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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핀란드여, 보아라, 너의 날이 밝아오는 것을!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핀란드/헬싱키(Helsinki)

2019.11.06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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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대성당 앞 원로원 광장에 섰다. 밤이 물러가고 새벽빛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하얀 대성당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핀란디아 송가>의 핀란드어 가사 첫 구절이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오, 핀란드여, 보아라, 너의 날이 밝아오는 것을!
험난한 밤의 장막은 이제 걷히었도다. 
Oi, Suomi, katso, sinun päiväs’ koittaa!
Yön uhka karkoitettu on jo pois.

밝아오는 새벽빛에 모습을 드러낸 헬싱키 대성당.
밝아오는 새벽빛에 모습을 드러낸 헬싱키 대성당.

‘핀란드(Finland)’란 국명은 스웨덴어이고 핀란드어로는 수오미(Suomi)이다. 핀란드는 현재 세계에서 여러모로 가장 모범적인 선진국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데 핀란드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험난한 밤의 장막 같은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

핀란드는 오랫동안 스웨덴에 속해 있다가 1809년에 스웨덴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러시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헬싱키에는 러시아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예로 대성당은 러시아가 지배할 때 세워진 것이다. 또 대성당 앞 원로원 광장 한가운데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아직도 그대로 서있다.

헬싱키를 상징하는 바다의 요정 하비스 아만다 분수. 그 너머로 에스플라나디 공원이 보인다.
헬싱키를 상징하는 바다의 요정 하비스 아만다 분수. 그 너머로 에스플라나디 공원이 보인다.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것은 1917년 12월 6일이고 네 달간의 내전을 겪고 완전한 주권국가가 된 것은 1918년 5월이었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소련군의 대대적인 침공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으며, 이어서 나치 독일군과도 전투를 벌여야 했다.

<핀란디아 송가>는  쟝 시벨리우스(1865-1957)의 교향시 <핀란디아>의 테마 선율에 1941년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힘겨운 전쟁 시기에 핀란드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원로원 광장에서 한 블록 남쪽으로 내려가면  하비스 아만다(Havis Amanda) 분수가 먼저 눈길을 끈다. 항구를 비스듬히 바라보는 하비스 아만다는 헬싱키를 상징하는 바다 요정의 이름이다.

5월 1일에는 이 분수 주변에 수많은 대학생들이 축제를 벌이며 <핀란디아 송가>를 제창하기도 한다. 이 분수 서쪽으로는 에스플라나디 공원이 약 400미터 정도 길쭉하게 펼쳐져 있다. 이 공원 안에서는 마음이 일단 느긋해지고 발걸음도 느려진다. 이러한 ‘느긋함’의 구심점이 되는 곳은 공원 안에 있는 카페 레스토랑 캅펠리(Kappeli)이다. 

캅펠리는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의 속국이던 1867년 세워졌으니 헬싱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레스토랑 중 하나이다. 특히 이곳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음악가 쟝 시벨리우스, 극작가이자 시인 에이노 레이노(1878-1926) 등 핀란드의 문화계를 이끌어가던 인물들이 모여서 느긋하게 담소하던 곳이니 헬싱키에서 매우 역사적인 장소인 셈이다.
 
그들 중 레이노는 핀란드 고유의 전설과 신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음악가 시벨리우스,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과 함께 문학에서 민족낭만주의의 선구자로 핀란드 역사에서 가장 사랑받은 문인이다. 그는 수많은 저서를 통해 핀란드 언어를 정제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단테의 <신곡>을 핀란드어로 번역한 장본인이기도하다.

스웨덴어 극장. 시벨리우스가 <핀란드여, 깨어나라!>에 부친 음악이 초연된 곳이다.
스웨덴어 극장. 시벨리우스가 <핀란드여, 깨어나라!>에 붙인 음악이 초연된 곳이다.

에스플라나디 공원 서쪽 끝에는 스웨덴어 극장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스웨덴어로 공연하는 극장이다. 핀란드의 공용어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인데 현재 스웨덴어를 쓰는 인구는 전체 5% 정도에 해당한다. 이 극장이 세워진 19세기에는 지식인과 상류층은 스웨덴어를 썼고 핀란드어는 아직 공용어 대접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가 핀란드를 더욱더 러시아화하기 위해 억압정책을 쓰던 때인 1899년, 그해 11월 이 극장에서 레이노와 핀네가 핀란드 역사를 6개의 장면으로 만든 연극이 공연되었는데 마지막 장면 <핀란드여, 깨어나라!>에 34세의 시벨리우스가 붙인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 곡이 바로 교향시 <핀란디아>의 시초가 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120년 전의 일이다.

다음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러시아 제국을 구성하는 한 민족으로 핀란드도 참가하게 되자 이를 위해 시벨리우스는 기존의 곡을 다시 다듬어 발표했다. 당시 이 곡은 독립된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던 핀란드 사람들의 민족의식을 크게 고취시켰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이 곡을 러시아에 적개심을 부추기는 위험한 곡으로 간주하고 <핀란디아>라는 제목으로 연주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다.

시벨리우스의 두상과 시벨리우스 기념 조형물.
시벨리우스의 두상과 시벨리우스 기념 조형물.

스웨덴어 극장에서 북서쪽으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한적한 호숫가에는 시벨리우스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안 한 쪽 바위 위에는 창작열에 불타던 모습의 시벨리우스의 두상이 올려져 있고 그 옆 바위 위에는 은빛의 금속 파이프 다발들이 물결치는 듯한 추상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폭풍우가 몰아칠 때면 함께 격노하는 듯하고,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오는 한줄기의 햇살이 떨어지면 새들의 노래와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반향하는 듯하다. 이곳에서도 <핀란디아 송가>가 강렬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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