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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리기? <최후의 심판>이 심판한다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미술품 복원 어디까지 적당할까?

2017.06.27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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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미술품을 성공적으로 복원할 수는 없다

사람이 병들면 치료하듯 미술작품도 손상되면 그에 따른 적절한 처방과 치료를 해야 한다. 미술작품을 본래 모습대로 보존하거나 회복시키는 복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작품 중에는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복원한 작품들이 많다. 복원(復原)은 말 그대로 사물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은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재료와 방법까지 원래 사물이 지녔던 상태로 되돌리는 수복(修復)의 의미가 있다.

원형이 손상된 미술품을 발견하거나 소장하고 있을 때 원래의 형태로 복원하고 싶은 마음은 국가나 개인이나 비슷하다. 그러나 복원은 복원대상의 상태와 복원범위에 따라 실로 다양하다. 이에 모든 미술품을 성공적으로 복원할 수는 없다. 미술사에서 복원의 성과가 확연히 드러나는 몇 가지 사례는 복원의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말해준다.

복원한 미술작품의 대표 사례로 시스티나 성당의 걸작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있다. <최후의 심판>은 창세기 제작 후 29년 만에 같은 공간 내 벽면에 5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으로 미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대표 작품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벽화는 그을음, 얼룩, 먼지 등이 쌓여 원작의 색을 잃어갔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복원이었다. 미켈란젤로 사후 수백 년이 흐른 1990년대 복원을 통해 450여 년 동안 그림 표면을 덮고 있던 이물질들을 걷어내는 복원작업이 이뤄졌다.

그 결과 어둡고 칙칙한 색이 걷히면서 밝고 선명한 색채를 되찾았다.(미켈란젤로 그림이 지닌 특유의 중후한 색채가 경박한 색채로 변했다는 비판도 강하다)

좌: 미켈린젤로 <최후의 심판> 1536~41년, 높이 18미터, 폭10미터, 전체면적 180.21제곱미터(약55평) 복원 전 / 우: 복원 후
좌: 미켈린젤로 <최후의 심판> 1536~41년, 높이 18미터, 폭10미터, 전체면적 180.21제곱미터(약55평) 복원 전 / 우: 복원 후

최후의 심판 복원과정에서 일어난 최대의 논쟁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원형 그대로 누드로 복원하느냐?’, 아니면 미켈란젤로 사후 그의 수제자였던 다니엘 다 볼테라(Daniele da Volterra)가 ‘중요한 부위를 가린 천들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복원하느냐?’ 였다.

결국에 <최후의 심판>이 겪은 숱한 역경까지 하나의 역사이며 위대한 작품이 남겨지는 과정이라는 판단으로 볼테라가 개작한 부분을 보존한 상태로 복원되었다. 복원 기준과 상태에 관한 찬반이 뜨거웠지만, <최후의 심판>은 미술작품의 복원에 따른 많은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데 모델이 된 점에서 나름의 성과를 냈다.

이에 견주어 르네상스 시대의 또 하나의 걸작인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식당내부 벽면에 그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실패한 복원에 속한다. 벽의 박락과 훼손이 너무 심해 원래의 복원이 힘든 상태이다.

엄밀하게 <최후의 만찬> 경우는 복원의 기술적 면보다 벽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습기가 많음) 때문에 복원이 어렵다. 현재 관람기준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도 훼손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두 걸작처럼 프레스코(fresco)그림은 재료와 환경의 특성상 원형의 보존과 수복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미술작품을 복원하는 과정에서는 때로 예상하지 못한 일들에 부딪히기도 한다.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프라 바르톨로메오(Bartolommeo, Fra, 1472~1517)의 <비탄(Lamentation)>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바르톨로메오는 라파엘로와 동시대에 활동하며 한 시대를 주름잡던 유명화가이다. 피렌체의 르네상스 전성기 양식을 고집했던 그의 작품은 17세기 부자들의 핵심 컬렉션대상이었다. <비탄>은 토스카나 어느 지방 대공이 복음교회에 있던 작품을 사들여 소유하던 그림이었다.

그런데 당시 소장가 중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소장 작품을 수정하기도 했는데, <비탄>도 대공의 취향에 따라 수정되는 불행을 겪었다. 그로부터 수백 년 후인 1988년, 피티 궁전(Palazzo Pitti)에 근무하는 학예사들이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비탄>를 복원했다.

복원과정에서 바르톨로메오의 화풍의 특징인 인물의 깊이 있는 감정표현이 한층 되살아났다. 중앙의 피에타 (Pietà)를 중심으로 전도자 요한과 사랑하는 제자, 막달레나 마리아 등의 슬픈 감정이 잘 드러났다. 문제는 검은색으로 덧칠한 배경을 걷어내면서부터 생겼다.

