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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내 하나뿐인 ‘대성동 자유의 마을’ 가보니

북한 기정동 마을과 불과 800m…49세대 193명 거주

야간 통행금지에 마을 주민도 출입때 사전 통보해야

“최근 내·외신 관심에 조금은 부담…정상회담 잘 돼야죠”

2018.04.05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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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내에 있는 마을을 아시나요?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지만, 행정구역상으로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에 있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다. 분단의 상징일 수도 있으나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기도 하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에 남북이 각각 1곳씩 민간 거주 마을을 두기로 합의하면서 8월 3일 북한 ‘기정동 평화의 마을’과 함께 생겼다. 두 마을 사이의 거리는 불과 800m 정도다.

판문점 우리측 지역에서 열리게 될 ‘2018 남북정상회담’을 20여일 앞둔 4일 정책브리핑이 어렵게 찾은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마을을 둘러보고 김동구 이장과 마을 주민들을 만나 그곳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을 기록관에 전시돼 있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 지도.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남북 민간 거주 마을의 위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마을 기록관에 전시된 ‘대성동 자유의 마을’ 지도.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남북 민간 거주 마을의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4시간 통제 속의 생활…군복무·세금은 면제

마을 이름은 처음 ‘토성(土城)’이었으나 ‘태성(台城)’이라고 불리다가 유엔군이 ‘대성’으로 발음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동구 이장(49)은 “군사분계선 가장 가까이 팔각정이 있는 자리에 언제 축조됐는지는 확실치 않은 옛 토성이 있어 ‘태성’이라고 불렀고 그 주변에서 기와 등이 많이 발견됐다고 어르신들께 전해 들었죠”라고 설명했다.  

김동구 ‘대성동 자유의 마을’ 이장.
김동구 ‘대성동 자유의 마을’ 이장.

대성동 자유의 마을, 일명 자유의 마을은 특이하게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규제를 받지만 유엔사령부의 통제 아래 있다. 판문점과 다르게 일반인 관광은 불가능하며 주민들의 출입까지 통제되는 곳이다. 외부인은 마을 주민의 초대로 사전에 신청한 사람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그것도 정해진 시간만 출입할 수 있으며, 출입 시 JSA 민정중대의 경호를 받아야 한다. 마을 주민들도 출입 시 사전에 통보해야하며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는 통행이 금지된다. 저녁 7시에는 민정중대가 가구별 인원 점검을 한다.

마을주민인 전창복 씨가 농사일을 마치고 환하게 웃고 있다.
마을주민인 전창복 씨가 농사일을 마치고 환하게 웃고 있다.

마을의 위치적 특성상 민정중대가 24시간 상주하고 있어 치안 유지는 확실하다.

주민 전창복(63) 씨는 “옴짝달싹하지 못 할 정도로 매우 불편합니다(하하~). 지켜주니깐 고맙죠, 덕분에 안전합니다”라고 말했다.

전 씨는 자유의 마을에서 태어나 63년 동안 이 마을에 살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전 씨와 같이 휴전 당시 이곳에 주소지를 둔 사람이거나 그 직계가족이다. 전 씨는 “대부분 마을 주민들은 이곳이 고향이기 때문에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DMZ내에 살다 보니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구 수가 얼마 안 돼  조용하고 가족같이 지내고 있어 좋아요”라고 말했다. 자유의 마을은 지난해 기준, 49세대 193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유일하게 다니는 대중교통인 ‘따복버스’. 자유의 마을과 문산을 오가며 새벽 6시를 첫차로 하루 4회 운행된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유일하게 다니는 대중교통인 ‘따복버스’. 자유의 마을과 문산을 오가며 새벽 6시를 첫차로 하루 4회 운행된다.

교통수단은 버스와 자가용이다. 버스는 문산까지 가는 1개의 노선이 하루 3회였다가 올해부터 4회 운행 중이다. DMZ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차량은 남북이 합의한 대로 청색천을 달아야 한다. 김 이장은 “과거에는 교통수단이 없어 일주일에 한 번씩 미군들이 주민들을 문산까지 데려다줬죠. 그때 비하면 많이 수월해진 편”이라고 말했다.

통제가 있어 불편한 만큼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 혜택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받고 있다. 병역 면제에 악용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시집온 며느리는 주민이 될 수 있지만, 딸은 외부 남자와 결혼을 하면 마을에서 떠나야한다. 또한 거주권 심사가 까다로우며 8개월 이상 계속 살지 않으면 주민 자격이 상실된다. 단,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기 위해 타지로 나가는 경우는 제외된다.

주민들은 개인소유권은 없고 경작권만 인정돼 쌀, 콩, 고추 등을 주로 재배해 경제적인 수입을 얻고 있다. 쌀은 정부가 30%, 지역농협 쌀종합처리장(RPC)이 50%, 자체RPC에서 약 20%를 수매한다. 

특히 이 지역은 DMZ접경 청정지역이라는 특성을 살려 고부가가치의 쌀을 생산한다. 하지만 외부 인력의 출입이 어려워 일손이 부족해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지 못 하는 어려움도 있다. 김 이장은 “예전에는 인삼도 재배했었는데 인력이 부족해 지금은 못 하고 있죠. 농업도 기계화가 돼 예전보다는 수월해졌지만, 정부에서 말하는 농업의 6차산업화까지 발전시키기는 어려움이 많죠”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수한 마을, 교육환경도 특별해 경쟁률 높다

비무장지대 내 하나뿐인 ‘대성동초등학교’ 모습.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무장지대 내 하나뿐인 ‘대성동초등학교’ 모습.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유의 마을 유일한 교육시설은 대성동초등학교와 유치원이다. 대성동초등학교는 6·25전쟁 이후 1954년 주민 자치로 운영되다가 1968년 5월 8일 대성동국민학교로 인가를 받으며 3학급으로 개교했다. 현재 학생 수는 학년당 5명씩 1학급, 즉 6학급으로 편성해 총 30명이고 교사 및 행정직원 수가 22명이다. 입학 자격은 마을 주민이어야 하고 외부인은 추첨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일반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교육환경으로 외지에서도 인기가 많다.

