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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외로운가요

2018.11.20 한기봉 언론중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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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로울 때다. 가만히 있어도 그냥 쓸쓸하다. 외로워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 있다면 그건 요즘 같은 11월 중하순이다. 만추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냥 소소한 늦가을이다. 아름다운 건 허공에서 다 스러졌다. 그 화려한 것들이 무심하게 발에 밟힌다. 황홀한 절정은 결국 소리 없는 소멸의 예고였음을.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지만 삭풍은 아직 불지 않는다. 곧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로 내려갈 것이다. 첫눈이 차비를 하고 있다. 옷장 앞에서 주저하는 것처럼 누굴 만나기에도 애매한 때다. 송년 건배사를 하기에는 좀 이르다. 길을 나서도 딱히 갈 곳이 없다. 회색의 환절기다.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환절기다. 기다릴 희망도, 마주할 절망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특이한 뉴스를 봤다. 외로움을 국가가 해소시켜주겠다는 것이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10월 15일 ‘외로움 대응 전략’이란 걸 발표했다. 국가 차원에서 국민들의 외로움을 관리하는 세계 최초의 종합 대책이라고 한다. 메이 총리가 외로운 국민 앞에서 말했다. “외로움은 우리 시대 건강의 커다란 적이자 질병입니다.”

그 내용이 궁금해 찾아봤다. 1800만 파운드(약 267억 원)를 들여 지역사회에 카페, 정원, 미술작업 공간 등을 만들어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늘리겠다, 장기적으로 의료보험 재정을 국민들의 걷기 모임, 요리 강좌, 예술 창작 같은 교류 활동에 쓰겠다, 의사들이 외로움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동호회 가입 같은 ‘사회적 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법을 만들겠다, 이메일 때문에 업무가 줄어든 우체부들이 혼자 사는 사람을 찾아가 말동무를 하게 하겠다….

메이 총리는 ‘모범적’ 사례를 하나 소개했다. 영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 세인스베리가 전국 매장에 ‘대화탁자’(Talking Tables)라는 걸 비치했다는 것이다. 누구든 외로움을 느낀 사람이 여기에 앉으면 다른 사람이 다가가 말을 걸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사람들을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 나오게 해서 대면소통을 늘려 외로움을 덜 느끼게 하겠다는 것이 영국 정부의 외로움 해소 정책이다. 딴 나라 정책에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진 않다.  모니터와 액정화면, 자판과 소셜 미디어가 체온과 표정을 대신하는 이 시대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맞대는 소통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2017년 9월 6일 낮 12시 작가 마광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너무 힘든데 와 줄 수 없니?” 친구는 세 시에 간다고 했고 작가의 주검은 한 시에 발견됐다. “지금 와 줄 수 없니?” 나는 아직도 그 말이 너무 짠하다.

영국의 외로움 대응 전략은 ‘외로움 담당 장관’이 만들었다. 영국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두 명의 장관이 있다. ‘Minister for Loneliness’와 ‘자살예방 장관’이다. 앞엣것은 국내 언론이 ‘외로움 담당 장관’이라고 번역했다. 둘 다 올해에 만들었다.

이 부서가 만든 보고서를 보면 영국 국민 6600만 명 중 약 7분의 1인 900만 명 이상이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 외로움이 영국 경제에 320억 파운드(47조 원)의 경제 부담을 끼치며,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도 나왔다. 보고서는 “사람들은 다이어트에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는 데는 거의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인간의 외로움도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대상인가, 외로움이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인데 국가가 대체 무얼 어떻게 해주겠다는 걸까. 물론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하고 국민의 정신건강을 살피는 건 중요하다. 우리 정부도 자살예방을 100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선정했고 지자체마다 자살예방센터라는 걸 만들었다. 영국 사람들만 유독 더 외로운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자살률로 치면 우리나라를 따라올 데도 없는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1년에 1만 5000명 가까이 자살한다. 자살이 4대 사망 원인 중 하나다. 자살률은 10만 명 당 25.8명.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은 11.6명이다.)

각설하고 아무튼 외로움이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됐다는 것만은 신기원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사람들을 만난다고 외로움이 치유되는가. 영국 정부의 외로움 대책이란 결국은 사회적 고립과 소외의 개선 방안일 뿐이다. 그건 사회적 외로움이다. 빈부격차, 실업, 비혼, 고령화, 가정해체 같은 사회적 구조에서 생기는 것이고 어느 정도 국가 정책이 있을 수 있다. 후천적 문제다. 하지만 사람의 어깨 위에는 훨씬 본질적이고 숙명적인 외로움이 앉아 있다.

그 외로움은 어찌 할 건가. 그건 누가 풀어줄 건가. 오롯이 자기 자신의 숙제다. 누구는 떨어지는 단풍이 외롭고, 누구는 불어오는 봄바람이 외롭듯 외로움의 색깔과 질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도 외로움에 자주 빠진다. 내 나이쯤 들면 더 자주 외로움병에 걸린다. 하지만 그건 내 과오도, 약점도 아니다.

외로움을 관리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냥 같이 사는 거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외로움은 “나를 키우며/나랑 함께 자라는/하나뿐인 내/어깨동무”다(허영자, ‘고독’). 외로움이 없으면 산 사람이 아니다. 살아있는 자만이 뼈가 시린 것이다.

시인 정호승은 노래했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시 ‘수선화에게’)
이 세상 외롭지 않은 피사체는 없다. 정물도 외롭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지고,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같은 시).

외로움은 절망이 아니다. 희망이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외로울 때는 뼈저리게 외로운 시를 읽어야 한다. 존재론적 외로움을 직시할 때, 외로움이 나를 위안한다.
“그대 떠나고 난 뒤/가을 겨울 봄 다 가도록 외로웠지만/그대 곁에 있던 날들도/내 속에서 나를 떠나지 않는 외로움으로/나는 슬펐다”(도종환, ‘섬’)

그럼? 결국은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게 나의 외로움 처방전이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흔들리지 않고, 젖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도, 젖지 않고 가는 삶도 없다(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나의 가장 외로운 11월이 간다.

한기봉

◆ 한기봉 언론중재위원/칼럼니스트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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