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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수험생들에게 전하는 희망 메시지

○○○/지방직 사회복지직 9급(2013년 합격)

2015.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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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시작 전의 상황이 좋지 않다저는 여러 가지 상황들로 공부기간이 오래됐습니다. 제가 힘들게 공부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을 견뎌내며 공부하시는 고시원 총무들이나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험생 여러분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공부시작 전의 상황

1997년 제가 고1때 IMF로 부모님의 사업이 부도를 맞게 됐고, 2004년에는 군대를 제대한 시점에는 부모님의 결별로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와 두 가족으로 살게 됐는데, 어머니께서는 질병으로 인해 근로능력을 잃으셨고 저는 대학을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대한 당일 날부터 아르바이트를 3개(주간·야간·주말)씩 했으나 시급 2000원인 시절이라 두 가족의 생계비를 채우기에는 부족했고, 대학교 학업을 중단하고 택시 운전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시급 2000원인 아르바이트보다는 많이 벌기는 했지만 수입이 많지 않아 두 가족의 생계비 정도로만 그칠 뿐 등록금까지 저축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학업을 중단하려던 시점에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을 할 수 있게 되어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군 휴학과 일반 휴학을 총 5년 하고 늦은 나이에 2학년으로 복학을 했는데, 졸업하면 30세라 미리부터 진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택시를 하며 다양한 직업을 접해보면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2~3학년 때 공무원 공부를 위해 필요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방학 때 번 돈은 저축하고 공무원 시험에 학점이 들어가지 않으므로 시험기간 2주 전부터 시험 볼 때까지의 기간 빼고는 학교 끝나고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방학 때는 택시운전을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이 두 가지라도 해주실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자신의 공부비용 정도만 벌면 됩니다. 그러나 월세와 식비 그것도 부양가족의 비용까지 벌면서 학비까지 모으기란 힘이 들 것입니다. 적어도 고정으로 나가는 생활비를 넘어선 금액부터가 학비로 모이니까요. 그래서 2~3학년 틈틈이 공부비용을 벌기 시작했고, 4학년이 된 시점에 졸업하고 시작하면 서른 다 된 시점에 시작하게 되는 거라 4학년 방학 때 공무원 종합반을 들었던 게 제 공부의 출발점입니다.

♣ 수험생활 시작

2009년 2월, ○○학번인데 29세라는 늦은 나이에 졸업을 하게 됐고, 그 무렵에 이재현 선생님의 위풍당당을 접하게 되면서 선생님을 알게 됐습니다. 졸업 전에는 아르바이트와 생활비를 버느라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의 윤곽은 잡은 상태였고 본격적으로 해서 1년 안에 붙자는 각오로 했습니다. 그러나 군대 제대 후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대학시절도 거의 일하느라 시간을 할애해 성적이 마음처럼 오르지는 않았고, 실용언어를 어느 정도 다져서 성적 올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당시 5과목을 85분에 보는 시험이라 국어가 90% 실용언어 위주였고, 긴 지문이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2010년이 돼서야 10년 만에 처음으로 공부만 할 수 있는 상황이 됐고, 많은 돈은 아니지만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마지막이라는 신념으로 정말 절박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고시원이 15만원, 월식이 15만원이었고, 학원비와 교재비를 한 달에 20만원을 쓰는 상황이라서 자판기 커피 하나 먹을 상황이 안 됐고, 그 이상의 돈을 쓴다면 아르바이트를 몇 달 해서 공부시간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할 바에는 그 외의 모든 지출을 줄이자는 마음을 먹고 담배를 끊었습니다. 금연초나 전자담배에 의지하지 않고 그냥 바로 끊고 공부를 했고, 2011년 4월의 국가직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중 이재현 선생님께서 스터디를 구성해 주셨는데, 그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몇 년 했고, 나머지 구성원은 수험기간이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1년 일반행정이 전국에서 26명 뽑았고, 1100:1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쟁률을 만났습니다. 또한 시험시간이 85분에서 100분으로 바뀌면서 국어문제가 실용언어가 아닌 다양한 스타일로 바뀌었습니다. 전부터 공부하던 사람은 적응이 되질 않았고, 낙방을 하게 됐습니다.

♣ 핑계를 대지 말자

스터디원의 합격을 보고 상심하다2011년 시험에 일반행정 경쟁률이 너무 세서 한 과목을 더 공부해 출입국관리직으로 전향했고 2점차로 낙방하게 됐는데, 위풍당당 수업에서 스터디를 같이했던 20살 내기가 10개월 만에 검찰직에 합격한 것을 봤습니다. 또한 23세 나이에 서울시 일행에 합격하는 여자 수험생도 있었습니다. 공부를 몇 년 했는데, 10개월 만에 붙는 스터디원의 모습을 보며 낙심을 했었고, 대학 다니면서 틈틈이 공부해서 그전에는 시간이 없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학교 다니면서 붙는 스터디원도 보고, 단기간에 붙는 스터디원도 보며 많은 상심을 했습니다.

