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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움길과 지름길

2019.08.08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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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사람들이 정말 자주 쓰는 흔한 말이다. 나는 이상하게 이 한 글자 단어가 오래전부터 참 좋았다. 그 어감이 입에 착 감긴다. 긴 세월 참 친구처럼 다정하게 체화된 말이다. 무엇보다 이 단어는 긴 여운을 준다. 내가 또 좋아하는 우리말 한 글자 단어인 ‘밥’과 느낌이 비슷하다. 인생이란 게 결국은 ‘길’이며, ‘밥’을 먹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단어를 제목으로 한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에움길’이라는 영화다. 이 단어의 뜻을 모르는 이도 많을 거 같다. ‘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이라는 뜻이다. 지름길의 반대말이다. ‘둘레를 빙 둘러싸다’는 동사 ‘에우다’에서 나왔다. 지름길은 질러가서 가까운 길이고, 에움길은 에둘러 가서 먼 길이다.

6월에 개봉한 영화 ‘에움길’은 일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여정을 다룬 휴먼 다큐멘터리다. 이승현 감독(역시 위안부를 다룬 영화 ‘귀향’에서 착한 일본인 역으로 나온 배우 출신)이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간 ‘나눔의 집’에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희로애락을 카메라에 담았다. 할머니들의 굴곡진 인생이 바로 에움길이다. 

‘길’은 토종 우리말이다. 한자를 쓰기 전부터 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라 향가에도 나온다. 길을 칭하는 말들은 거개가 우리말이다. 그런데 길 이름에는 질러가거나 넓은 길보다 돌아가거나 좁고 험한 길에 붙은 이름이 훨씬 많다. 우리 인생사처럼 말이다.

집 뒤편의 뒤안길,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고샅(길), 꼬불꼬불한 논두렁 위로 난 논틀길, 거칠고 잡풀이 무성한 푸서릿길, 좁고 호젓한 오솔길, 휘어진 후밋길, 낮은 산비탈 기슭에 난 자드락길, 돌이 많이 깔린 돌서더릿길이나 돌너덜길, 사람의 자취가 거의 없는 자욱길, 강가나 바닷가 벼랑의 험한 벼룻길…. ‘숫눈길’을 아는가. 눈이 소복이 내린 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그대의 첫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이다.

‘길’이란 단어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참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사유적이다. ‘도로’나 ‘거리’가 주는 어감과는 완전 다르다. ‘길’은 단순히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길이 없다”거나 “내 갈 길을 가야겠다”라는 표현에서 보듯 길은 삶에서의 방법이거나 삶 그 자체다. 영어 ‘way’도 ‘street’와 달리 같은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서양 사람들도 길에서 인생을 연상하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불교나 유교, 도교 등 동양 사상에서의 공통적 이념도 도(道)라고 부르는 길이다.

우리는 평생 길 위에 있다. 누군가는 헤매고, 누군가는 잘못된 길로 가고, 누구는 한 길을 묵묵히 간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다. 탄탄대로가 있으면 막다른 골목도 있다. 세상에 같은 길은 없다. 나만의 길만 있을 뿐이다. 프랭크 시내트라에게는 “Yes, it was ma way”였고 “I did it my way”였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이탈리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그 유명한 흑백 영화 ‘길’(La Strada, 1954년)을 기억할 것이다. 야수 같은 차력사 잠파노(안소니 퀸)와 순진무구한 영혼을 가진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는 평생 서커스 동반자로 길을 떠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자기가 버린 젤소미나의 죽음을 알고 잠파노는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길이 끝나는 바닷가에서다.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니노 로타의 그 유명한 트럼펫 연주 테마 음악. 영화와 제목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명시 ‘가지 않은 길’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그리고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길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길을 간다’라는 말보다 ‘길을 떠난다’는 말은 왠지 낭만적이거나 애잔하거나 결연하다. 결국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물으며 살아가는 거다. 그게 입신양명의 길이거나, 고행의 길이거나, 득도의 길이거나, 산티아고 길이거나, 바이칼 호수의 자작나무 숲길이거나, 동네 둘레길이거나…. 우리네 인생이 곧 길이요, 우리의 발이 삶이다.   
 
결국은 ‘마이 웨이’를 가는 거다. 지름길을 택할 것인가, 에움길로 돌아서 갈 것인가. 인생길은 결국은 속도와 방향의 문제다. 지름길로 가면 일찍 이루겠지만 그만큼 삶에서 누락되고 생략되는 게 많을 것이다. 에움길로 가면 늦지만 많이 볼 것이다. 꽃구경도 하고, 새소리 바람소리도 듣고, 동반자와 대화도 나눌 것이다. “우리 참 꽃구경도 많이 했제”라고 영화 ‘에움길’에서 할머니들은 말했다.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모든 사랑은 차표 한 장으로 쉽게 가는 지름길이 아니고, 수만 갈래의 에움길을 돌고 돌아서 이루는 것이다. 여기, 사랑의 신산함을 에움길로 묘사한 명시가 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그 무수한 길도/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중략)//나의 생애는/모든 지름길을 돌아서/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나희덕, ‘푸른밤’)

영화 ‘에움길’이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쯤 개봉했더라면 관심을 더 끌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받았는데도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았다. 요즘 다시 독립영화관을 중심으로 상영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올 1월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의 27년 여정을 다룬 다큐 ‘김복동’도 8일 개봉했다. 다들 험한 길을 힘들게 힘들게 걸어오셨다. 이제 우리가 ‘길’을 찾아야 할 때인가 보다.

한기봉

◆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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