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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의 몸으로 이뤄낸 공무원 시험 합격기

박현숙/지방보건 9급(2005년 합격)

2010.07.14 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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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날마다 인터넷 공무원임용시험 카페에 들어가서 합격수기를 읽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날이 올까?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말이죠.

저는 지금 대전광역시 대덕구청에 자랑스런 보건8급 공무원으로 일하며 이 자리에 앉아 저의 합격수기를 쓰고 있습니다.

실업고등학교에서 간호전문대로

1995년 여자상업고등학교(실업계)를 나와 대기업 공채로 입사, 3년 8개월 동안 근무를 하다 1998년 IMF를 맞아 거의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나와야 했습니다. 24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던 저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으로 간호전문대학 특별전형 턱걸이로 입학했습니다. 26세의 늦깎이 대학인 저는 죽기 살기로 공부한 결과 졸업생 중 1등으로 졸업하게 됐습니다. 대학 재학 중 공무원인 시간 강사교수님을 통해 알게 된 보건직 공무원에 대한 동경이 생겨 졸업전부터 공무원시험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첫 아이를 낳고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기에 공무원이라는 꿈은 날아가는 듯 했습니다.

꿈을 꾸는 나는, 아줌마

어느덧 아이가 자라 돌 지난 해에 시어머니와 신랑의 도움으로 저는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하게 됐습니다. 5과목이나 되는 보건직?시험과목은 간호사인 저에게도 날마다 한숨만을 안겨줬고 제가 사는 충북 영동은 공무원 학원조차 없는 곳이라 시험공부의 감조차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전으로 기차를 타고 다니며 아침 8시에 나갔다가 오후 5시까지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어린 아들을 잠깐보고 다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동네 도서관으로 직행했습니다. 그 당시 본적지와 주소지 두 군데서 시험을 볼 수 있었기에 기회만 닿으면 시험을 보곤 했습니다.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발표날이면 늘 떨렸습니다.

국어·영어, 너희들은 뭐야

공부하면서 전공과목과 관련 있었던 보건행정과 공중보건과목은 제게 거의 만점을 주는 효자과목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어와 영어는 저를 희망의 문턱에서 다시금 돌려세우는 아주 미운놈들이었죠. 국어·영어 없이는 절대 합격 못하는 현실은 다시 제게 국어 동영상 3번의 반복 시청과 영어를 잡기 위한 자학과 같은 고문을 하게 했으며, 그렇게 세월을 흘려 보냈습니다.

국사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주 재미없었던 과목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다시 공부하다보니 다른 과목에 비하면 너무너무 재미있는 소설책과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구석구석에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등학교 국사책은 수박 겉핥기로 돼있어서 참고서적 2권(출판사가 다른 책)을 2번씩 정독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일주일 지나면 다시 잊는 저의 단기기억에 한계를 느꼈지만 나름 재미를 느끼려고 하니 남는 것들이 생겼습니다.

2005년 1월, 저의 1순위 희망지이었던 대전광역시에서 8명의 보건직을 뽑는다는 대박 발표가 있었습니다. 매년 1명 뽑을까 말까 했던 보건직을 8명씩이나…. 이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임신의 몸으로 뭘한다는 거야

그런데 희망도 잠시 뱃속에 3개월짜리 예쁜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아이가 원망스럽고, 부담스럽고 심리적으로 모든 상황이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철없는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 지푸라기라도 잡길 원했던 제 심정은 아이가 원망스럽기까지 하고 인생을 이렇게 포기해야하나 하는 생각에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뱃속아이와 2살짜리 아들 그리고 저의 미래가 달린 이번 거사를 포기한다면 영원히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저는 몸부림 쳤습니다.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냄새나고 시설 나쁜 시골의 컴컴한 도서관에서 라면과 커피로 지내며 저와 제 뱃속 아이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지옥이었습니다. 날마다 그러면 안된다 것을 알면서 아이를 원망하고 임부에게 나쁘다는 커피를 하루에 4~5잔씩 마시며 정말 원하는 자리에 서기 위해 스스로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그놈의 공무원이 뭐길래 말이죠.

마지막 시험 그리고 희망

드디어 D-day!
시험지를 받아든 날. 지금도 그 시험장소 옆을 지나가면 그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떨리지만 필기시험을 다 끝내고 나오는 그 기분은 “아! 상쾌하다. 딸래미 뱃속에서 고생했구나.”라며 스스로에게 7개월 뱃속 아이에게 격려의 말을 던졌습니다.

1차 시험발표날 떨리는 맘으로 ARS번호를 누르고 수험번호를 누르고 들었던 말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 그 말은 몇 번을 들어도 믿지 못해 여러번 전화를 걸어 댔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던 시어머니와 신랑, 친정부모님 주변의 모두가 저를 축하해주셨습니다. 저도 너무너무 기뻐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할거 같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꿈 ★ 은 이루어진다

합격자 발표 후 면접이 남아 있었습니다. 8명을 뽑는 이번 시험에 9명이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면접을 기다리며 배부른 저의 모습을 면접관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너무너무 궁금하고 걱정돼 면접 전 여러 학원선생님께 임신이 합격에 불이익이 될 수 있냐고 물어보고,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물어보고, 주변분들에게 물어본 결과,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불안한 마음은 늘 가시지 않았습니다.

면접날에 두분의 면접관과 저는 같은 방에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10개 정도의 여러 가지 질문으로 저를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떨려서 정확한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자신있게 대답했고, 잘못 답변한 내용은 면접관께서 차근차근 다시 생각하고 말하라고 격려까지 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면접을 마치고 시청 앞마당에 나와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고 하자 엄마는 “넌 꼭 붙는다. 걱정말어.”라는 단호한 말로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최종발표날. 보건직 9명 중 1명이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저는 떨어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떨어진 분께는 죄송하지만, 정말 기뻤습니다(나중에 그분이 붙어서 동기모임에 나오셨더군요).

2002년 ‘꿈★은 이루어진다’ 한일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가 내세웠던 그 말이 제겐 희망의 주문이 됐습니다. 자상하게 저를 지켜봐준 남편, 애 키우느라 고생하신 시어머니, 건강한 우리 아들, 그리고 나쁜 엄마 만나 뱃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원망들었던 제딸(똑똑해서 똑순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요)이 지금 제 옆에 있습니다.

저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함과 동시에 자신감과 인생의 성공이라는 달콤함과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지난날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지금 제 앞에 닥친 어떤 어려운 문제들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갖게 됐습니다.

2005년의 저와 같이 시험에 모든 걸 건 수험생 여러분 ‘꿈은 이루어지며 본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 소중한 진리의 말이 진실임을 여러분도 깨달을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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