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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서며 한국힙합은 본격적인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날아온 드렁큰 타이거가 충격을 선사했고, 클럽 마스터플랜은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형성했다. PC통신 동호회의 움직임도 있었다.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사진 1장을 다운하려면 몇 시간이 걸리던 PC통신 역시 한국힙합의 산파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가리온과 주석, 다이나믹 듀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하이텔의 힙합 동호회 블렉스(Blex)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SNP 역시 마찬가지다. SNP는 나우누리의 흑인음악 창작 동호회였다. 당시 SNP의 주축은 버벌진트, 데프콘, 피-타입 등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당시 ‘힙합은 내 인생’이라고 외치며 래퍼를 자처한 수많은 청년 가운데 가장 명석한 축에 속했다.
요즘은 콘서트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자주 보이는 ‘힙합 비둘기’ 데프콘.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무엇보다 이들의 차별점은 학구적인 면모였다. 힙합을 진지하게 대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들의 진지함에는 연구와 이해가 수반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각별히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은 바로 ‘라임’이었다. 당시 이들의 생각을 내 멋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의 한국어 랩에는 어떠한 고민도 들어 있지 않아! 랩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초보적이고 저질이란 말이다!”
지금의 버벌진트(VerbalJint)를 떠올리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긴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버벌진트는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자신감 가득하고 약간 건방진 청년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버벌진트의 말대로 당시 한국래퍼들의 라임은 대체로 초보적이었다.
‘끝말 맞추기’나 완전히 똑같은 단어로 라임을 맞추기 급급했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의 더 나은 방식에 대한 상상 자체가 없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드렁큰 타이거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에 담긴 한국어 랩 역시 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세(상), 이(상), 너무나도 괴(상), 너희가 최고라니 그건 너무 환(상)”
물론 크게 보면 이것도 성취라면 성취였다. 하지만 한국어 라임은 앞으로 더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버벌진트는 새 앨범을 발표했다.
2009년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가수 버벌 진트가 <랩&힙합 음반부문>을 수상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앨범 제목은 <Modern Rhymes EP>, 즉 새 시대를 개막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진정한 한국어 라임의 시대 말이다. 앨범의 첫 곡 ‘Overclass’를 보자. 이 노래의 후렴 가사는 이렇다.
“Suckers can't feel my rhyming / 어떻게 이런 놈들과 나란히 / 힙합을 얘기하니? / 아까워, 내 시간이”
가사만 보면 언뜻 라임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 발음해보면 라임이 있다. ‘my rhyming’과 ‘나란히’가 라임을 이루고, ‘얘기하니’와 ‘내 시간이’가 라임을 이룬다.
같은 단어도 아니고, 한글과 영어를 넘나들며, 음절수도 다르다. 심지어 어떤 라임은 한 단어인 반면 어떤 라임은 어절과 어절 사이에 걸쳐 있다. 그럼에도 라임이 된다. 한국어 라임에 혁명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앨범 수록곡 ‘사랑해 누나’도 마찬가지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라임이 곳곳에 묻어 있다.
“우중충했던 나의 아침 시간은 / 이제 그녀와 함께 할 / 수 없이 많은 일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득하네 / 한 사람을 향해 이토록 기쁘고 / 또 야릇하게 떨리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 거리를 함께 거닐며 /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긴 이야기 나누었네… / 누나 손 잡고 MP 가기 하루 전에”
“간은 이제”와 “많은 일에”, “가득하네”와 “야릇하게”, “있다니”와 “시간이”와 “이야기”, “나누었네”와 “하루 전에”가 각각 라임을 이룬다. 버벌진트의 <Modern Rhymes EP>는 끝말 맞추기 라임의 시대를 끝냈다.
버벌진트가 선보인 한국어 라임은 한국어에 깊은 전공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버벌진트의 성취는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졸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것에 가까웠다.
즉 자음동화나 구개음화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있고, 거센 소리나 된 소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출발점에 서는 것이 가능한 성취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 래퍼들은 랩의 특성인 라임을 한국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반면 버벌진트는 그 과제를 인지하고 학구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한국어 라임의 본보기가 되었다.
