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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구 지휘 도편수 신응수 대목장

“300~400년 된 소나무에 1000년 넘을 새 생명 불어 넣어”

2013.05.03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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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년, 사백년된 소나무를 천년 넘게 이어가도록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 그것이 목수가 하는 일입니다. 숭례문 복구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요. 천년이 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숭례문을 목표로 복구공사에 임했죠.”

신응수 대목장.
숭례문 복구 도편수인 신응수 대목장.
숭례문 복구공사의 도편수 신응수 대목장(71)은 화마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숭례문의 늠름한 위용을 국민들에게 선뵐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복구는 철저한 고증이 바탕이 돼야 하죠. 전통기법 그대로 기본을 살리는 게 중요해요. 조선초기 모습을 그대로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어요.”

숭례문 복구공사의 도편수(목조 건축의 총감독)로서 복구작업을 지휘한 신 대목장은 경주 불국사·수원 화성·창덕궁·경복궁·광화문·숭례문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재와 전통 건축물 복원에 거의 다 참여했다.

그는 스무 살 때인 1962년 부편수였던 이광규 선생 밑에서 서울 숭례문 중수공사를 시작으로 숭례문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62년 그는 스승 이광규 씨와 함께 숭례문 중수 공사에 참여했고, 그 현장에서 도편수인 조원재 씨를 만났다.

당시 숭례문 중수 공사에는 조 씨가 도편수로, 이 씨가 부편수로 참여했다. 이제 그는 스승들의 가르침을 따라 도편수로서 이번 숭례문 복구에 참여하게 된 것. 그 소회는 남달랐다.

“장인은 자기 이름 석 자에 사명감을 갖고 임해야 해요. 세월이 가도 내 이름 석 자가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 새겨질 수 있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했죠. 스승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최선을 다한 숭례문 복구라 더욱 의미가 깊어요.”

신응수 대목장은 “국민 다수가 화재 당시 숭례문이 모두 타 버렸다고 알지만 이는 오해”라며 “복원이 아닌 ‘복구’가 맞는 말”이라고 바로 잡았다.

오는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을 앞둔 그는 지금 “최선을 다했다”며 “이번 숭례문 복구를 계기로 국민 모두가 각자 문화유산에 주인 의식을 갖고 내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아껴야 한다”고 밝혔다. 

숭례문 복구 기념식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지난달 24일 숭례문 현장에서 신응수 대목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신응수 대목장은 “주인의식을 갖고 문화재를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숭례문 복구공사의 도편수인 신응수 대목장.

- 목수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58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충북 청원을 떠나 사촌형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는데 취직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골로 내려가지 않고 목수인 사촌형을 따라다니며 일을 시작한 게 나무를 처음 접한 계기가 됐다. 20살 때 이광규 선생님을 봉은사 절 공사장에서 만났는데 1962년도에 숭례문 중수 공사 때 다시 뵙게 됐다. 남다른 인연 아닌가.(웃음) 숭례문 중수 공사 때 조원재 선생님을 만났다. 당시 조 선생님 방 한켠에서 도면을 그리며 일을 배웠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이광규, 조원재 두 분 선생님 덕분이다.

- 복구공사가 마무리 됐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이광규, 조원재 두분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다. 50년 전 스승들이 중수를 했고 제자가 다시 책임졌으니 더욱 어깨가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최대한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조선 초기 때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후대에 길이길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 숭례문 복구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기본을 살리는 복구가 핵심이었다. 기초자료를 토대로 최대한 전통 그대로 복구하려고 노력했다. 옛 형식 그대로 복구하기 위해 많은 고증을 거쳤다.

- 복구공사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처마다. 처마의 선은 궁궐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처마는 한옥의 미적인 면과 구조적인 면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궁궐은 온화하면서도 품위가 있어야 하고 웅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응수 대목장은 이번 숭례문 복구를 계기로 국민들이 좀 더 문화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문화재를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신응수 대목장은 이번 숭례문 복구를 계기로 국민들이 좀 더 문화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문화재를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 목재의 기본이 나무 아닌가. 소나무를 구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어떤 건물이든 목재 공사가 가장 중요하다. 좋은 목재를 고르기 위해 우리나라 소나무를 사용했다. 쉽게 부패하지 않고 오래가기 때문이다. 좋은 목재는 소나무, 속이 붉고 나이테가 촘촘한 적송이다. 특히 적송은 수명이 길어 훌륭한 재목이 된다. 하지만 구하기 쉽지 않다. 나무를 공수해오는 것 부터 베고 목재를 일일이 손으로 다 다듬었다. 아기 다루듯 소중히 다뤘다. 국민들이 기증해주신 나무들도 감사하게 잘 쓰였다.

- 공사 중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이번 복구 공사에는 막대한 인력이 투입됐고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현장에서 함께 했다. 복구 과정에서 이런저런 오해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모두 묵묵히 자신의 일들을 해냈다. 숭례문 도편수인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숭례문 복구에 힘을 쏟았다. 국민들도 숭례문 복구의 보이지 않는 곳에는 끊임없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 숭례문 이외에도 경복궁 등 주요 전통 건축물 공사에 참여했다. 건축물을 공사할 때 가장 염두해 두는 점은.

건축물이 어떻게 하면 오래갈 수 있는 지, 그것을 가장 우선시한다. 즉 생명력이다. 오랜시간 그 품위와 위용을 잃지 않고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 한평생 목수로 살아왔다. 이번 숭례문 복구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열 여섯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벌써 56년이 흘렀다. 한 평생 최선을 다해 한 길을 걸어가는 것, 자기 이름 석자를 걸고 일을 한다는 것, 죽어서도 자기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장인정신이라 생각한다. 후대에 내 이름 석자 남기는 것, 후대에 부끄럽지 않게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숭례문 복구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문화재를 진심으로 내 것과 같이 아껴주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 집이라는 생각을 갖고 주인의식을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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