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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Rap)과 시(詩)를 동시에 완성하다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⑬피타입(P-Type) ‘돈키호테’

2019.03.22 작성자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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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으로 가보자.

SNP가 있었다. SNP는 PC통신 나우누리에 속해 있던 흑인음악 창작 동호회였다. 그리고 SNP의 주축은 버벌진트, 데프콘, 피타입(P-Type)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이들의 역사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버벌진트는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논란을 일으키는 노래를 연거푸 내놓았다. <Modern Rhymes EP>도 2001년에 발표했다. 그에 반해 피타입은 조금 늦었다.

물론 피타입도 간간히 작업물을 발표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건 <Heavy Bass>를 발표한 후였다. 2004년의 일이었다.

버벌진트는 한국말 라임의 선구자다. 그가 진정한 한국말 라임의 시대를 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절반 쯤 틀렸다. 저 문장들 속에 있는 모든 ‘버벌진트’ 옆에 ‘피타입’이란 이름을 나란히 놓아야하기 때문이다.

피타입 역시 한국말 라임의 선구자라는 이야기다. 

한국말 라임의 선구자, 피타입(P-Type). (사진=저작권자(c),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국말 라임의 선구자, 피타입(P-Type).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는 남다르고 깊은 접근과 학구적인 면모로 한국말 라임이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지를 일찌감치 꿰뚫고 있었다. <Heavy Bass>의 타이틀곡 ‘돈키호테’는 그 완벽한 예다.

나는 아직 초라한 나그네 오늘도 꿈을 꾸네 / 품에 새긴 현실과 내 운명 덕분에 / 가진 것이라곤 오직 이 고독뿐 / 절망을 지나온 거친 언어의 폭풍 / 꾸는 꿈은 불길을 뿜는 거칠은 / 저 화산이다 지금의 자화상이 아직은 / 비록 타다만 불씨 같다만 / 이뤄질 꿈인지도 장담할 수도 없다만

이 노래는 한국어 랩이 제대로 된 아트폼(art form)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치밀하게 보여주고 증명해 놓았다.

예를 들어 노래의 첫 줄에서 ‘나그네’, ‘꾸네’, ‘품에’, ‘덕분에’로 이어지는 라임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한국어 라임은 꼭 같은 글자일 필요는 당연히 없을 뿐더러, 같은 품사일 필요도 같은 글자 수일 필요도 없다고 외치는 듯 했다.

이는 곧 ‘서사의 확장’을 불러왔다. 그 전에는 메시지가 라임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었다면 피타입은 메시지의 피부 속에 라임을 숨겨놓았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눈으로 텍스트만 본다면 랩 가사인지 알 수가 없다. 대신 문학으로서 온전히 들어온다. 하지만 이것을 소리 내어 읽는다면, 비로소 라임 가득한 랩으로 변모한다.

미국의 영문학자 겸 작가인 아담 브래들리(Adam Bradley)는 랩은 양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랩은 공연되길 기다리는 한 편의 시(詩)와 같다”

물론 아담 브래들리가 ‘돈키호테’를 들어보았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그의 말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예이기도 하다. 

피타입은 '돈키호테' 발표 10여년 후 ‘돈키호테2’를 선보이며 건재를 증명했다. (사진=저작권자(c),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피타입은 ‘돈키호테’ 발표 10여년 후 ‘돈키호테2’를 선보이며 건재를 증명했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피타입이 아무나 알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을 동원했기 때문에 한국말 라임의 선구자가 된 것은 아니다.

대신에 그는 구개음화나 자음동화 같은 국어의 기초 문법을 적절히 활용하고, 거센 소리와 된 소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어절과 어절 사이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았을 뿐이다.

위에 인용한 가사에서 ‘고독뿐’과 ‘폭풍’으로 맞춘 라임을 보자. 피타입은 왜 애써 ‘ㄱ’ 받침으로 된 앞 글자 뒤에 된 소리와 거센 소리를 각각 배치해놓았을까. 그 이유는 직접 발음해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힙합저널리스트 셰어 세라노(Shea Serrano)는 미국의 ‘레전드’ 래퍼 라킴(Rakim)의 랩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라킴은 랩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의 랩을 음악적·언어적 진보로도 조명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효과는 따로 있었다. 바로 누구도 랩의 예술성을 폄하하거나 랩을 우스꽝스럽게 보지 못하게 만든 것 말이다”

그리고 ‘돈키호테’를 들은 후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라킴이 미국힙합에서 해낸 일을 아마도 피타입이 한국힙합에서 해낸 것 같다고.

한편 ‘돈키호테’는 문학이자 시(詩)이기도 하다. 일단 제목 자체가 거대한 은유다. 한국힙합의 고독한 선구자를 자처했던 것이다. 실제로 가사를 살펴보면 한국힙합에 대한 그의 사명감이 절실하게 드러난다.

‘돈키호테’를 시(詩)라고 느꼈기에 나는 김경주 시인에게 ‘돈키호테’에 관한 감상을 물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전해왔다. 그의 말로 이 글을 마친다.

제3회 제주세계델픽대회 시낭송 경연부문에서 한국의 김경주 시인이 ‘우주로 날아가는 방’이라는 시를 낭송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제3회 제주세계델픽대회 시낭송 경연부문에서 한국의 김경주 시인이 ‘우주로 날아가는 방’이라는 시를 낭송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세상의 허위와 부조리를 향해 창을 들고 달려가는 돈키호테의 외롭고 의로운 투쟁을 닮은 노래다. 사람들은 돈키호테가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손가락질 했고 기사로서의 품격을 잃어간다고 무시했지만 그의 창끝은 날카로웠고 그의 노새는 지치지 않았다.

돈키호테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떤 에너지로 남아 있는 것은 그가 보는 세상이 여전히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피타입의 투구와 창끝이 섬세하고 날카로운 것 역시 돈키호테의 동맥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문학이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로서 세상을 견인하려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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