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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녹지 않은 판문점, 정상회담으로 화창한 봄날 맞길”

[초대 인터뷰] JSA 남한 경비대 출신 김태정·DMZ 북한 GP 방송요원 출신 주승현

2018.04.04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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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남, 정말 괜찮을까. 약속을 잡으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응할지도 걱정이었다. 김태정 JSA판문점전우회 사무차장은 2005~2007년 JSA 경비대원으로 복무했다. 주승현 전주기전대 군사학과 교수는 1997~2002년 북한 GP에서 무전병·방송병으로 근무했다. 같은 시기에 근무한 건 아니었지만 서로는 틀림없이 적이었다.

만남을 거절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분단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라고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런데 양쪽 모두 흔쾌히 만남을 수락했다.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약속 장소를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로 정했다. 날씨가 좋으면 북한이 훤히 보이는 탓에 임진각과 함께 실향민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비록 판문점·비무장지대를 찾을 수는 없어도 두 사람에게 나름 의미 있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남북 병사의 만남에 통일전망대가 주는 힘을 믿었다.

김태정 JSA판문점전우회 사무차장(좌)과 주승현 전주기전대 교수.(사진=C영상미디어)
김태정 JSA판문점전우회 사무차장(좌)과 주승현 전주기전대 교수.(사진=C영상미디어)

한 살 터울의 두 사람, “형님이시네요”

첫 만남은 어색했다.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서로 나이를 밝히자 “형님이시네요”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두 사람은 한 살 터울이었다. 몇 차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었다. 긴장감 속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작용하는 것 같았다. ‘이 알 수 없는 익숙함은 뭐지?’ 아뿔싸! 불현듯 깨달았다. 영락없이 군대 이야기하는 남성들이었다. 만남의 주제 자체가 복무 이야기로 흘러가는 게 당연했지만 예상치 못했다. 서로 다른 군복을 입었고 총구가 향한 방향이 달랐다. 그러나 저마다 부대 이야기, 훈련에 얽힌 일화를 떠올리며 공통점을 발견하고 맞장구치고 있었다.

놀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이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처음에는 북한군을 보면서 ‘우리나라 말을 쓰는구나’ 생각했어요. 너무 당연한 일인데 색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심리적 거리감 때문인 것 같아요.”(김태정)

같은 말을 쓰는 게 새삼 놀라웠다는 말에 의아했지만 이내 수긍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반공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곳에서 온 동년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주승현 교수는 2002년 비무장지대를 건넜다. 그의 인생이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5분. 이마저도 뛰면 바로 올 수 있지만 철책, 지뢰, 매복한 경계 근무자들을 피하다가 늦어졌단다. 가까운 남북의 거리가 분단의 세월 앞에서 참 무색해졌다. 그들이 복무하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전 북한에서 직업 군인의 꿈을 갖고 열여섯 살에 입대했어요. 북한은 전투적 사회예요. 최전방 군인은 선망의 대상으로 그만한 사회적 우대도 따랐습니다. 특히 판문점 군인은 ‘공화국(북한)·인민군(북한군)의 얼굴’이라고 부를 정도였죠. 저는 비무장지대(DMZ)에서 무전병, 심리전 방송요원으로 있었어요.”(주승현)

그가 맡았던 심리전 방송요원은 평양에서 하는 방송을 비무장지대에 중계하고 남한에서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를 북한 주민들이 듣지 못하도록 동시에 다른 방송을 틀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일행이 파주를 찾은 이날도 북쪽을 향해 퍼지는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공동경비구역으로 잘 알려진 JSA 경비대대 경비중대에서 근무했습니다. 공동경비구역이 다른 부대와 다른 점은 일과시간 개념이 없다는 점이에요. 한 달에 절반을 비상대기로 전투복을 입은 채 잠든 적도 있어요. 그리고 흔히 경비대원들이 판문점에 계속 서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해예요. 평소는 초소에서 근무하다가 남측 관광객이 있을 때면 관광객을 보호하기 위해 나가요. 북한군도 북측 관광객이 나오면 경호대가 내려옵니다.”(김태정)

JSA는 군사분계선, 판문점, 인근 GP의 경비·경계 임무뿐 아니라 비무장지대 대성동 마을의 치안을 유지하는 일도 담당한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

이야기는 점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두 사람은 초년병 시절 훈련받던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GP를 지나기만 해도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북한 GP가 바로 눈앞에 보여서 늘 긴장한 채로 지냈죠. 그런데 건너편도 사람 사는 곳이더라고요. 결국 긴장도 적응이 돼버렸어요.”(김태정)