또한 일반행정직을 오래 준비하신 분들은 공감하실 부분이지만, 모 시에 원서를 써서 떨어졌지만, 모 시에 원서를 썼더라면 붙을 점수였는데 다른 스터디원이 제가 붙을 수 있었던 모 시에 합격해서 합격수기를 썼을 때의 드는 참 쓸쓸한 심정을 여러분들도 아시겠지요? 나이가 워낙 차이가 나서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는 해줬지만 속으로는 앓는 느낌. 이런 거 몇 년 반복하면 ‘공무원시험은 운인가?’라는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그 때 마음이 많이 아파서 이재현 선생님께 편지를 썼는데 그 글이 우리 수업자료 첫 페이지에 나오더군요. 너무도 눈물 나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때 가정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살고 있는 집에 전세금을 올려줘야 했지만 줄 돈이 없어서 사정을 했더니 집 주인분이 좋으신 분이라 한동안 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도 부도가 나서 집을 매각했고 집이 철거가 들어가서 국가직 시험 일주일 전에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서울에 전세를 얻을 수는 없었고 그나마 청약저축에 저금한 걸로 간신히 메꾸고 나머지 금액은 시험 붙고 갚는다는 전제하에 집을 얻었고 저는 고시원생활을 그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 비용이 다 떨어진 상황이라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수험생이 아르바이트해서 200만원 이상 주는 거 없습니다. 아르바이트 200만원씩 3달을 해도 600만원 모으는 건데 방세나 식대, 각종 공과금만 내도 모이는 거 없습니다. 그래서 겹벌이로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 낮에 하는 일은 저금하고 밤에 하는 일은 생활비를 하여 저축한 600만원을 고스란히 모아 남은 9개월 동안 나눠 60~70만원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 때 깨달은 건 ‘공부 오래 해야 붙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머지 스터디원들은 20세, 23세 이렇게 다들 어렸습니다. 저는 30세라 머리가 굳었고 ‘젊은 나이에 했더라면 나도 빨리 붙었을 거야’라는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학비를 벌어가면서 공부를 하니 남들보다 열악하다는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 상식을 깨버린 한 해

2012년에는 이러한 착각으로 살던 중 같은 고시원에 살던 두 살 많은 형(34세)이 있었습니다. 그 형은 노량진에서 고시원 총무를 하며 생활비를 했고 하루에 순공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형도 공부를 오래 하긴 했지만 서울시 일반행정직에 합격하는 걸 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자기합리화를 다 깨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이 많다고 성적 안 오르는 것도 아니며 일하면서 공부한다고 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습니다.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습니다. 남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붙는데 저는 몇 년째 떨어지는 상황이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2012년 당시는 출입국관리직 합격선이 높아 그 직렬은 근접하지 못했으나 지방직 일반행정직이 1점차로 떨어지게 됐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고 주위에서는 ‘그만두라’는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가정상황은 이러했습니다. 어머니께서 10여 년 전 사업하다 부도가 나서 금융권에 빚을 많이 지셨습니다. 10여 년 동안 갚아도 갚아도 이자 밖에는 원금이 갚아지지 않는 상황이라 파산을 결정하게 됐는데, 파산을 신청하면 경제활동이 제한이 있어 파산과 동시에 복권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법무사 비용이 200만 원가량 필요했고 수험생활을 하느라 수입이 없던 저로써는 혼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비용을 마련하느라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 겹벌이를 해야 했고, 4개월가량을 돈 버는 데 들였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복지공무원을 찾아가서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정부지원을 받으려면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주민등록을 살리면 빛 독촉이 심해지는 상황이고 아들이 학업도 이어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주민등록이 말소된 채로 오래 사시다가 주민등록을 살리신 지 얼마 안 되셨습니다. 사회복지공무원이 그 때 법적인 자격은 되지 않지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셨고, 한 가정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공무원을 내가 해보면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지나치지 않을 것 같고,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당부의 말

최종 합격해서 좋아하는 모습저는 수험생활을 하면서 제가 무척 힘들게 공부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험생들 사연 하나하나를 듣다보면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마트나, 주유소 등에서 일하며 공부하는 수험생, 실직으로 퇴직금으로 간신히 공부하는 수험생, 독서실이나 고시원 총무하시는 분들, 아기 엄마 수험생 등 하나하나 다들 사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물론 공부에 전념 할 수 있도록 학비를 집에서 밀어주고 단기간에 합격하는 경우도 훌륭하지만, 저는 여러 가지 핸디캡을 극복해가며 오랜 기간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시는 분들께 더더욱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파이팅입니다 !”하시라고 말입니다.

남들과 환경이 달라 출발선이 늦다는 생각도 할 수 있고, 합격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게 되고 이럴 때 정말 답은 없었고,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실패하면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도전하고, 과거의 실패를 빨리 잊고 앞만 바라본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긍정적으로 공부하셨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수험생 여러분! 모두 파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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