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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달리는 열차…멀리서 달려오는 통일

소설가 김호경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르포

2015.07.30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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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친선특급’이 달리고 있다. 외교부와 코레일이 주관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하나의 꿈, 하나의 유라시아’라는 목표 아래 7월 14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다. 친선특급의 여정은 블라디보스토크~베를린(약 1만1900km) 북선 구간과 베이징~이르쿠츠크(약 2500km) 남선 구간으로 구성되며, 이동 거리는 1만4400km로 지구 둘레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유라시아 친선특급 참가단원인 소설가 김호경 씨가 7월 21일 여정의 소회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첫 기적을 울리며 출발할 때 철로 변에 만개해 있던 분홍바늘꽃은 이르쿠츠크에서도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꽃은 변하지 않고 우리를 반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또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는 사실이다.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가장,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 맛있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새벽부터 분주한 엄마…. 그들의 소망은 모두 하나, 행복이다. 그 행복 속에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는 들어 있지 않다.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많은 것을 이루었다. 산업화, 민주화, IT화, 문화화, 세계화. 이 위대한 업적 속에 정작 중요한 통일은 없다. 우리가 통일을 바라는 것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요, 돈을 바라서도 아니다. 광복 70년을 맞아 떠난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수없이 많이 시도되었던 통일의 밑거름 중 하나다. 통일이 이루어진 날, 바로 그날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역사의 위대한 족적으로 남을 것이다.

원정대원들이 열차에서 내려 찾아간 바이칼 호수.(사진=동아DB)
원정대원들이 열차에서 내려 찾아간 바이칼 호수.(사진=동아DB)

거대한 호수, 바이칼호
원정대원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지역주민들

우리는 장장 1만4400km를 달리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 거리는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이 얼마나 길고 격동적인지 알려준다. 기차가 바람처럼 달리다가 5~6시간 만에 문득 작은 간이역에 멈추면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햇볕을 쬐고, 구 소련 시절의 정취를 흠뻑 풍기는 마을을 영상에 담느라 바쁘다. 그렇게 서너 개의 마을을 통과하고 55시간쯤 지났을 때 드디어 눈앞에 처음으로 물이 나타났다. 그 물은 거대한 호수의 시작이었다.

밤을 꼬박 새운 목격자에 따르면 7월 20일 오전 4시 10분에 호수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원정대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창에 눈을 붙이고 그 경이적인 풍경에 넋을 놓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이칼 호수였다. 호수는 파랗고, 그 속의 주먹만 한 조약돌들이 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태고의 자연 그대로였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나타나 건방져 보이는 청년 한명이 뒤에 긴 머리 소녀를 태우고 달리면 마을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었고, 30분 만에 틀림없이 마을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런 장면과 파란 호수의 풍경을 보면서 7시간 동안 달리다가 62시간 만에 기차에서 내렸다. 호수는 그동안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호수답게 그 긴 시간 동안에도 그 끝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었다. 바이칼호를 품고 있는 이르쿠츠크는 5층 이상의 건물이 없고, 번화가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중소도시였다. 뜻밖에 이곳 도시 사람들이 원정대원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해주었다.

여러 행사 중에서 가장 뜻깊었던 것은 카레이스키(고려인)들과의 저녁 식사였다. 운동장 한쪽에 천막을 치고 그 아래에 마련된 음식은 소박했지만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1943년 사할린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이르쿠츠크로 넘어왔다는 윤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고향이 경북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경북의 어느 곳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 옆에는 금발머리에 파란 눈동자의 딸이 있었고, 또 그 옆에는 금발머리의 6세 소녀가 있었다. 한국 땅에서 한 번도 살지 못했던 윤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한국어가 아닌 듯한 한국어로 이어졌으나 뜻은 다 통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국땅에서의 풍상 많은 삶이 그의 굵은 이마 주름에 고스란히 새겨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게 서글프고 반가운 잔치마당이 끝나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이칼 호숫가를 거닐며 독립 선열들 중에도 누군가 이 바이칼 호수에서 깊은 시름에 잠겼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그분들의 시름(광복)의 하나는 풀렸으나 또 하나의 시름(통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요동치게 한다.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역에 도착한 유라시아 친선특급 단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역에 도착한 유라시아 친선특급 단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통일국가 독일로 향하는 여정
800여 명의 마음 담은 태극기 만들다

앞으로 친선특급 열차는 불우한 역사를 지닌 나라 중 하나인 폴란드로 들어서 바르샤바의 역사 유적지를 살피고, 최종적으로 독일 땅에 진입한다. 왜 우리는 독일까지 가는 것일까. 그것은 독일이 한때 우리처럼 이데올로기 때문에 갈라진 분단국가였고, 그 억압과 모순을 극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통독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우리는 조국 통일을 기원하고, 20일에 걸쳐 만든 대형 태극기(6×9m)를 흔들 것이다. 1000개의 조각으로 만든 태극기는 800명 이상의 한국인과 러시아인, 중국인, 카레이스키, 유럽인이 참여해 손수건 크기의 흰 천에 각자의 소망과 통일을 기원하는 글을 쓰고, 한복 전문가 권진순 여사가 20일 동안 오로지 손바느질로 1000개의 조각을 이어 꿰매어서 태극기를 만들 것이다. 이런 지극정성의 태극기를 분단과 통일의 현장에서 힘차게 흔들면서 ‘대한민국’과 ‘북한’이 하나가 될 날을 기원할 것이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온 친선특급 열차는 숭고한 통일 기원제를 마치고 돌아온다.

그 스무날 동안 300명의 원정대원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으며, 그것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분명한 사실은 실천은 천천히 이루어지겠지만 각자가 삶에서 작은 실천을 한다면 통일 한국은 그만큼 성큼 다가오며, 유라시아 대륙은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적인 삶의 현장이 되리라는 것이다.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는 집을 떠나온 지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음에도 겨우 이레(7월 21일 현재)를 달렸다. 앞으로 열사흘을 더 가야 한다. 1만4400km 중에서 8000여 km가 남아 있다. 그 길과 시간 위에서 만날 사람은 또 누구인가. 그들의 이야기를 머리와 가슴으로 맞이할 생각에 설레며, 벅차온다.

글 · 김호경 (소설가)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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