뜻밖에 화폭일부가 잘려나간 것을 알게 되었다. 잘려나간 부위는 베드로와 바울의 머리 부분으로 소장자인 대공의 입맛대로 수정하면서 훼손된 부위였다. 원작이 이미 훼손된 상태에서 복원했기 때문에 바르톨로메오가 그렸을 당시의 원형 복원은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복원을 통해 <비탄>원작의 구성은 알게 되었지만, 복원은 폐단으로 남게 되었다. 어쩌면 그림의 감상적 측면에서 대공의 진열실에 걸려있던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이처럼 회화(패널화 또는 프레스코화)는 평면에 그려진 것으로 밑그림에 어떤 그림이 숨겨있는지, 화가가 어떤 상태로 마무리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복원 여부와 복원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프라 바르톨로메오 <비탄Lamentation>, 1511-12, Oil on wood, 158×199 cm, 좌: 복원 전, 우: 복원 후
프라 바르톨로메오 <비탄Lamentation>, 1511-12, Oil on wood, 158×199 cm, 좌: 복원 전, 우: 복원 후

그렇다면 조각 분야는 어떨까?

조각 분야에서 복원은 회화와 다르다. 색채나 화면구성보다는 원형이 지닌 형태에 주목하게 된다. 입체인 만큼 정확한 원형모습이 아니면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럽기 쉽다. 그래서 정확한 원형 복원을 위해서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조각의 대표적 복원사례로 그리스 시대의 명작인 사모트라케섬의 <승리의 여신>, <라오콘>,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을 들 수 있다. 먼저, <승리의 여신>은 처음 발굴되었을 때 원형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파손되어 있었다. 예시 도판에서 보듯 발견 당시 150여 개의 조각들(A)이었다. 1879년 루브르 첫 전시에서 가슴 아래 부분만 복원된 상태(B)로 전시하는데 15년이 걸렸다.

이후  그리스시대 제작한 승리의 여신 소상(小像,C)들과 동전에 새겨진 도형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복원에 적용하고, 복원기술(D-날개복제)을 통해 현재의 형태(E)로 복원시켰다. 복원의 하이라이트는 한쪽 날개를 복제하여 반대쪽 날개로 만든 부분이었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 발굴부터 복원까지 과정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 발굴부터 복원까지 과정.

미의 전형으로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도 발견 당시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몸체는 상하 두 개로 분리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양팔이 없는 상태였다. 승리의 여신상처럼 참고할 조각이나 사료가 없어 원형대로 복원이 어려웠다. 많은 전문가가 비너스 몸에 어울리는 팔의 형태를 제안(도판 A와 같은 팔 모양을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함)했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러울 뿐 어떤 동작도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두 팔이 없는 상태에서 상상으로 비너스 원형을 떠올리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하에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비너스 상>의 복원시도는 확실성이 없는 경우 무리한 복원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판 2> A: 밀로의 비너스 상(좌-시뮬레이션 재현, 우-현재의 비너스)/ B: 라오콘 상(좌-팔이 발견되기 전 복원상, 우-현재의 라오콘)
<도판 2> A: 밀로의 비너스 상(좌-시뮬레이션 재현, 우-현재의 비너스)/ B: 라오콘 상(좌-팔이 발견되기 전 복원상, 우-현재의 라오콘)

그리스 최고의 걸작인 <라오콘> 역시 발견 당시는 지금의 모습과 달랐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라오콘과 두 아들의 오른쪽 팔은 없었다. 당시 유명한 조각들이 라오콘의 복원을 위해 수많은 모작을 만들며 연구했다.

그리고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라오콘의 팔이 발견되면서, 복원했던 형태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형 모습은 처음 복원한 형태와 완전히 달랐다. 오른팔을 등 뒤로 젖힌 모습인 현재의 라오콘과 비교해보면 후대의 조각가가 그리스인의 조형 감각을 따라잡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팔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색하게 오른팔을 하늘로 뻗고 있는 라오콘과 두 아들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것이다. 

예술작품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은 전통과 역사를 되살리는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뛰어난 복원기술을 보유하고, 보존전문가(Conservator)의 전문성과 역할을 중시해온 선진국(유럽)의 복원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술 재료가 영구적이지 않은 한 미술작품의 수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치료와 처방을 하는 일이다. 궁극에 예술작품은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복원을 하느냐에 따라 명작의 수명이 좌우되고, 무엇보다 명작이 지닌 감동의 지속 여부도 결정된다.

추천 참고문헌 및 도판: ‘프라 바르톨로메오 부분’- 필리프 코스타마나 지음, 김세은 옮김『가치를 알아보는 눈, 안목에 대하여』 아날로그, 2017.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6), ANCI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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