칼날 같아 더욱 긴장하고 버티고 서있었더니 발가락에 무리가 갔고, 처음 매보는 작은 바늘에 너무 힘을 주어 엄지와 검지가 매일 저녁 아파졌다. 난생처음 해보는 바다낚시 그것도 제주도 벵에돔 낚시를 통해 나를 시험했다.

그리고 몰입과 열정의 결과를 확인했다. 대박을 친 그날 이후 더는 벵에돔 낚시에 집착하지 않았다. 주변 산책도 하고 제법 낚시가 익숙해져 반찬거리로 서너 마리 고등어와 전갱이는 십여 분 만에 손쉽게 낚아낼 수 있게 됐다.

기억의 반댓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라고 했던가. 제주도 바다 낚시는 망각을 하게 해주고 상상을 하게 해주었다. 희망을 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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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 망각과 상상을 통해 실직 후 점점 사라졌던 자존감이 낚아나고 새로 시작하는 그 어떤 일도 노력과 열정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제주에서의 혼자 한달 살기를 하고 다시 뭍으로, 서울로 돌아간다. 바닷내음은 일부러라도 잊어야 겠다. 그리고 다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제주에서 가져온 희망이라는 밑밥을 조금씩 조금씩 풀어나아가야겠다. 아내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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