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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라임을 개척하고 ‘말장난’의 즐거움을 안기다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⑧] 김진표의 ‘진표 생각 1’

2019.01.11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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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방송 음악채널 엠넷(M.net)의 힙합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가 인기다.

시청률은 예년만 못하지만 작년에도 이 프로그램은 화제를 모았고, 어쩌면 올해도 여덟 번째 시즌이 방영될지 모르겠다. 확실히 쇼미더머니는 한국힙합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쩌면 이 연재도 쇼미더머니 덕분인지도 모른다.

2012년 서울 상암동 CJ E&M에서 열린 엠넷 '쇼미더머니2' 제작보고회에서 가수 MC메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2년 서울 상암동 CJ E&M에서 열린 엠넷 ‘쇼미더머니 2’ 제작보고회에서 MC메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쇼미더머니의 관람 포인트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자기가 좋아하는 래퍼가 우승하길 바라고, 누군가는 새로운 래퍼를 발굴하기 위해 티브이 앞에 앉는다. 다른 누군가는 힙합에 큰 관심은 없지만 예능 보듯 이 프로그램을 즐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쇼미더머니에 개근했음에도 누구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이 프로그램의 사회자 김진표다. 젊은 힙합 팬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저 아저씨는 누구길래 계속 진행을 맡는 거지?”

“저 아저씨 목소리는 좋아”

‘누구긴 누구야. 한국힙합 선구자지. 난 왜 이 걸 알고 있는 거지. 제길, 난 너무 일찍 태어났어…’

김진표의 시작은 (노래 부르는 이적 말고 옆에서 색소폰 불던) 그룹 ‘패닉’이었다.

그룹 패닉의 김진표(좌)와 이적.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룹 패닉의 김진표(좌)와 이적.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패닉의 데뷔앨범에는 ‘달팽이’ 말고도 여러 노래가 담겨 있었고, 그 중에는 ‘다시 처음부터 다시’도 있었다. 김진표가 랩을 구사한 노래 말이다.

“너의 꿈을 다 내놔 / 그 대신 찬밥을 줄게 / 평생 그걸 핥아 먹으면서 / 행복에 겨운 웃음으로 / 네 죄를 사해달라 / 하늘에다 빌어”

패닉의 두 번째 앨범에서 김진표는 ‘래퍼’로서 더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는 ‘벌레’에서 교사를 벌레에 비유하는 한편 ‘Ma Ma’에서는 부모의 욕심을 비판했다. 패닉의 두 번째 앨범 <밑>은 여러 모로 문제적 작품이었고, 그와 관련해 김진표의 지분은 대단했다.

“왜 당신과 마주하는 게 이렇게 두려운 거지 / 왜 우린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 당신의 뱃속에서 나온 이유로 난 닥쳐야 하지”

그리고 지누션의 데뷔앨범이 나왔던 1997년, 김진표의 솔로 데뷔앨범 <열외> 역시 발매됐다.

김진표가 <열외>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김진표는 ‘래퍼’였고 <열외>는 ‘랩’ 앨범이었다. 지금이야 이 말이 너무도 뻔하게 느껴지지만 당시는 달랐다.

이 앨범의 수록곡 ‘사랑해 그리고 생각해’ 무대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자. 김진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서 랩만 한다. 이 무대가 존재하기 전까지 ‘춤(혹은 안무)’을 곁들이지 않은 랩 무대가 과연 한국에 있었을까. 말 그대로 김진표는 래퍼였다.

동시에 <열외>는 랩 앨범이기도 했다. 모든 노래가 랩으로 채워진 앨범. 물론 그 전에도 랩이 들어간 앨범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모든 노래에 랩이 들어간, 더 나아가 모든 노래에서 랩이 주인공인 앨범이 과연 그 전까지 한국에 있었을까.

<열외>의 프로덕션은 트랙에 따라 힙합과 팝을 적절히 오갔지만, 김진표의 랩은 어떤 트랙에도 예외 없이 가득했다. <열외>는 래퍼가 랩으로 가득 채운 앨범이었다.

김진표는 패닉 해체 후 솔로활동을 이어가던 중, 신해철을 제외한 넥스트 멤버들이 결성한 그룹 ‘노바소닉’에 가입해 한동안 활동했다. 사진은 199년 '자유콘서트'에서 공연하는 노바소직의 김진표.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진표는 패닉 해체 후 솔로활동을 이어가던 중 신해철을 제외한 넥스트 멤버들과 뉴메탈 그룹 ‘노바소닉’을 결성해 한동안 활동했다. 사진은 1999년 ‘자유콘서트’에서 공연하는 노바소닉의 김진표.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무엇보다 김진표는 한국말 라임의 개척자였다. 그의 두 번째 솔로 앨범 <JP Style>에 수록된 ‘진표 생각 1’을 들어보자.

“우리 나라 너무 장해 / 그렇게 강해 / 하던 우리나라 누가 방해 /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망해 / 우린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당해 / 너무나 속상해”

‘장해-강해-방해-망해-당해-(속)상해’로 라임이 구성되어 있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비록 김진표의 라임 구성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요는 초보적이라거나, 억지스럽다는 것이었다. 부분적으로는 동의한다.

한국말 라임 수준이 만약 김진표가 이루어놓은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면 나 역시 절망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 후 래퍼 버벌진트 등이 더 진보된 한국말 라임 체계를 정립했음은 이제 모두가 안다.

하지만 당시의 눈높이로 본다면 김진표의 라임은 분명한 성과였다. 여전히 많은 이가 랩에 라임이 필요한지 모르고 있거나 라임을 홀대할 때 김진표는 언제나 자기 가사에 라임을 범벅해 놓았다. 아니, 잘못 말했다. 김진표는 자기 앨범 전체에 라임을 ‘떡칠’해놓았다.

그는 라임이 랩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한국말로 라임을 구사하기 위해 자기 재능의 범위 안에서 최대한 노력했으며, 무엇보다 랩의 가장 중요한 즐거움 중 하나가 ‘말장난’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말장난, 혹은 언어유희. 중요한 포인트다. 김진표의 라임을 폄하하는 주장에는 ‘메시지’라는 핵심 기준이 있었다. 내용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김진표의 라임이 선사하는 ‘말장난의 즐거움’이 온전히 대우받지 못한다면 애석한 일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우리는 김진표의 라임을 균형 있게 재평가할 수 있다.

“나는 싸가지가 너무 바가지 / 힙합 바지 입고 나가지”

‘진표 생각 1’의 후렴이다. 이 노래는 그의 노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한다. 영화 <품행제로> 사운드트랙에 리믹스 버전으로 실리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욕을 많이 먹은 노래이기도 했다. ‘억지’ 라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이 구절이야말로 잘 조율된 글자 수를 바탕으로, 단조롭지만 재치 있는 라임을 구사하면서, 힙합 특유의 으스댐 역시 은근히 품은 구절이 아닌가!

다시 말해 말장난은 즐겁고, 태도는 멋진 구절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텍스트가 아니라 랩으로 들어보면 잘 디자인된 플로우가 지닌 중독성도 맛볼 수 있다. 래퍼 김진표의 정수였다.

쇼미더머니 사회자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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