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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매혹의 ‘디스포지티프’

[영화 A to Z, 시네마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 Dispositif(디스포지티프)

2020.02.14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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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제 설명에 앞서 먼저 몇 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려 한다. 넓은 시선으로 이 일들을 바라보면, 이번 키워드인 ‘디스포지티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 영화란 무엇인가

1950년대, 비평가 앙드레 바쟁이 책을 발간한다. 이 책은 1958년부터 1962년까지 4권으로 나눠서 출간되지만, 1976년에 통합된 한 권으로 소개된다. 바로 <영화란 무엇인가>이다.

<영화란 무엇인가>를 한 마디로 소개하면, 존재론적 관점에서 ‘다른 고전예술들과 영화의 차별점을 구별해 올바른 미학적 가능성을 고찰’하는 저서이다. 이때, 존재론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몽타주(montage)이다.

몽타주를 통해 영화는 정신적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 관념론적 입장을 예술로 승화해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했던 매체가 ‘영화적 리얼리즘’인 것이다.

그런데 이 논의에는 빠진 부분이 있다. 바쟁은 ‘기계적 예술’로서 영화의 존재론적 관점을 완전히 배제했다. 그의 리얼리즘 미학은 결과적으로 화면에 드러나는 추상적 영역에 대한 고민이었다. 영화의 기계적 특성을 그는 논외로 감추었다.

◆ 시네마의 죽음

1960년대에 텔레비전은 크게 확산된다. ‘현대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장 뤽 고다르가 이 시기에 기존의 리얼리즘을 뒤흔드는 작품들을 내놓는다. 대표작으로 <비브르 사 비>(1962년)를 들 수 있다.

영화 <비브르 사 비>에 출연했던 ‘누벨바그 여신’ 안나 카리나(왼쪽) 와 장 뤽 고다르 감독.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AP Photo/Mario Torrisi, File,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영화 <비브르 사 비>에 출연했던 ‘누벨바그 여신’ 안나 카리나(왼쪽) 와 장 뤽 고다르 감독.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AP Photo/Mario Torrisi, File,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영화 <비브르 사 비>는 총 12개의 분절된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각 에피소드들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분절된 이미지들이 바꾸어 놓은 새로운 영상미학의 영역을 작품은 탐구한다.

그리고 1970년대, 비디오가 세계를 점령한다. 어떤 영화들, 이를테면 실험영화는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이를 ‘시네마의 죽음’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될까? 확실한 것은 고다르가 염세주의적 시선으로 기존의 영화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흘러 1991년, 비평지 <트래픽> 1호에 실린 글들은 현대영화를 바라보는 당대의 시선을 드러낸다. 세르주 다네, 조르조 아감벤, 로셀리니, 그리고 고다르가 쓴 글의 논점은 ‘비디오 점령 이후 시네마의 향방’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영화가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느꼈다. 한 마디로 영화는 죽어가고 있었다. 모든 변화를 수용하고 텅 빈 형식만을 남긴 채, 시네마는 영혼으로부터 탈주한 듯 보였다.

◆ 디스플레이의 패러다임

영화의 사라짐을 고민하는 것, 고백하건대 1990년대에 영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세대로서 나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명료하게도, 내게 있어 영화는 너무 매혹적인 매체였다. 모든 씨네필들이 동의하겠지만, 여전히 그렇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비디오테잎으로 감상하는 것도 내겐 모두 영화이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떠도는 낯선 키워드가 나타났다. 바로 ‘디스포지티프(dispositif)’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비디오 이미지가 성행하던 1970년, 장 루이 보드리는 디스포지티프 개념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1975년에 크리스티앙 메츠가 또 다시 이 용어를 활용했다.

보드리의 관점은 말하자면 바쟁의 관념론과 동떨어져 있다. 보드리는 프로이트의 ‘정신기구’라는 은유를 받아들여서 ‘관성적 메카니즘’의 관점에서 시네마를 해석했다.

일차적으로 디스포지티프는 메카니즘이다. 번역하면 ‘장치’다. 하지만 프로이트적 의미에서 디스포지티프는 심리적, 무의식적 기계 장치이다. 즉, ‘영화적 디스포지티프’란 용어는 카메라나 프로젝터 등의 기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작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심리적 특성까지 포함한다.

영화를 볼 때 관객들은 ‘①깜깜한 극장’의 뒤편에서 ‘②영사’되어 ‘③스크린’에 비치는 이미지를 ‘④지각’한다. 이 모든 조건이 갖춰질 때를 보드리는 ‘기본 장치(appareil de base)’가 성사된다고 설명한다.

이때의 관객들은 갇힌 죄수처럼 움직이지 않고, 따라서 프로덕션의 결과를 ‘환유’해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영화적 디스포지티프는 ‘꿈의 환각’ 작용과 비슷해진다.

또한 보드리는 심리적 주체로서 관객이 특정한 효과를 느낄 때 ‘영화 효과(effet cinema)’가 나타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프로덕션된 필름, 그것의 영사 메카니즘, 그리고 이 모든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관계 등의 총칭이 영화적 디스포지티프이다.

영화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영화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영화시대 이후의 영화

더 이상 기술 자체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아닌 시대가 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극장을 찾는다. 단순히 큰 스크린에 빠지거나, 특수효과나 유려한 편집, 롱테이크를 보기 위해 극장을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영화를 보는가? 영화는 무엇인가? 아주 오래된 질문을 다시 끄집어낸다.

지금에 이르러 학자들은 디스포지티프를 ‘스펙타클 예술의 디스포지티프’라고 수정해서 설명한다. 말하는 것도, 증명하는 것도 아닌 ‘보는 것을 주는 것’이 영화예술의 핵심이란 관점에서다. 이 논의는 한동안 보충되고, 또 수정될 것이다.

시네마의 디스포지티프가 향하는 ‘매력 있는 심리적 리얼리티’나 ‘영화만이 가능한 동일시의 효과’는 여전히 강력하다. 어쩌면 디스포지티프란 용어의 재등장, 그 자체가 매혹적 장치로써 영화의 힘을 방증하는 듯 느껴진다.

이지현

◆ 이지현 영화평론가

200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등단했다. 씨네21, 한국영상자료원, 네이버 영화사전, 한겨레신문 등에 영화 관련 글을 썼고, 대학에서 영화학 강사로 일했다. 2014년에 다큐멘터리 <프랑스인 김명실>을 감독했으며, 현재 독립영화 <세상의 아침>을 작업 중이다. 13inoch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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