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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곁에 사람이 살고 못살고, 모두 이유 있다

[광복 70년 한국인 의식주 변천사] ⑩ 음주 문화

밤새도록 부어라, 마셔라…그 많던 주당은 집에 잘 들어가셨소

위클리공감 2015.08.26

요즘 ‘순하리 처음처럼’이라는 14도짜리 술이 인기야. 소주가 달달한 맛이라니 좀 그렇지. 독하게 취하는 맛에 술을 먹는 건데 좀 이해하기 어려워. 구보 씨가 대학생 땐 28도짜리 소주를 마셨는데 도수가 절반으로 줄었네. 술은 악마가 인간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래. 신라시대엔 포석정에서 곡수유상(曲水流觴 : 굽어서 흐르는 물에 술잔 띄워 주고받기)하며 놀았는데, 시대 흐름에 따라 술 마시는 기호도 달라졌지.

광복이 되고 나서 아버지 술심부름을 자주 다녔어. 꼬마 녀석이 막걸리 받으러 주전자 들고 양조장에 가면 아저씨들이 “갖고 가다 먹으면 안 돼. 지켜볼 거야.” 이랬어. 골목길로 꺾어지기가 무섭게 한 모금씩 홀짝거렸는데, 10대 소년이 술맛을 알았을까만 막걸리를 홀짝홀짝 제법 맛있게 먹었어. 술 양이 줄어든 걸 아셨겠지만 아버지가 뭐라 하신 기억은 없네.

소주 폭탄주.(사진=동아DB)
소주 폭탄주.(사진=동아DB)

우리나라 전통술은 크게 탁주, 청주, 소주 세 가지야. 탁주는 즉석에서 걸러 마시니 ‘막걸리’라 하고, 청주는 탁주보다 더 곱게 빚은 고급술이라 약주(藥酒)라 하고, 소주는 고려시대 이후 보급된 가장 독한 전통주야.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서민의 애환을 달래는 대표 술이었지. 지금도 막걸리는 인기야. 그러기에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은 “막걸리는 최고의 인간 접착제”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어.

막걸리, 소주, 맥주, 청주, 양주, 고량주, 인삼주, 과실주, 약주, 기타 재제주 등 술 종류가 많기도 하지. 충주에 있는 세계술문화박물관 ‘리쿼리움’에 가보면 100여 나라의 온갖 술이 전시돼 있잖아. 그 많은 술들이 우리의 희로애락과 함께했지. 조선 영조 때 화가 김홍도의 ‘만월대계회도(滿月臺契會圖)’를 보면 거나하게 무르익은 술잔치 장면이 산수화와 풍속화가 중첩되며 한 화폭 속에 절묘하게 구현돼 있어.

1970~1980년대엔 대학생들이 ‘깡소주’를 많이 마셨어. 때론 중국집에서 짬뽕 국물 하나 시켜놓고 ‘빼갈(배갈 : 고량주)’을 마시며 시대의 울분을 토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깡소주’가 대세였지. 그 시절의 대학생들은 어두운 시대를 한탄하며 정치 문제를 안주 삼아 ‘깡소주‘를 많이도 마셔댔어. 그때 아들 녀석이 하도 술을 마셔대기에 안주는 뭘 먹느냐고 물었더니, 친구 자취방에서 새우깡 하나 놓고 마셨다는 거야. “안주를 든든히 먹어라.” 내가 아들 녀석에게 술과 관련해 했던 첫 번째 충고가 아니었나 싶어.

1990년대 이후부터는 소주의 도수도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어. 맥주 마시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지. 생맥줏집이 번성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야. 맥주가 소주보다 더 부드럽게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늘어서였겠지.