버벌진트가 2015 멜론뮤직어워드에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버벌진트가 이룩한 한국어 라임의 혁명은 곧 메시지의 해방을 불러왔다. 버벌진트 이전의 한국어 라임, 그러니까 끝말 맞추기나 완전히 똑같은 단어로 라임을 맞추던 방식의 진짜 문제는 메시지가 라임에 종속되어 개연성을 잃고 어수선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좋은 세(상), 나의 공(상), 넌 너무 진(상), 박정희의 동(상), 엄마의 밥(상)…”
라임은 맞췄지만 내용은 산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버벌진트의 방식은 메시지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라임의 배치를 곳곳에 가능하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버벌진트의 가사는 눈으로 읽기만 할 경우엔 랩 가사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실제로 ‘사랑해 누나’의 가사는 텍스트만 보면 언뜻 에세이나 짧은 소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면 숨어(?) 있던 라임들이 살아나며 랩 가사가 된다. 이것은 분명 더 진화한 결과물이었다.
<Modern Rhymes EP>의 발매 후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버벌진트의 한국어 라임 방법론이 더 이상 특별하지는 않다. 이제는 모두가 이런 방식으로 라임을 맞춘다. 그러나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한국어 랩이 버벌진트가 정립한 체계의 연장선 위에 존재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버벌진트의 방법론이 유일한 진리라거나 최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 설득력 있는 방법론이 등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분명한 사실이 있다.
20여 년에 가까운 지난 세월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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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이상민 행안부 장관, 지역 수출기업을 위한 정책지원 방안 논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8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8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접견하고 지역 수출기업을 위한 정책지원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장애인 친화 미용실에 가보니~ 머리 헹굴게요. 시원하시죠? 미용사가 한 올 한 올 정성껏 머리를 감겨주며 말했다. 잠시 후 머리 손질을 마친 고객이 거울을 보며 말했다. 아이고 짤막하니 참 좋다. 장애인 친화 미용실. 여느 미용실 상황과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보인다. 일단 한 사람 당 이용 공간이 무척 넓다. 리모컨으로 움직이는 의자에는 신체를 고정해주는 끈이 있다. 바로 옆에는 전동 휠체어 리프트도 구비돼 있다. 그렇다. 이곳은 장애인을 위한 미용실이다. 노원구 장애인 친화 미용실 헤어카페 더휴.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앞두고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 2호점을찾았다. 2022년 노원구는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1호점)를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예약이 넘쳐 1호점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했다(옆에서 머리를 하던 어르신이 1호점만 있을 때는 예약이 안 되더라라고 거들었다). 지난해 말 2호점을 열었다. 소문은 타고 흘렀다. 타 지자체에서 견학과 관련 문의가 쏟아졌다. 노원구청 장애인복지과 김기곤 팀장이 장애인 친화 미용실에 대해소개해주고 있다. 이곳은 제안부터 인테리어 계획까지 장애인 당사자들이 했어요. 턱도 없애고 바닥도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로 했고요. 노원구 김기곤 팀장(장애인복지과)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들어오는 입구에는 휠체어 이동이 편리한 데크가 조성돼 있었다. 또 출입문 아래 점자 블록과 개폐 버튼을 설치했다. 미용실 내부에는 전동 휠체어 리프트와 전동 보장구충전소, 점자책 등이 구비돼 있다. 안내데스크 높이도 낮다. 휠체어를 탄 고객을 배려한 높이다. 화장실에는 곳곳에 손잡이 바를 조성해 안전을 도모했다. 세면대 거울은 경사지게 만들어 휠체어를 타고도 잘 보이도록 했다. 특수 제작된 미용 의자. 넓고 신체 고정 끈이 있으며 여러 각도로움직인다. 머리를 자르는 공간이 압권이다. 널찍한 공간에 미용 의자 3개. 그만큼 1인당 공간이 무척 넓다. 휠체어 이동을 고려해서다, 앞, 뒤, 옆 모두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의자마다 머리를 감길 세면대를 하나씩 설치했고 리모컨을 누르면 자동으로 의자가 옆으로 돌아가 세면대에 눕혀지도록 했다. 미용실 내 휴식공간. 특히 신경을 쓴 곳은 휴식공간이다. 넓은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다. 보호자나 간병인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더욱이 이곳에는 사회복지사가 상주한다. 