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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음악가 아버지 빈첸쪼 갈릴레이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이탈리아/피사(Pisa)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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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는 현재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서해안 가까이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 불과하지만 중세 후반에는 베네치아·제노바·아말피와 함께 지중해를 주름잡던 막강한 해상공화국 중 하나였다. 피사는 10세기와 11세기에 걸쳐 지중해의 강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해 제노바와 노르만의 해군과 함께 이슬람세력을 몰아냈으며 12세기에는 서부 지중해해상권을 장악하면서 더욱 강대한 해상 공화국을 건설했다.

당시 피사는 스페인, 북아프리카와 교역하면서 황금기를 누리며 십자군 전쟁을 지원하고 대성당 옆에 종탑과 세례당을 세우는 등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를 다지며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1284년에 강력한 라이벌 제노바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패하는 바람에 역사의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하다가 1406년에는 피렌체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말았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기적의 광장. 세례당, 대성당, 사탑이 한 세트의 보석처럼 서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기적의 광장. 세례당, 대성당, 사탑이 한 세트의 보석처럼 서 있다.

피사 역을 나와 북쪽으로 대략 1킬로미터 정도 왔을 때, 시야가 트이면서 아르노 강변의 풍경이 펼쳐진다. 강을 건너 북쪽으로 역사의 향기가 짙게 밴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더 가면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여태까지 봐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황홀한 광경이 펼쳐진다. ‘기적의 광장’이다.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의 도시성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또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 있는 이 광장에는 하얀 대리석으로 통일된 대성당, 종탑, 세례당, 캄포산토 묘지가 남국의 밝은 햇빛 속에서 뿐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중세 암흑기’라는 표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찬란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광대한 외부세계와 교역하던 해상공화국 피사의 황금기를 가장 확실하게 증언해주는 건축물이다. 이 네 가지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교건축물들은 기능은 모두 다르지만 같은 재질과 색, 디자인 요소 등을 공유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한 세트의 보석처럼 보인다.

기울어진 종탑과 대성당의 표면. 재료와 디자인 요소들이 동일하여 일체감을 준다.
기울어진 종탑과 대성당의 표면. 재료와 디자인 요소들이 동일하여 일체감을 준다.

그중 종탑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듯 기적같이 기울어진 채로 서 있다. 이 종탑은 8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높이는 약 56미터, 지름은 15.5미터이며 수직축에 대해 약 4도 기울어져 있다. 종탑 입구에 붙어있는 석판에는 1173년 8월 9일에 착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종탑은 4층 중간까지 공사가 진행되었을 때 기초부분의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기울어지는 바람에 공사가 한참 동안 중단되었다가 1275년에 기울어진 채 그대로 공사를 재개하여 1350년에 완공되었다.

장구한 피사의 역사에서 피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은 단연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이다. 그는 기울어진 종탑 꼭대기에 올라서서 물체 자유낙하 실험을 했다고 하니, 이 탑은 과학 실험장으로도 쓸모가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대성당 안에서는 길게 늘어뜨려진 커다란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추의 진동이론을 정립했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 그의 제자가 그럴싸하게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피사에서 태어났고 피사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으며, 피사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이론과 실험을 중요시한 근대 과학의 선구자이다. 그런데 그의 실험정신은 아버지 빈첸쪼 갈릴레이(Vincenzo Galilei 1520-1591)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기울어진 종탑.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곳에서 물체낙하 실험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기울어진 종탑.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곳에서 물체낙하 실험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피사 근교의 한 작은 마을 출신의 빈첸쪼 갈릴레이는 피사의 귀족집안 규수와 결혼하여 아들을 일곱 낳았는데 장남이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빈첸쪼 갈릴레이는 피렌체에서 바르디 백작이 주도한 지식인 모임인 카메라타(Camerata)의 일원으로 고대 그리스의 연극과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또 음악이론가로도 명성을 얻고 있었을 뿐 아니라 류트 연주에도 뛰어나서 메디치 궁정 뿐 아니라 뮌헨 궁정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초빙 받기도 했다.

그는 음악에 수학을 도입한 최초의 음악가로 이론과 실험을 병행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옛날부터 음악이론이란 화성이나 음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으니 현의 길이의 비율이 어떠해야 조화로운 음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1옥타브를 나눌 것인가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그는 피사의 집 지하실에서 현의 장력과 음정간의 관계를 알기 위하여 현 끝에 무게가 다른 추를 달아 음정의 변화를 실험하기도 했는데 그가 이런 실험에 몰두하고 있을 때, 아들은 그를 곁에서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아버지로부터 순수 학문에만 몰두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이론을 통하여 실험을 하고, 또 실험을 통하여 이론을 정립하는 자세를 배우고 과학자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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