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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여행] 제주 올레 14-1코스 저지무릉올레

2014.10.16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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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지오름 정상.
문도지오름 정상.

저지곶자왈에는 버섯이 들끓었다. 뭍은 늦더위가 숙지는 초가을 빛인데 제주에는 지루한 비가 연일 내렸다. 덕분에 곶자왈은 땅에도 바위에도 말똥에도, 그리고 나무에도 다양한 버섯들이 돋아났다. 젖은 잎 사이로 땅에 돋은 ‘테두리방귀버섯’이 보였다. 곶자왈은 제주어다.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지형으로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자갈이나 바위 같은 암석 덩어리를 뜻한다. 제주어 사전에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정의했다.

제주 사람들에게 ‘저지무릉올레’를 걷겠다고 했더니 저지곶자왈은 여자 혼자 걷기에 위험하다며 만류했다. 저지곶자왈은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이 사는 판도라와 비슷한 원시림으로 간혹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정적으로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서 위험하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몸을 사리며 가지 말아야 하는데 더 가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판도라와 비슷한 원시림’이라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급하게 동행을 구했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사는 김대중 씨가 동행했다. 올봄에 저지곶자왈 주변에서 고사리를 채취했는데, 저지곶자왈은 가지 못했다며 무척 궁금해 했다.

곶자왈공유화재단이 있는 교래곶자왈. 이곳에서 곶자왈 생태체험을 할 수 있다.
곶자왈공유화재단이 있는 교래곶자왈. 이곳에서 곶자왈 생태체험을 할 수 있다.

녹나무과 상록 활엽수 울창

제주 올레 14-1코스 저지무릉올레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서 시작해 인향동 버스정류장에서 끝난다. 17킬로미터이며 약 6~7시간 소요된다. 저지리 마을정보센터 길 건너편에 약도와 경로가 그려진 14-1코스 시작점 표지석이 있다. 저지마을 현무암 담에 노란하늘타리와 수세미꽃이 정겨웠다. 갈림길에서는 나무기둥에 설치된 나무화살표가 길 안내를 했다. 파란색을 따라 걸었다.

구름이 짙게 깔려 있고 전신줄에는 제비들이 줄지어 앉아 젖은 깃털 손질을 했다. 밀집한 집들을 벗어나자 귤밭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익지 않은 퍼런 귤이 탱자처럼 탱글탱글했다. 귤 밭 담에는 으아리 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저지곶자왈 가는 길.
저지곶자왈 가는 길.

제주도 가장자리를 한바퀴 도는 제주 올레는 21코스이며 지선이 5코스다. 그중에서 곶자왈을 포함한 코스는 11코스와 14-1코스다. 곶자왈은 해발 200~400미터 내외의 중산간지역에 분포한다. 한라산을 기준으로 곶자왈 지대는 크게 4군데이다. 동쪽으로 조천~함덕곶자왈 지대와 구좌~성산곶자왈 지대가 있다. 서쪽으로는 한경~안덕곶자왈 지대와 애월곶자왈 지대로 나뉜다. 14-1코스는 서쪽 한경~안덕곶자왈 지대에 속한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한경~안덕곶자왈 지대는 월림~신평곶자왈과 상창~화순곶자왈로 구분하는데, 저지곶자왈은 월림~신평곶자왈의 일부분이다. 저지곶자왈은 이 곶자왈 지대에서 가장 식생상태가 양호하며 녹나무, 생달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등 녹나무과 상록 활엽수들이 울창하다.

저지리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을 지났다. 시멘트길 양옆으로 칡과 으아리 덩굴 등이 나무들을 덮었다. 마치 비밀의 숲을 안내하는 징조처럼 보였다. 보라색 칡꽃이 그윽한 향기를 뿜으며 느낌을 더했다. 누리장나무가 흰꽃을 피웠고 이런저런 야생화가 피어 아기자기한 흥분을 줬다. 저지곶자왈 안내판이 서 있는 곳부터 시멘트길도 끝이다. 안내판에 소개된 나무와 식물 사진을 찍고 이름을 적었다. 천량금·큰우단일엽·녹나무·꾸지뽕열매·콩짜개덩굴·가는쇠고사리·석위·곰솔·종가시나무 등 곶자왈에서 만나는 식물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듯했다.

날개깃을 말리고 있는 제비들.
날개깃을 말리고 있는 제비들.

문도지오름 가는 삼거리에서 파란 나무화살표가 방향을 지시했다. 문도지오름 초입은 명성목장이다. 말 2마리가 길을 막고 서 있다. 말을 옆으로 쫓으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문도지오름은 야자수 매트를 깔고 있는 중이다. 해발 26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조망은 시원한 오름이다. 날이 좋으면 금오름, 정물오름, 당오름, 도너리오름 등이 보이고 단산과 송악산이 보인다. 말을 등지고 삼나무숲을 향했다. 숲은 습하고 말똥이 군데군데 쌓여 있어 조심스럽게 걸었다.