“1997년쯤 군사분계선 관리가 미흡하다는 최고사령관 지적이 있었나 봐요. 순찰을 강화했죠. 군사분계선을 지나 인근 GP까지 지뢰를 묻어뒀는데 순찰할 때면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살짝살짝 남하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때문에 강원 고성에서는 싸움도 벌어졌어요.”(주승현)
점점 이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비무장지대에서 야간 매복 작전에 들어갈 때 엄청 무서웠어요. 정적만이 감돌아요. 거기에 선임들이 ‘간첩이 와서 목 따고 간 곳’이라고 겁을 주면 밤새 한숨도 못 자는 거죠. 잠든 선임들이 얼마나 얄미운지.”(주승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우리도 그랬어요. GP 경계를 설 때 선임들이 말해줘요. ‘북에서 내려와 경비병의 목을 걸어놓고 간 적이 있다’고. 가뜩이나 무서운데 그런 말을 들으면 기합이 더 바짝 들어갔던 것 같아요.”(김태정)

훈련 얘기에 야속한 선임들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이유 모를 동질감이 형성되는 듯했다. 때론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제가 복무하던 기간에는 대북방송이 중단됐어요. 선임들은 서로 확성기 방송을 해대면 엄청 시끄러웠다고 하더라고요. 확성기 방송에 북한군이 참 예민했다고 하던데요?”(김태정)

“글쎄요. 방송에 동요되기보다는 소음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요즘은 아이돌 음악이 주로 나온다는데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북에 있을 때는 주로 7080 가요가 나왔어요. 오히려 요즘 아이돌 노래보다 정서에 더 맞는 것 같아요. 그때는 듣고 넘겼는데 확성기에 나왔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기억에 남아 있는 걸 한국에 와서 알았어요. 이 곡은 지금 제 십팔번 곡이에요.”(주승현)

대중에게 판문점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모습으로 떠오른다. 판문점은 일반인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 속 잔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군복, 장비 등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맥을 이어가는 남북한 병사의 교류에 대해서는 사실 관계가 분분했다.

1976년 이른바 도끼만행사건 이후 유엔사와 북한군의 교류가 전면 통제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998년 판문점으로 귀순한 변용관 상위는 “술, 담배 등 선물과 주소를 교환한 일이 있다”고 증언했다.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자 우리 사회가 들썩였다.

이에 대해 김태정 사무차장은 “적어도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CCTV가 판문점 일대를 모두 비추고 있어 사각지대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 영화 속 상상력은 영화 속에 묻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북한 경비병은 대다수가 심리 장교다. 욕설을 뱉고 돌멩이를 던지고 랜턴으로 불빛을 비추는 등 크고 작은 접촉을 수시로 시도한다. 그러나 한국의 JSA 대원들이 대응하지 않아 북한군의 행위도 많이 줄었단다. 제3자의 시선에는 심리 전술 외에 우리 측에 대한 호기심도 섞여 있어 보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남북관계는 커다란 변곡점을 맞았다. 분명 그들의 군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을 터였다. 남북관계가 나쁘면 군 생활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좋아도 이 지역의 군 생활은 여전히 힘들다. 그냥 ‘이벤트(사건)’가 생길 때마다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남북 모두 그렇다. 김태정 사무차장은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했던 일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경계 태세가 강화되고 유난히도 긴장감이 떠돌던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주승현 교수는 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을 떠올렸다. 정상회담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준 건 의외로 북한을 향한 남한의 확성기였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정말 남북 정상이 만났다. 변화는 그다음부터였다. 그는 “정상회담 후 비무장지대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다”고 했다. 후방에서 개성으로 지원 병력을 보내 지뢰 제거가 시작됐다. 지뢰가 놓였던 자리에 도로와 철길이 들어섰다. GP 초소가 이동하고 포도 철수됐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실감나지 않았다.

판문점은 전쟁의 상처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는 인기 관광 코스다. 세계적 축제인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IT 강국의 위상을 자랑해도 그들이 바라보는 단면에 분단이 있다. 한반도의 민낯을 보여주는 대표 지역인 셈이다.

주승현 교수와 김태정 사무차장이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주승현 교수와 김태정 사무차장이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남북 상생 방안 모색하는 기회 됐으면

오는 4월 27일 , ‘2018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게 돼 또 한 번 전 세계의 이목이 판문점을 향하게 됐다. 이번에는 대화의 출구로서다. 판문점이 생긴 계기를 떠올려보면 전쟁을 멈추기 위해,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어떤 소회를 갖고 있을까.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적 셈법이 간단치만은 않다고 봅니다. 다만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정부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대화도 한 방법이에요. 이대로 갈등을 지속한다면 남한도 ‘섬’으로 살 수밖에 없고 북한도 국제사회에서 계속 고립될 거예요. 오는 4월 27일에 있을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김태정)

“제게 비무장지대는 애증의 고향과도 같아요. 그래서인지 임진각·통일전망대를 습관적으로 찾고 있어요. 아마 수백 번은 왔을 거예요. 비무장지대는 분단의 시작이자 끝인 지점이에요. 판문점은 그 분단의 중심이라 할 수 있죠.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것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73년간 이어진 분단에 대한 예의고 화해·통일로 가는 길이 되겠죠. 정상회담이 남북 평화의 물꼬를 트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길 바라요.”(주승현)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 군대 이야기보다 재밌었다. 미세먼지에 가려 북녘 땅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꽃이 피고 있었다. 봄을 알리는 바람이 뺨을 스쳤다. 한반도 봄바람이 이곳, 파주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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