진영진 대성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역대 졸업생들 사진을 보며 설명을 하고 있다.
진영진 대성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역대 졸업생들 사진을 보며 설명을 하고 있다.

대성동초등학교는 한때 신입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지역의 역사를 볼 때 존재 가치가 커 2006년 공동학구로 지정하고 외부 학생의 입학을 허용했다. 진영진(61) 교장선생님은 “자유의 마을이 처음 생기게 된 계기가 평화의 시작이며, 통일과 관련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상징성이 크죠. 많은 사람들이 비무장지대 내에 학교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특히 외국에서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49회 졸업식을 거치면서 많은 학생들을 배출했다.

교육과정은 일반학교와 동일하다. 다만, 스쿨버스 출입 시간이 정해져 있어 방과 후 교육활동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며 무료다. 이상재(43) 교사는 “학급 수가 적다보니 공부방에서 공부하는 느낌이랄까요, 선생님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입니다. 6개월만 지나면 전교생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요”라며 좋은 교육 환경을 자랑했다.

마을 기록관에 전시돼 있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 지도.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남북 민간 거주 마을의 위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대성동초등학교 이상재 교사는 체험학습·특별활동 등 다른 곳과는 차별화된 좋은 교육 환경을 자랑했다.

또 일반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체험학습도 특징이다. 학생들은 어린이 외교관, DMZ국제영화제 참가, 각국 대사관 공연 등 특별활동도 많이 한다. 체험학습은 최소 한 달에 한 번, 그때그때 필요한 전문 강사를 초청하거나 외부로 나가 진행한다.

이 교사는 “영어 교육의 경우 원어민 교사에게 배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지금처럼 국가적으로 특수한 경우만 아니면 미국 군인도 와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해요”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대성동초등학교는 2014년 KT의 지원으로 ‘기가스쿨’을 개관해 스마트 교실인 ‘기가클래스’와 사물인터넷 창의교육을 할 수 있는 ‘무한상상교실’을 만들었다.

비무장지대 내 영화관, 가봤니?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2012년 경기도·롯데시네마와 협약을 체결해 DMZ내 최초로 영화관을 개관했다. 상영 날짜는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이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2012년 경기도·롯데시네마와 협약을 체결해 DMZ내 최초로 영화관을 개관했다. 상영 날짜는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이다.

자유의 마을 내에는 편의시설조차 없는데 영화관이 있다 해서 신기했다. DMZ내에서 영화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영화관은 마을회관 2층을 개조해 만들었으며 마을 내 유일한 문화시설공간(총 52석)으로 주민들에게 인기다. 김 이장은 “2012년 경기도·롯데시네마와 협약을 체결하고 영화관을 만들었는데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에 무료 상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상영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자유의 마을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북한. 국기게양대는 물론 기정동마을, 개성공단 등이 한 눈에 보인다. 자유의 마을과 기정동 마을 사이의 거리는 800m밖에 되지 않는다.
자유의 마을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북한. 국기게양대는 물론 기정동 평화의 마을, 개성공단 등이 한눈에 보인다. 자유의 마을과 기정동 마을 사이의 거리는 800m밖에 되지 않는다.

마을회관은 1997년 신축되면서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마을식당과 경로당, 구판장, 회의실과 롯데시네마(영화관) 등으로 구성됐다. 마을회관 시설 중 꼭 가볼 만한 곳은 옥상에 있는 전망대다. 이곳에서는 북한의 국기게양대, 개성공단과 기정동 마을, 개성 송악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망원경으로는 기정동마을 주민들의 모습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옥상에서 본 국기게양대는 남과 북이 경쟁하듯이 마주하고 있다. 자유의 마을 국기게양대는 99.8m의 국내 최고 높이를 자랑하며 태극기 크기는 가로 18m, 세로 12m에 달한다. 김 이장은 “국기게양대는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시설물로 북한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높게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건너편 기정동마을 국기게양대는 원래 80m 남짓이었지만 남한을 의식한 듯 165m 높이로 다시 만들어 세웠다.

김동구 이장이 ‘마을기록관’에서 마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김동구 이장이 ‘마을기록관’에서 마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관광지로 주목 받을 만한 곳이 있다. 정전협정 관련 문서, 군사분계선 표식, 마을의 역사, 주민들을 담은 영상 등 자유의 마을 65년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는 ‘마을 기록관’이다. 지난 1959년 지어진 마을 공회당인 ‘자유의 집’은 폐건물이 될 뻔 했으나,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와 ‘대성동 프로젝트’를 진행해 2016년 6월 3일 ‘마을기록관’으로 재탄생했다. 김 이장은 “현재 외부인 출입 통제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으나, 통일이 된다면 이곳이 또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자신 있게 소개했다.

오는 27일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리게 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아무래도 느낌이 일반 국민들과는 다르겠지만 반응은 대체로 차분했다.

김 이장은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다보니 내·외신 기자들이 우리 마을에 관심을 너무 많이 가져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통일이 된다면 우리 마을이 가지는 상징성이 커 역사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겠죠. 이번 정상회담이 잘 되길 바라며 이장으로서 우리 마을이 잘 보존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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