문도지오름을 내려오자 오솔길이다. 길 중앙에 풀들이 마구 자란 것이 간혹 차만 드나드는 것 같다. 길쭉하게 뻗은 소나무가 일렬종대로 서 있다. 소나무 사이로 먼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 눈을 즐겁게 했다. 빨간 열매 사이로 길은 11킬로미터나 남았다. 오솔길이 왼쪽으로 이어졌다. 풀이 수북하게 자란 것이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저지곶자왈이 시작되는 곳이다. 오설록 티뮤지엄까지 9.5킬로미터이다. 시간은 180분, 3시간이 소요된다.

저지마을 가는 길에 만난 바다.
저지마을 가는 길에 만난 바다.

제주도 지하수 원천인 곶자왈

수풀을 헤치고 걷자 말오줌때가 열매를 맺었다. 말오줌때를 지나자 바로 저지곶자왈 입구다. ‘제주올레 14-1코스 주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휴대폰이 잘 연결되지 않는 깊은 숲이니 절대 경로를 이탈하지 말고, 독초가 많으니 식물에 손대지 말라는 내용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찬바람이 스쳤다. 으스스한 소름이 돋았다. 한낮인데도 마치 저녁 숲을 걷는 것처럼 어두웠다.

곶자왈은 제주오름에서 화산이 폭발할 때에 점성이 높은 용암이 흘러나와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로 쪼개지면서 만들어진 지역이다. 이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들이 불규칙하게 매우 두껍게 쌓여 있어 빗물이 그대로 지하로 스며들어 제주도 지하수를 만드는 원천이 된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길을 따라서 가는 쇠고사리가 군락을 이뤘다. 수풀 사이의 간세가 방향을 알려줬다. 나무에는 리본이 달려 있다. 숲의 정령이 장난치지 않는 한 길을 잃지는 않겠다. 그래도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제주 밭담의 길 덤불에서는 주렁주렁 열린 으름을 볼 수 있다.
제주 밭담의 길 덤불에서는 주렁주렁 열린 으름을 볼 수 있다.

숲이 신비스럽게 보이는 데는 덩굴식물의 역할이 크다. 나무마다 덩굴식물이 타고 올랐다. 청미래덩굴이 소나무를 가볍게 안았다. 마치 현기증을 일으켜 옆사람에게 살짝 머리를 기댄 것처럼. 그러나 점점 덩굴은 무게를 싣고 뿌리를 깊이 내린다. 길은 숲 깊숙이 더 들어가고 잎들은 축축하게 젖어 있다. 섞은 나무와 축축한 땅 위에 버섯이 돋았다. 버섯 근처에는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있는 실거리나무가 있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숲과 흡사한 것도 같다. 종가시나무 뒤편에 나비족이 서 있는 듯했다.

무릉곶자왈 가는 길은 잘 가꾸어진 숲 터널이다.
무릉곶자왈 가는 길은 잘 가꾸어진 숲 터널이다.

10여 분 걷자 잘 쌓아올린 밭담이 보였다. 사람들이 산 흔적이다. 담은 버려진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질 수 있게 이끼와 콩짜개덩굴이 자랐다. 30년 전에는 한경~안덕곶자왈 지대에 목장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5분여 더 걸었을까. 너른 터가 나왔다. 커다란 나무뿌리가 큰 바위를 움켜잡고 서 있다. 바위 위에는 짐승 모양의 돌이 놓여 있다. 마치 숲을 지키는 정령처럼 오롯하다. 여기부터는 돌담이 길게 쌓여 있다. 돌담을 따라 걸었다. 담은 콩짜개덩굴이 잠식했고, 그 담 위로 나무들이 자랐다. 이 흔적들도 몇십년이 흐르면 사라질 것이다. 나무들이 빠르게 추억을 앗아가고,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울창한 숲을 벗어났다. 길 덤불에 으름(국산 바나나라 불리는 가을 열매)이 주렁주렁 열렸다. 익지 않아 몹시 썼다. 차밭이다. 차밭 가장자리를 따라서 오설록 티뮤지엄으로 향했다. 야외 벤치에 앉아 아침에 편의점에서 구입한 김밥을 먹었다. 오설록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신화역사로를 따라 걸어 무릉곶자왈로 향하는 오솔길에 들어섰다. 비가 쏟아졌다. 양산을 폈다. 김대중 씨가 제주 현지인과 여행객을 구별하는 방법이 우산이라고 했다. 제주 현지인은 비가 오면 우비를 입지 우산을 안 쓴다고 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기 때문에 우산이 제 역할을 못했다. 카메라 때문에 양산을 썼더니 우산이 금세 망가져버렸다. 무릉곶자왈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누리장나무가 향기를 뿜어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누린내를 풍긴다는 누리장나무 향이 향긋했다. 오랜만에 비에 젖었다. 빗물에 숲이 반짝반짝 빛났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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