그런 만큼 미용 외에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용사를 채용할 때 복지 관점에서 많이 봤어요.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받아야 하고 복지에 관심이 많아야겠죠. 여기 계신 미용실장님도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계세요. 점자책 등 관련 책자가 놓여 있다(왼쪽), 출입문에 점자블록을 설치했고 아래 쪽에도 개폐 버튼을 설치했다(오른쪽). 이용 대상은 노원구 거주 등록 장애인이다. 그런 까닭에 이곳에 전입을 고려했다는 장애인도 있었다고. 사실 노원구 거주 장애인으로 제한을 뒀는데도 대기해야 한다. 김 팀장은 궁극적으로 이런 미용실이 각 지자체에 많이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다행히 다른 곳에서도 하나둘 장애인 친화 미용실이 생겨나고 있다. 전동보장구 충전소(왼쪽), 점자 안내판(오른쪽). 이곳을 찾는 연령은 골고루 분포돼 있다. 누구나 살면서 미용은 꼭 필요하니까. 무엇보다 비용이 착하다. 커트가 6900원, 염색이 1만5900원, 파마가 1만9000원. 더욱이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은 50% 감면을 받는다. 수, 일, 법정공휴일만 제외하고 월~토요일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7시(점심시간 오후 12시~1시) 운영하며 홈페이지나 전화로 예약 가능하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 솜씨라 여느 미용실 못지 않다. 휠체어 높이에 맞도록 높이를 낮춘 안내데스크. 고객이 결제를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장애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환경이 돼야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일반 미용실에서 장애인을 만나도 단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김 팀장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장애인 입장을 들어보니 미용실을 이용하면서 미안하고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미용실에가지 않고 집에서 자르거나 아예 자르지 않게 됐단다. 그런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가도 불편하지 않은곳을 만들고 싶었단다. 밖으로 나올 힘을 주었다는 게 가장 큰 의미 같아요. 가족들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발을 마친 오병근 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머리가 깔끔해져서 아주 좋아요. 비용도 싸지만, 커피나 간식도 있어서 휴게실 같아 즐거워요(그는 지상낙원이라고 콕 집어말했다). 또 화장실도 얼마나 편리한데요. 이발을 마친 오병근(68세) 씨가 말했다. 그는 중증장애인으로 손발이 불편하다. 한창 젊은 40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다른 병도 겹쳤다. 한 달에 한 번은 머리를 잘라줘야 하는데 여기가 생겨 살 것 같단다. 지금까지 3~4번 정도 왔는데 올 때마다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갈 때 다음 달 예약까지 할 수 있어 더 편하단다. 전동 휠체어 리프트. 처음에는 주로 청결에 초점을 두시죠. 거동이 불편하니 관리하기 쉽도록요. 그러다가 이곳이 익숙해지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미용 목적으로 오시기도 해요. 어떤 머리가 어울릴까 하고 물으시는 거죠. 하루에 10~14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러면서 말벗도 된다. 화장실 내부 거울은 휠체어 높이에서 보기 수월하게 만들었다. 저는 원래 제 가게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여기서 일하려고 한다니까 지인이 그러더라고요. 수입이 반토막나는데 굳이 왜 하냐고. 그런데 아이들이 모두 여기 엄마한테 딱 맞는 곳이야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는 미용실장은 오랫동안 미용실을 운영했다. 이전에는 유행에 민감했지만, 지금은 그런 요청은 받지 않는다. 간혹 왕년의 실력 발휘를 못 해 아쉽기도 하나, 그 이상의 보람이 있단다. 모두 고마워하며 다음에 올 날을 기다린다는 말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단다.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 입구.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2023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현황조사 결과, 직전 조사연도(2018년도)에 비해 설치율은 9.0%p, 적정설치율은 4.4%p 높아졌다고 밝혔다. 앞으로 더 많은 곳에 장애인 친화시설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머리를 다듬은고객의 뒷모습이 산뜻해 보인다. 봄이니까.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든찬란하길 바라는 계절 아닌가. 나는 그의 머리가예뻐 무심결에 내 머리를 매만졌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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