영하의 날씨를 녹이던 포장마차의 소주. 1975년 12월 세밑 풍경.
영하의 날씨를 녹이던 포장마차의 소주. 1975년 12월 세밑 풍경.(사진=동아DB)

1980년대의 시골 막걸리 양조장.
1980년대의 시골 막걸리 양조장.(사진=동아DB)

“1차에서 끝” 기업 회식 문화 변화
술 잘 마시는 여성 급격히 늘어

직장에서의 회식은 좀 많았어? 술을 빼놓고는 우리네 회식 문화를 말할 수 없어. 보통 1, 2차는 소주나 맥주였지만 3차로 가면 반드시 양주를 마셨지. 회사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접대 문화를 생각해봐. 폭탄주를 필두로 양주에 다른 술을 섞어 묘기를 부리는 온갖 제조 기술이 한 편의 무협지 같았어.

술의 신 박카스나 일본에 누룩을 전파해 지금도 일본에서 주신으로 모시는 백제인 수수허리(須須許理)가 환생해도 놀라워했을 묘기 대행진이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엔 기업의 회식 문화도 바뀌고 있대. 팀원끼리 공연을 보고 간단히 저녁 먹는 문화형 회식이나 스포츠를 함께 즐기는 레저형 회식으로 바뀐다는 거야.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맥주 정도를 간단히 곁들이는 맛집 회식도 유행이라네. 거 뭐냐, ‘119 운동’이라고 들어봤어? 1차에서 한 가지 술로 밤 9시 이전에 회식을 끝내자는 캠페인이래. 다 좋은데 뭐랄까, 서로 부대끼는 그런 맛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구석도 있어.

광복 후부터 지금까지, 술 마시는 기호의 변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술 잘 마시는 여성들이 대폭 증가했다는 거야. 아직도 현장에서 중소기업을 이끄는 내 친구들이 그래. 요즘 신입사원들과 술자리를 해보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술을 더 잘 마신다는 거야. 물론 다 그렇다고 보편화할 수는 없겠지만 술 잘 마시는 여성이 늘어난 것만은 분명해. 아니, 광복 직후에도 마시고는 싶었겠지만 아마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대놓고 마시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그리고 청소년의 음주 횟수가 늘고 있는데, 이는 구보 씨가 아버지의 막걸리를 홀짝거렸던 경험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야.

순하리 처음처럼.
순하리 처음처럼.

술 광고 관련해서도 할 얘기가 많아. 텔레비전에서는 밤 10시 이후에만 술 광고를 할 수 있어. 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청소년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니까 나름대로 규제를 한 거야. 최근 ‘아이유법’이 화제가 됐잖아? 만 24세 이하는 술 광고 모델을 금지하기 때문에 아직 그 나이가 안 된 가수 아이유가 광고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거지. 그래서 왜 하정우는 되고 아이유는 안 되냐, 24세 미만에게 광고 모델을 금지하면 청소년들이 과연 술을 안 먹을까, 하며 이런저런 반론도 있었지. 그렇지만 술 광고 규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이 또한 시대에 따라 점점 변해가지 않을까 싶어.

그래, 술을 안 먹을 수는 없어. 잘만 먹으면 얼마나 좋겠어? 김수연 명창이 구성지게 불러 유명해진 ‘사절가(四節歌)’의 한 대목을 소개할게. “~~ 인생이 모두가 백 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滿盤珍羞 : 상 위에 가득 차린 귀하고 맛있는 음식), 불여생전(不如生前)에 일배주(一杯酒)만도 못하느니라. (중략) 국곡투식(國穀偸食 : 나라 곡식을 훔쳐서 먹는 것) 하는 놈과, 부모 불효 하는 놈과 형제 화목 못 하는 놈, 차례로 잡아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아 앉아서 ‘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자.”

죽은 다음의 진수성찬도 생전의 한잔 술만 못하다며 한번 놀아보자니, 어때 술맛 나지 않아? 이럴 땐 ‘순하리’보다 ‘독하리’가 더 낫겠지. 그렇지만 “술이 떡이 되지 말고, 술이 덕(德)이 되게 하라”는 주당의 계명(허시명, <주당천리>)도 마음에 새기며 마셔야겠지.

* 이 시리즈는 박태원의 세태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의 주인공 구보 씨가 당시의 서울 풍경을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살아온 지난 70년의 기억을 톺아본 글이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전 한국PR협회장)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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