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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제주삼촌들 뭘 할까

[김준의 섬섬옥수] 제주도

2020.05.19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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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와 우뭇가사리

제주의 4월을 가슴에 묻고 지나간다. 그렇다고 아픔을 붙잡고 있을 수만 없다. 중산간 삼촌들은 산과 들과 오름으로 고사리를 찾아 나서고, 바닷마을 삼촌들은 우뭇가사리와 톳과 미역을 찾아 바다를 헤맨다. 산사람만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 올리는 것이 고사리요 우미였다. 우미는 제주말로 ‘우뭇가사리’를 말한다.

고사리는 비타만, 칼슘, 인, 단백질이 풍부하다. 겨우내 약해진 기운을 돋는 봄철음식의 식재료이며 우뭇가사리는 여름을 나기 위해 준비하는 해녀음식이기도 하다. 마을목장이나 오름, 마을공동어장 등 주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유자원에서 채취하는 탓에 채취를 둘러싼 규칙도 엄격하다. 봄에 준비해 일년 내내 두고 먹었다.

제주 고사리는 ‘먹고사리’와 ‘볕고사리’로 구분한다. 먹고사리는 곶자왈 등 가시와 덤불 안에서 빛을 받지 않고 자란 통통한 검은빛 고사리를, ‘볕고사리’는 햇볕을 잘 받고 자란 연한 청록색을 띤 고사리이다. 이 둘은 같은 종이지만 높은 지대에 서식한 전혀 다른 양치식물로 고사리와 비슷한 ‘고비’도 있다.

먹고사리 속에 볕고사리 한 개(맨 왼쪽).
먹고사리 속 볕고사리 한 개(맨 왼쪽).

제주할망들은 4월이 지나면 ‘고사리가 세서 먹지 못한다’고 한다. 아이 주먹처럼 곱게 잎을 돌돌 말고 올라오는 고사리가 식용으로 좋다. 잎과 줄기를 활짝 펴기 시작하면 독성을 품기 시작한다. 특히 4월에 곱게 비가 내리고 나면 가시덤불 사이에 고사리 쏘옥 올라온다. 이런 봄비를 ‘고사리장마’라고 한다. 이때 제주삼촌들은 오일장에서 고사리앞치마를 사서 두르고 산으로 간다. 숲에서 고사리를 꺾어 담아 이동하기 편리한 앞치마다. 심지어 고사리 바지도 있다.

봄비 그치면 제주할망 바빠진다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동백동산 선흘마을 삼촌들 20여 명이 날씨 좋은 날 공동으로 고사리를 꺾는 일을 했다. 평소에는 삼삼오오 친한 사람들끼리 고사리를 꺾지만 이날은 마을 부녀회원은 모두 나와야 한다. 게다가 한 사람이 꺾어야 할 고사리양도 5킬로그램으로 정해져 있다. 이렇게 마련한 부녀회기금으로 내내 마을의 좋고 궂은일을 치러낸다.

이날 꺾은 고사리가 90킬로그램. 100그램을 1만원으로 잡는다면 그 액수도 적잖다. 참석하지 않는 주민에게는 궐전 3만원이 부과된다. 고사리 한 개를 꺾는데 배꼽인사를 넘어서 오체투지를 하듯 절을 한 번씩 해야 한다. 때로는 여기저기 가시에 찔려야 하고 간혹 피도 흘려야 한다. 그래도 봄이오면 어김없이 고사리밭으로 향하는 것은 단순한 식재료 마련이 아니라 통과의례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고사리콥대사니지짐(사진=양용진 낭푼밥상 대표 제공).
고사리콥대사니지짐(사진=양용진 낭푼밥상 대표 제공).

제사와 명절에 쓸 고사리를 이때 꺾어서 말려두어야 한다. 이때 꺾지 못하면 오일장에서 사서라도 준비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육지에서 제주로 고사리가 들어오기도 한다. 고사리를 꺾기 위해 육지 사람들이 제주에 들어와 한달여 머무는 사람도 있는데, 반대로 육지 고사리가 바다건너 들어오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해서 제주할망은 오일장에서도 육지산인지 제주산인지 묻는 일이 종종 있다.

제주사람들은 고사리를 말려 두었다가 고사리고기지짐, 고사리보말지짐, 고사리복쟁이지짐 등을 만든다. 산사람만 아니라 제물로 고사리탕쉬를 올리기도 한다. 잔치집에서는 고사리육계장과 고사리잡채도 준비한다. 독특하게 봄이 제철인 풋마늘대를 이용해 고사리콥대사니지짐을 한다. 콥대사니는 풋마을대를, 지짐은 조림의 제주말이다.

바람 불고 나며 제주할망 구덕들고 바닷가로 나선다

바닷마을 할망들은 고사리 앞치마 대신 구덕이나 포대를 지고 물 빠진 바다로 나선다. 갯바위에서 자라는 우뭇가사리와 톳과 미역을 뜯기 위해서다. 해녀들이 물질해서 채취하는 곳은 마을에서 채취를 허락(이를 ‘해경’ 혹은 ‘해체’라 함)해야 하지만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곳은 주민들이 뜯을 수 있다. 또 파도에 뜯겨서 해안으로 밀려온 해초들을 줍기도 한다.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하도리 마을주민.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하도리 마을주민.

제주의 봄바람은 빌려서라도 인다. 그만큼 잦다. 이렇게 봄바람이 잦은 날, 우미와 메역(미역)이 바닷가로 많이 밀려온다. 바닷마을 할망들은 구덕과 자루를 들고 해안으로 나간다. 옛날에는 바닷가에 밀려온 해초도 마음대로 채취하지 못했다. 해초는 봄농사를 위한 거름으로 이용하고 우뭇가사리나 미역과 몸(모자반)은 식용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 마을사람들이 줍고 뜯는 것을 허락하는 편이다. 우미는 고사리와 마찬가지로 마을공동기금을 마련하는 재원이자 해녀들의 소득원이다. 일제강점기 우도와 구좌의 해녀들이 항일운동에 참여하는 계기도 우미의 수탈과 과도한 세금부과였다. 그 만큼 우미는 제주 바다밭 해초 중 경제성이 높았다.
채취하는 시기와 시간을 엄격하게 정해 관리했으며, 파도에 밀려온 해초마저도 구간을 나누어 팔기도 했다. 갯바위에서 뜯은 우미는 민물에 여러번 씻어 전조시킨 후 물에 넣어 삶아 체에 걸러 나온 국물을 굳히려는 우물물이 된다. 이를 제주에서는 ‘우미’라고 한다. 여름에 우미냉국 세 그릇이면 더위를 이긴다고 한다.
우미냉국(사진=양용진 낭푼밥상 대표 제공).
우미냉국(사진=양용진 낭푼밥상 대표 제공).
여름으로 가는 길목 사월과 오월은 집안 살림만 아니라 마을 살림을 준비하는 제주의 삼촌과 할망들의 손길과 발길이 잦다. 올레 길을 걷는 여행객들이 기웃거리며 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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