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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중요한 가치인 ‘리스펙트’를 전파하다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⑪] 인피니트플로우 ‘Respect You’

2019.02.22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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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칼라(Akala)는 영국의 시인이자 래퍼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비트에 맞춰 랩으로 부른 그의 테드토크(TED Talk) 영상은 이미 유명하다. 또 그는 ‘셰익스피어 컴퍼니’를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아칼라가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와 대담을 나눈 적 있다.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영국문화원이 주최한 자리에서였다. 그리고 그 때 그가 한 말은 아직까지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지금 주목 받고 있는 힙합의 모습은 사실 극히 제한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섹스, 마약, 폭력 등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고 미디어는 그런 부분을 부각해 노출시키죠.

김봉현씨 당신은 지금 힙합 듀오 갱스타(Gang Starr)의 후드티를 입고 있는데요, 갱스타는 갱 폭력에 꾸준히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온 그룹이에요.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죠”

힙합을 구성하는 여러 가치가 골고루 알려지지 못하고 자극적인 일부분만 부풀려져 대중에게 전달된다는 말이었다. 아칼라의 이 말을 듣고 나는 ‘리스펙트(respect)’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아니, 나도 모르게 떠올려졌다.

리스펙트. 한국말로 하면 ‘존중’. 이 단어는 분명 힙합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지만 어쩌면 가장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힙합을 디스와 함께 떠올릴 뿐 리스펙트와 연관 지어 이야기하진 않는다. 아쉽다.

실제로 힙합은 리스펙트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음악이다. 힙합은 리스펙트를 자신의 고유한 멋과 전통으로 여겨온 유일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예가 있지만 몇 가지만 말해보자.

뉴욕의 한 힙합 매거진 이름은 리스펙트다. 그리고 과거의 힙합 명반을 재발매하는 브랜드의 이름은 ‘리스펙트 더 클래식(Respect The Classics)’이다.

한편 래퍼 나스(Nas)는 자신의 정규앨범에 ‘U.B.R.(Unauthorized Biography of Rakim)’라는 노래를 수록했다. 자신이 어릴 적 롤모델로 삼았던 래퍼 라킴(Rakim)의 일생을 집대성한 노래였다.

2015년 빌보드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래퍼 4위에 오른 라킴(Rakim).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Invision/AP,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년 빌보드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래퍼 4위에 오른 라킴(Rakim).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Invision/AP,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더 나아가 힙합커뮤니티에는 아예 리스펙트를 정체성으로 삼는 정기적인 행사가 매년 열린다. ‘힙합 어너스(Hiphop Honors)’가 그것이다. 2004년부터 시작한 이 행사는 말 그대로 명예와 존중을 근간으로 한다.

이 행사를 통해 힙합커뮤니티는 1년마다 한 번씩 힙합 선구자들의 업적을 리스펙트한다. 힙합 어너스의 핵심은 후대 래퍼들의 공연이다. 후대 래퍼들은 자신이 어릴 적 영향 받았던 선대 래퍼들의 노래를 무대 위에서 부른다.

현장에선 선대 래퍼들이 그 무대를 직접 지켜보고 있다. 공연이 끝나면 선대 래퍼들은 후대 래퍼들의 리스펙트에 감사를 표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확실히, 힙합은 리스펙트와 뗄 수 없다.

힙합 속 리스펙트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피니트플로우가 떠오른다. 그리고 인피니트 플로우(Infinite Flow)의 ‘Respect You’는 한국힙합과 리스펙트를 함께 말할 때 가장 중요한 노래다. 이 노래가 세상에 나왔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2000년대 초반의 한국힙합은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힙합의 여러 기본 개념도 합의되지 못한 미성숙한 씬의 환경과 의욕 넘치는 젊은 래퍼들의 혈기가 서로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할까.

제대로 된 한국어 라임은 어떤 것인지, 무엇이 진짜힙합인지에 관한 논란이 빈번했던 때였다. 또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 간의 신경전, 교포 래퍼와 한국 래퍼 간의 대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도 했다.

인피니트 플로우의 ‘Respect You’는 이런 상황 속에서 등장했다. ‘Respect You’에는 당시 한국힙합에 가득한 공격적인 에너지와 완전히 상반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비지니즈와 인피니트 플로우를 결성했던 넋업샨(오른쪽)은 해체 후 2008년부터 소울다이브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비지니즈와 함께 인피니트 플로우를 결성했던 넋업샨(오른쪽)은 해체 후 2008년부터 소울다이브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실제로 당시 인피니트 플로우의 중심멤버였던 넋업샨은 이 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서로 미워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료도 많이 없는데 (우리가 우리끼리) 이럴 필요가 있을까…”

그의 의도는 가사에 그대로 드러난다.

 “사건의 발단 이 세계의 동경으로부터 / 실력향상은 뮤지션 향한 존경에서부터 / 하지만 그 후 어느 순간부턴 존중, 존경보다는 지기가 / 싫다는 이유로 질투와 시기가 / 발동해 생긴 불필요한 오만함…(중략)…인터넷 단어들이 빚어낸 껍데기만 있는 싸움에 굉음에 / rap game에서 지어낸 헛소리는 우리와 상관없네 / 옛 소리로 이내 곱씹어 내뱉으니 / 하나같이 타인을 비판으로 상대해 / 뿌리를 보지 못하는 너의 맘에게”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요즘은 꼭 힙합커뮤니티가 아니라도 ‘힙합단어’가 쓰이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티브이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주 쓰이는 ‘Swag(스웩)’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사실 리스펙트도 비슷하다. 스웩 만큼은 아니지만 리스펙트도 이제 많이 보편화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사람들은 래퍼들의 말투와 손짓을 흉내내며 리스펙트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하지만 인피니트 플로우의 ‘Respect You’는 2002년에 나온 노래였다. 앞서 언급했듯 그 때의 한국힙합은 혼란스럽고 미성숙했다. 리스펙트라는 가치 자체도 생소했을 뿐더러 그 때의 우리는 이 단어가 힙합 속에서 어떠한 의미와 위상을 지니는지도 잘 몰랐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피니트 플로우는 2002년의 한국힙합에 리스펙트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말하자면, 시대를 앞서갔던 셈이다. 이것이 이 노래가 이 시리즈에 포함돼야 하는 이유다.

인피니트 플로우의 선구적인 행보에 리스펙트!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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