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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딸아이와 함께 본 ‘유관순 이야기’

3.1운동 100주년 맞아 다시 돌아본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

2019.03.06 정책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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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226일 오전 백범기념관에서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올바른 역사관과 애국정신을 길러 민족정기를 드높이고 국민통합에 기여한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로 서훈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유관순 열사에게는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으나, 유 열사의 공적을 돌이켜봤을 때 훈격이 낮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 보훈처는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수여해야 한다는 국민청원과 국회 특별법 제정 노력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국민적 열망이 있었다고 훈격 격상 배경을 설명했다.

이화학당 학생 시절의 유관순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유관순 열사는 앳되고 야무진 학생이었다. 사진 오른쪽 맨 위가 유관순이다.

이렇듯 국내외 안팎으로 유관순 열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정작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어떨까? 1919년 그해 18세의 유관순은 이화학당 학생이었다. 지금 필자의 아이와 같은 나이인 18세에 유관순은 3.1독립만세운동으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들고 고향 천안으로 내려갔다. 4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현장에서 체포돼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 스틸 이미지.(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 스틸 이미지.(출처=네이버 영화)

227일부터 전국의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는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19193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수많은 여자들이 3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에 갇혔다. 유관순은 독립만세를 주도하다 독방에 갇혀 끔찍한 고문 끝에 후유증으로 옥사한다.

일본군 간수 앞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나는 대한사람이다. 나라를 위해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도 죄가 되느냐를 당당하게 말했던 유관순의 숭고한 죽음에 관객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독립문역 근처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시관이다.
전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로 나오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보인다.

영화가 끝난 뒤 곧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향했다. 1908년부터 1987년까지 80년간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역사적 현장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고 사형했던 끔찍한 곳이다. 억압과 공포의 상징이었던 서대문형무소 또한 우리 근, 현대사의 일부이기에 현장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유관순과 유관순이 수감되었던 여옥사 8호방이다.
위는 유관순 열사가 수감될 당시의 사진으로 고문으로 얼굴이 부었다. 아래는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여옥사 8호 감방.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여옥사 8호 감방에 갔다. 한겨울에 난방도 되지 않았던 차디찬 감옥 안이 영상의 따스한 봄기운에도 아직 썰렁하다. 수감된 그들에게 차라리 추위와 허기는 견딜 수 있었다. 이곳을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이 유관순을 추모하면서 국화꽃 송이를 갖다 놓았다.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에 있는 이화박물관 입구다.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에 있는 이화박물관 입구다.

정동에 위치한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은 이화학당이다. 기독교 선교사의 추천으로 천안에서 서울로 유학했던 유관순 열사가 재학 중이던 학교였다

이화학당 교실을 재현한 공간의 벽면에는 유관순이 친구들과 찍은 단체사진이 있다. 고문을 받아서 퉁퉁 부은 얼굴이 아닌 앳되고 야무진 여학생의 얼굴이다. 그리고 박물관 뒤편에 유관순 동상과 유관순이 빨래하던 우물이 남아 있다.

이화박물관에서 유관순을 기억하는
이화박물관.
 
한창 꿈 많았을 학당시절을 뒤로한 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 그녀의 비장한 모습이 겹쳐진다. 죽는 순간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라는 유언을 남겼던 그녀를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유관순을 기억하고 있다. 특히 삼일절에 즈음해서 더욱 생각난다.

필자가 유관순 열사의 숨결과 발자취를 쫓아 영화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이화박물관을 다녔듯이 올해 18세인 아이와 함께 동일한 경로로 다녀보련다. 학업에 매몰된 아이에게 3.1운동 100주년과 그 중심에 있는 유관순 열사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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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숙
정책기자단|윤혜숙geowins1@naver.com
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람을 바꾸는 정책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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