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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일간 마을버스로 7만km 세계 일주, 임택 여행작가

“꿈 이 있다면 도전하세요…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잖아요”

2016.09.18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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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마을버스로 세계 일주죠? 그것도 폐차 직전의 ‘똥차’로요.”

그가 흔히 받는 질문이다. 그의 여행은 특별한 동기에서 시작됐다. 5년 전 어느 날, 그는 서울 평창동에서 고갯길을 힘들게 올라오는 마을버스를 보았다. 그를 싣고 산동네의 뒷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평창동 파출소 앞의 2차선 도로. 힘들게 한 바퀴를 돌고 잠시 쉬는가 싶더니 마을버스는 승객을 싣고 왔던 길을 또 내려갔다. 그때 자신에게 물었다.

“우리의 인생이 마을버스와 무엇이 다를까?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사는 쳇바퀴 인생. 가족을 부양하느라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평생 미루며 살아왔던 인생을 다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 마을버스와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나자. 그래서 사람들에게 도전의 참의미를 알리자’고요.”

수입 오퍼상으로 지내온 인생 1막을 끝낸 50대 여행작가 지망생과 10년간 48만km를 달려 폐차를 6개월 앞둔 마을버스의 세계 일주. 버스 회사의 이름을 단 ‘은수’와 임택(56) 씨의 677일간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폐차 직전의 마을버스 ‘은수’와 세계를 돌며 인생 2막을 시작한 임택 씨.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
폐차 직전의 마을버스 ‘은수’와 세계를 돌며 인생 2막을 시작한 임택 씨.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

오래된 마을버스 보며 쳇바퀴 인생 회한
안데스산맥·사하라사막 등 버스로 5대륙 종주

은수는 영업용 노란색 번호판 대신 흰색 번호판을 새로 얻었다(도로교통협약에 따라 최대90일까지 해외에서도 운행이 가능하다). 고지대를 이겨내기 위해 라이닝을 새로 달고 엔진 브레이크를 바꾸는 등 대수술을 거쳤다. 침실과 간단한 조리시설까지 갖춰 캠핑카 흉내를 냈다. 그리고 2014년 10월 25일 은수는 평택 항구에서 페루로 가는 화물선에 올랐다.

은수를 본 세관원들은 처음엔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대부분 은수가 여행 목적의 차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사이드카를 앞세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는 은수의 몸에 자신들의 언어로 여행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새겼다. 그들만의 입국 환영 의식인 셈이다. 임 씨는 “이런 대접을 받을 땐 마치 외교사절이 된 것처럼 황송했다”고 말했다.

사흘 동안 해발 4000m가 넘는 안데스산맥을 넘었고, 과테말라의 아티틀란호수에서는 집시 청년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마이애미에서 시작한 북미 종단은 쾌적했다. 은수는 본고장 미제 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렸고 현지인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유명한 지역신문 ‘버지니언 파일럿’은 임 씨와 은수의 이야기를 대문짝만 하게 실었다. 이 신문기사는 후일 유럽 여행을 시작하는 데도 요긴하게 쓰였다.

“유럽에 첫발을 디딘 독일의 브레머하펜항에서 은수가 가로막혔습니다. 세관원은 이 항구로 들어온 한국 국적의 여행버스는 처음 본다는 겁니다. 여행 목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얘기죠. 미국 신문기사를 복사해 세관에 냈습니다. 그 뒤로 통관작업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됐습니다. 보험이 필요했지만 형식적인 서류만 받고 일이 끝났습니다. 입국 차량에 부과하는 보증금도 전날에는 3800유로를 내라더니 1100유로로 낮춰주더군요.”

알프스산맥을 넘고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모로코로 들어가 불타는 사하라사막도 달렸다.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이름도 낯선 그곳을 지나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 아시아 대륙 서쪽 끝 터키로 들어섰다. 임 씨로 하여금 세계 일주를 꿈꾸게 한 그곳이다. 10년 전 그는 터키의 사진작가 아리프 아쉬츠가 중국에서 이스탄불까지 걸어서 여행한 기록을 쓴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을 읽고 ‘나도 꼭 갈 거다’라고 책에 새겼었다.

유라시아 30개국의 국경을 지나 카자흐스탄과 시베리아의 길고 긴 평야를 끈기 있게 돌파했다. 드디어 당도한 러시아 땅. 페루에서 18시간으로 시작한 대한민국과의 시차는 한 시간으로 좁혀져 있었다. 조국의 냄새가 실린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임 씨의 마지막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두만강 러시아 쪽 국경을 통해 북한을 거쳐 돌아오고 싶었어요. 북한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는 철도를 이용하는 건데 이 역시 불가능했어요. 꿈을 접고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잘라 구국의 마음을 다짐한 단지동맹비 앞에서 긴 여행을 마쳤습니다. 언젠가는 은수와 함께 북한을 통과하는 꿈을 꼭 이루기를 바라면서요.”

스페인 안달루시아를 달리는 은수.
스페인 안달루시아를 달리는 은수.

저질 연료 넣어 고장 나고 차문 통째로 뜯기고…
“인생의 반이 고난이라면 괴로움 대상 아냐”

남미에서 시작한 여행은 북미와 북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에서 다시 아시아로 5대륙 48개국 147개 도시를 지났다. 은수는 7만km를 달렸다. 그러나 은수와의 여행이 쉽지만은 않았다. 은수는 여행을 시작한 콜롬비아의 보고타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은수의 몸에 맞지 않는 남미의 저질 연료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스위스 국경으로 넘어올 때는 무면허 운전으로 걸렸다. 1종 대형면허가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임 씨는 1종 보통면허로 여태 은수를 몰고 있었다. 한국에서 5일 만에 면허를 따 다시 돌아갔다. 이탈리아에선 밤중에 누군가 승하차문을 뜯어내 가방을 모조리 훔쳐갔고, 볼리비아 국경 마을에선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고립돼 네 시간 만에 풀려났다. 아제르바이잔과 전쟁 중인 아르메니아를 지날 때는 접경지역을 우회하는 산악길로 갔다가 50km 구간을 10시간 걸려 넘었다. 그러나 임 씨는 그러한 고난이 여행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고 역설한다.

“은수는 사람의 나이로 치면 쉰넷 정도일 거예요.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나이라면 지나온 인생의 반이 이러한 고난이었음을 알 겁니다. 그게 다 지나간다는 것도요. 인생의 반이 고난이라면, 그리고 다 지나갈 일이라면 그건 괴로움의 대상이 아니죠.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여행의 의미는 극복할 때만 빛을 발하는 겁니다.”

여행은 발로 쓰는 책, 책은 글로 하는 여행이라 하지 않던가. 지난 8월 30일 세계 일주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임 씨는 꿈이었던 여행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677일간 쉼 없이 달려온 그는 당분간 은둔해 집필작업에 매진할 계획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삶을 꿈꾸지만 현실에 발이 묶인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북돋웠다.

“은수는 평생 시속 60km 이상으로 달려보지 못한 마을버스였습니다. 만일 그가 폐차되었다면 그는 자신을 60km 인생으로 알고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수는 시속 120km의 속도로 전 세계 도로를 달렸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러합니다. 인생 일모작을 끝낸 저와 폐차 직전의 마을버스가 저 험난한 정글을 뚫고 세계의 심장 타임스퀘어에 당당히 섰지 않았습니까? 꿈이 있는 한 여러분은 늙지 않습니다. 청년이 됩니다. 꿈을 잃은 자는 이미 노인입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스스로에게 ‘난 아직 꿈이 있다’고 말하세요.”

사진 제공·임택(nulbo1019@naver.com)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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